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펀드 자금 흐름(왼쪽) 및 유럽 ESG펀드 신규설정 현황. 자료=자본시장연구원
글로벌 ESG 펀드 자금 흐름(왼쪽) 및 유럽 ESG펀드 신규설정 현황.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이코리아] 증시 침체로 위축된 글로벌 ESG 펀드 시장에 규제 칼바람이 불고 있다.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의혹을 받는 가짜 ESG 펀드를 골라내는 시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에서도 명확한 기준과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글로벌 ESG 펀드 현황 및 관련 규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G 펀드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ESG 펀드에는 지난해 9월말까지 225억 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는데 이는 전분기 33.6% 감소한 것이다. 

ESG 펀드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측정하는 지표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기준에 따라 환경과 사회에 기여하고 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최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금융권에도 지난 2~3년간 ESG 펀드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발 통화긴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책,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등 악재가 겹치면서 세계 경제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자 ESG 펀드 시장도 위축되는 모양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분기 이후 ESG 펀드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돼왔으나, 지난해부터는 순유입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지난해 2~3분기부터 오히려 ESG 펀드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글로벌 ESG 펀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의 경우 ESG 펀드 순자산 규모가 2021년 4분기 8.7조 달러에서 지난해 3분기 7.9조 달러까지 감소했으며, 신규 설정된 ESG 펀드 개수도 같은 기간 438개에서 335개까지 줄어들었다. 

홍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ESG 펀드 시장의 위축되고 있는 주된 이유로 글로벌 경기침체를 꼽았다. 홍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급격한 금리인상 등 세계적인 긴축정책으로 인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확대되면서 펀드 투자가 감소했고 ESG펀드에 대한 투자 역시 감소했으며, 경제 및 규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ESG투자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다”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지속되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기술주 등 실적 위주의 투자처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ESG 펀드 시장을 위축시킨 요인에 경기침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유럽 등을 중심으로 금융상품의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ESG 펀드 시장이 ‘군살 빼기’ 국면에 돌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ESG와 관련이 없는 기업에 투자하면서 이름에만 ‘ESG’를 내건 펀드가 퇴출될수록 전체적인 시장 규모는 줄어들게 된다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이미 지난 2021년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이하 SFDR)를 도입했으며, 최근에는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에서 추가적인 규제를 마련하는 등 ESG 펀드의 기준을 더욱 높이고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유럽에서는 자산의 80% 이상을 환경 및 사회 부문에 투자하는 펀드만 펀드 명칭에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표현을 포함시킬 수 있으며, 50~80%의 경우 ‘지속가능’이라는 표현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 초안 발표되기도 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해 5월 ESG 금융투자상품 공시방안 및 ESG 펀드 명칭 규칙 개정안 등의 규제안을 발표했다. ESG 펀드를 ESG 통합(ESG Integration), ESG 중점(ESG Focused), ESG 임팩트펀드(ESGImpact)등 세 가지로 나눠 특성에 따라 공시기준을 세분화하는 한편, 금융사가 이를 투자설명서 및 연차보고서 등에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새 규제안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ESG 펀드의 경우 전체 투자자산의 80%를 펀드 명칭에 명시된 곳에 투자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 일부 금융사의 경우 강화된 규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실제 SEC는 지난해 5월 BNY멜론의 투자자문사가 ESG 투자 지표를 잘못 기재하고 누락한 혐의로 1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또한, 골드만삭스자산운용도 ESG 관련 정책 및 절차를 따르지 않고 ESG펀드를 운용했다는 이유로 최근 SEC로부터 40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국내에서는 아직 ESG 펀드와 관련해 미국·유럽과 같은 수준의 강도 높은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ESG 펀드의 경우, 시가총액이 높은 대형주 위주로 투자자산을 구성해놓고 이름에는 ‘ESG’를 내건 경우도 흔하다. 일반 투자자들은 해당 금융상품이 ESG 기준을 고려한 것인지 쉽게 확인하기 어렵워 금융사의 ‘그린워싱’에 속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린워싱 의혹이 있는 ESG 펀드의 경우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형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다보니 증시 침체에 대한 방어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코리아가 국내 증시에 상장된 ESG 펀드 32종의 지난해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CE ESG액티브’(-30.69%), ‘TIGER MSCI KOREA ESG리더스’(-29.55%), ‘ARIRANG ESG성장주액티브’(-28.67%), ‘KBSTAR ESG사회책임투자’(-26.24%) 등 대형주 중심의 ESG 펀드는 대부분 코스피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해외 탄소배출권 및 청정에너지에 투자하는 펀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투자자로서는 금융사의 ‘그린워싱’ 때문에, 환경에 기여하지 않는 종목에 투자하면서 손실도 입을 위험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홍 선임연구원은 “(ESG 펀드 관련) 규제 강화 기조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조사 및 제재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금융사의 ESG펀드 다운그레이드 움직임은 2023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강화된 규제는) 그린워싱의 가능성을 낮춰 ESG 금융상품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한편, 지속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 마련이 전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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