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백신 접종률 추이. 자료=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일본의 백신 접종률 추이. 자료=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이코리아] 미국, 유럽 등 ‘위드 코로나’로 방역정책을 전환한 국가들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곤란을 겪는 가운데, 유독 일본만 확진자 및 사망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23일 신규 확진자 수는 113명, 사망자 수는 2명으로 집계됐다. 일본보다 한 달 뒤인 지난 1일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한 한국의 일일 확진자 수가 4천명을 넘어서고, 미국과 유럽은 매일 수만명의 확진자가 쏟아져나오는 상황과 비교하면 일본의 코로나 둔화세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당장 지난 8월 도쿄올림픽 당시만 해도 일본은 매일 신규 확진자가 2만명이 넘게 늘어나고, 지난 5월에는 하루 사망자 수가 227명에 달하는 등 코로나 재확산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8월말까지 치솟던 확진자 수가 9월 들어 감소 추세로 돌아서더니 최근에는 세 자릿수를 넘지 않는 날이 많아지는 등 확연하게 확산세가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 日, 올림픽 이후 백신 접종률 급등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설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쿄올림픽 이후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백신 접종률이 올라간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실제 올림픽까지만 해도 일본의 1차 접종률은 47.3%, 완전 접종률은 34.3%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접종률이 꾸준히 상승하며 23일 기준 1차 접종률은 79.2%, 완전 접종률은 76.9%까지 올라갔다. 사실상 집단면역이 형성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접종률을 달성하면서 코로나 확산을 막는데 성공했다는 것.

다만 최근 코로나 재확산으로 재봉쇄를 고려 중인 다른 국가들의 접종률도 낮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현 상황을 백신 접종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이 종료된 8월 9일을 기준으로 보면 영국은 이미 1차 접종률이 70%를 넘어섰고 완전 접종률도 59%에 달한다. 유럽연합(EU)도 일본보다는 낮지만 23일 기준 1차 접종률은 70%, 완전 접종률은 67%까지 올라왔다. 한국 또한 최근 신규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지만 접종률은 1차 접종률 82%, 완전 접종률 79%로 오히려 일본보다 높다.

◇ 높은 10대 접종률이 코로나 재확산 막을 변수?

전체 접종률이 아닌 연령별 접종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지난 15일 “가장 놀라운 것은 안티 백신 음모론이나 소셜미디어의 가짜뉴스에 더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젊은 세대의 접종률”이라며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12~19세 청소년 중 60.7%에 해당하는 약 540만명이 2차 접종까지 완료했다”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늦게 시작한 청소년들의 접종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확진자 증가 추세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 

물론 이 또한 확인된 가설은 아니다. 지난달까지 12~19세의 80% 이상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스페인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보다 신규 확진자 수가 적고 코로나19 재확산 추세도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최근 들어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 국내 12~17세 1차 접종률은 41.5%, 완전 접종률은 16%로 기대보다 낮은 상태다. 만약 어린 세대의 접종률이 코로나19 재확산의 중요 변수 중 하나라면 이를 고려한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청소년 확진자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백신 접종률 제고는 필수적이다. 실제 박혜경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시행반장은 24일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2주간 발생한 12~17세 확진자를 분석해보면 98.7%가 접종을 하지 않은 아동·청소년들이었다“며 ”7월 이후 (아동·청소년) 위중증 사례도 약간씩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日, PCR 검사 수 줄었지만, 양성률도 감소

일본의 유전자증폭(PCR) 검사 수가 다른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적어 확진자 수가 축소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누구나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사람이 PCR 검사를 받으려면 2만엔의 비용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한때 17만명을 넘어섰던 일본의 하루 검사자 수는 최근 들어 5만명 이하로 크게 줄어들었다. 당장 한국의 23일 검사자 수는 의심자 검사 및 임시선별검사를 합쳐 18만5601건으로 양국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격차가 크다. 이처럼 검사 수가 줄어들면서 확진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코로나19의 실제 확산 정도에 비해 축소된 통계치가 나왔다는 것. 

다만 확진자 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검사 수만 줄어들었다면 양성률은 높게 나와야 하는데, 일본의 양성률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8월 한때 20%를 넘어섰던 양성률은 22일 기준 0.3%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양성률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검사 수도 줄었다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 

◇ 델타 자멸설, 자연감염설 등 다양한 가설 제시

이 밖에도 일본의 확진자 감소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 소멸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델타 변이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복제를 반복하다가 오류가 발생해 자멸했다는 것.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 및 니가타대 연구팀은 지난달 바이러스 복제에 필요한 효소인 ‘nsp14’에 문제가 발생해 바이러스 증식이 어려워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강력한 봉쇄조치로 확진자 수를 억제하는 대신 어느 정도의 자연감염을 허용하는 완화적 방역정책을 시행한 것이 코로나19 재확산을 막은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덕희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카카오 ‘브런치’를 통해 “한국과 비슷한 백신 접종률을 가진 일본이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처음부터 국가가 나서서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으로 지나가는 자연감염을 막지 않았다는 데 있다”며 “일본의 확진자가 급감한 것은 백신접종률이 채 50%가 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런 일은 강력하고 광범위한 면역을 제공하는 자연감염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단순히 백신접종률만 높인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 교수가 일본과 유사한 사례도 든 스웨덴의 경우 코로나19 재확산이 시작된 다른 유럽권 국가에 비해 신규 확진자 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다만 스웨덴도 6월 한때 100명대로 줄어들었던 확진자 수가 최근 3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다시 증가하고 있는 데다, 영국 등 봉쇄조치를 이미 수개월 전에 해제한 국가들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감염 허용이 코로나19 재확산 방지의 열쇠라고 단언하기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아직 어떤 설명도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 둔화의 명확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만큼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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