[사진-아시아나항공 누리집]
[사진-아시아나항공 누리집]

[이코리아] 최근 비행기가 지연돼 피해를 본 승객들에게 항공사가 재산상 손해 뿐 아니라 정신적인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이 항공 교통이용자의 권익에 도움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9년 태국 방콕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할 예정이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기체 결함으로 결항됐다. 항공사는 3시간 뒤에야 이 사실을 탑승게이트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알렸고, 승객 약 270명은 22시간 넘게 만 하루가 지난 뒤 대체항공편을 탈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안전을 위한 정비 문제였고, 2억여원을 들여 승객들에게 숙박과 식사, 대체항공편까지 제공하는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고 맞섰지만,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항공사가 ‘탑승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았던 것’을 항공사가 필요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정신적 피해 보상의 근거로 ‘국제 협약’이 아닌 ‘국내법’을 들었다. 대법원은 지연 도착한 승객에게 1인당 최대 70만원씩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항공운송에 관한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협약은 항공교통이용자의 사망, 신체적 상해 지연 및 위탁수하물의 손해에 대한 운송인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2022년을 기준으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총 136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2007년에 협약에 가입하였다. 

몬트리올 협약은 승객과 수하물 또는 화물의 운송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운송인이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다만,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거나 또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사례에서 재산상 손해만 규정하고 있는 몬트리올 협약이 아닌 국내법의 손해배상 법리에 따라 판단해 지연피해를 입은 승객들이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상법」, 「항공사업법」, ‘항공교통이용자보호기준’등에 항공교통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교통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거나 피해를 주장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항공 통계 작성을 위한 「항공 통계 작성 매뉴얼」에 지연과 결항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미비한 상태이다.

[사진-최근 5년간 항공기 지연률, 출처-국회입법사무처]
[사진-최근 5년간 항공기 지연률, 출처-국회입법사무처]

그러다보니 항공교통이용자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22년 기준 피해구제 유형별로는 ▲항공권 구매취소 시 위약금 과다, 환급 거절 등(69%) ▲운송 불이행 및 지연(15%) ▲기타(9%) ▲위탁수하물 분실, 파손, 지연(3%) ▲정보제공 미흡(2%) 순이었다.

반면에 유럽, 미국 등 항공 선진국들 사이에선 항공교통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구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몬트리올 협약과 별도로 규정을 제정하여 항공기 탑승 거절 및 항공편취소(결항), 지연 발생시 보상 등을 규정하고 있다. 초과 예약으로 탑승이 불가하거나 항공편이 취소되는 경우, 250~600유로를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항공편이 5시간 이상 지연되는 경우 미사용된 항공권을 환불해주거나 필요한 경우 출발지로 돌아오는 항공권을 제공하여야 한다. 

지연으로 인한 피해보상은 항공편 취소 시와 동일한 기준에 따라 보상된다. 이는 판례로 나와있다. EU사법재판소는 지연시간이 3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항공편의 취소시 지급되는 것과 유사하게 보상이 지급될 수 있다고 판결한바 있다. 

항공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되면 항공사는 식사 및 다과 등과 2통의 무료전화, 전신, 팩스, 이메일 등을 제공하여야 하고, 대체 항공편의 출발시각이 당초 항공편보다 최소 하루가 지난 시점이라면 무상 숙박 및 공항과 숙박시설 간의 운송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다만, 운송지연이 운송인이 모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사정(정치적불안정, 항공운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기후변화, 보안상 위험, 예상치 못한 운항 안정상의 결함, 파업 등)이 발생하였을 때, 운송인의 책임이 면제된다. 

미국은 최근 항공교통이용자의 권익을 위한 법률 제정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항공교통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 ‘항공사 승객의 권리장전’가 발의되어 있다. 

미 교통부는 지난 5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항공사들이 승객들에게 보상하고 통제 가능한 지연과 취소에 대해 특정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하는 규칙 제정을 시작했다.

[출처-미 교통부]
[출처-미 교통부]

이러한 움직임으로 이전엔 미국의 10대 항공사 중 지연이나 취소로 인한 항공사의 과실이 있을 때 식사나 호텔을 보장해주는 항공사는 없었는데, 지금은 항공사 문제로 지연이나 결항이 발생하면 10개 항공사가 모두 식사를 보장하고, 9개의 항공사가 호텔 숙박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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