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이들 플린 틱톡 갈무리]
[사진- 자이들 플린 틱톡 갈무리]

[이코리아] 올해 미국 청년 사이에서 신드롬처럼 번졌던 조용한 사직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반면에 학계에선 이 신드롬이 생산성 저하를 가져올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용한 사직(Quiet Quotting)이란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며 심리적으로 직장과 거리를 두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미국 뉴욕의 20대 엔지니어인 자이들 플린이 틱톡 계정을 통해 “일이 곧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성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알려졌다. 

조용한 사직이 퍼져나간 대표적인 요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를 꼽는다. 사람들은 팬데믹 으로 인해 대대적인 해고를 당했으며, 이후 회사는 돌아오지 않는 노동자들로 인해 극심한 구인난을 겪었다. 남은 직원들은 그 틈을 메우고자 과로에 시달렸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회사와 일을 우선시하기 어려워졌고, 재택근무 등의 효율적인 노동방식이 등장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주요 외신들도 신드롬처럼 번지는 조용한 사직 열풍에 주목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직장인이 개인 생활보다 일을 중시하고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더는 추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9월 미국 근로자 1만5000여 명을 설문조사한 뒤 “미국인 근로자의 50% 이상이 사실상 ‘조용한 사직’ 중”이라고 밝혔다. 갤럽은 응답자들에게 업무 몰입도를 물어본 결과 각각 ‘업무에 몰입 중’(32%)이라거나 ‘큰 불만을 갖고 있다’(18%)고 답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50%에 주목했다. 이들을 일에 열중하거나, 큰 불만도 없이 회사를 다니는 ‘조용한 퇴사자’로 분석한 것이다. 갤럽은 특히 35세 미만 청년 근로자들의 직장에 대한 기대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조용한 사직에 동참하는 대부분은 ‘MZ세대’다. 젊은 직장인들이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일과 일상의 균형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진-  조용한 사직에 대한 설문조사, 출처-옥소폴리틱스]
[사진-  조용한 사직에 대한 설문조사, 출처-옥소폴리틱스]

20만명 회원을 보유한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조용한 사직’에 대해 질문했다. 응답자 436명 중 73%가 찬성으로 대답했다. 반면에 반대는 9%에 그쳐 찬성이 반대의 8배가 넘었다. 주목할 점은 MZ세대 뿐만 아니라 50대에서도 찬성의 응답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응답자 중 한 명은 “조용한 사직이 워라밸 때문이 아니라 이직준비나 부업을 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내었다, 그러면서 “젊은 층의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동시에 기업의 생산성도 감소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국가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면서 “'MZ세대가 이기적이어서 그렇다'라고 치부하기 보다 나의 성장이 기업의 성장이 될 수 있고, 내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치러진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사회와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조용한 사직'이 고용관계의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 노동통계국은 올해 미국 2분기 비농업 부문 노동 생산성이 전분기보다 4.1%, 작년 동기보다 2.4% 각각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1분기에는 전분기보다 7.4%, 작년 동기보다 0.6% 각각 떨어졌다. 미국의 노동 생산성이 48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노동 생산성은 한 명의 근로자가 한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 및 서비스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조용한 사직’을 그 이유로 지적하고 있다. WP는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서머스가 '조용한 사직'이 생산성 하락의 주요 원인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서머스는 “조용한 사직을 고수하는 인력이 생각보다 많고, 이는 생산성 저하를 일으키는 충분한 이유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일부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력을 조금씩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 역시 “조용한 사직에 맞서 기업은 게으른 직원에게 업무를 주지 않는 등 ‘조용한 해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최근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실질 임금이 낮아지면서 조용한 사직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에 조용한 사직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미디어 컨설팅 기업 CEO인 에드 지트론은 미국 NPR 방송에 출연해 “(조용한 사직은) 직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추가 보상 없는 과로 문화를 통해 이익을 얻는 기업의 방식에서 유래했다.”라며 “이는 ‘적게 일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받은 만큼 일하고 추가적인 의무를 지지 않으며 할당된 시간을 초과해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이 현상을 타개하고 싶다면 초과 근무에 수당을 지급하면 된다.”라고 제안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트렌드코리아 2023’ 출간 간담회에서 조용한 사직을 내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꼽으면서 “젊은 세대의 근무 태도를 비판할 게 아니라 이들이 조직 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도록 (기업들이)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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