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질병관리본부
자료=질병관리본부

“인구 60%가 면역을 가졌을 때 코로나19의 확산을 멈출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해법으로 ‘집단면역’이 관심을 끌고 있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장은 2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이해와 대응전략’ 기자회견을 열고 일정 수준의 집단면역이 형성돼야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다며, 현재의 억제정책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앙임상위가 ‘집단면역’을 이 시점에 다시 언급한 것은 예상 밖이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적극적인 검사와 이동 제한 등 공격적인 방역대책을 시행하고 있는데다, 집단면역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한 영국조차 여론의 비난으로 완화적 방역대책을 포기했기 때문. 

패트릭 발란스 영국 최고과학보좌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BBC 등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이를 완전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경증을 겪고 면역을 획득해 일정 수준의 집단면역을 형성해야 한다”며 방역대책 또한 집단면역 60%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또한 이러한 주장에 따라 시민들의 자가격리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쏟아지는 비난에 결국 강제 격리 및 지역 봉쇄 등 공격적 방역대책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그렇다면 집단면역은 정말 방역대책 수립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60%의 집단면역을 확보하면 코로나19를 확실히 억제할 수 있을까? <이코리아>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봤다.

패트릭 발란스 영국 최고과학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B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보다 집단면역 형성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BBC 라디오 공식 트위터 계정
패트릭 발란스 영국 최고과학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B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보다 집단면역 형성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BBC 라디오 4 공식 트위터 계정

◇ 집단면역이란?

집단면역은 감염이나 예방접종을 통해 인구의 상당수가 특정 전염병에 대한 면역을 가진 상태가 되어, 면역력이 없는 구성원에게도 간접적인 질병예방효과가 나타나는 상황을 뜻한다. 인구 내 면역력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면 특정 개체가 감염돼도 면역력이 없는 다른 개체에 전염될 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집단면역은 이미 192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의학적 개념이지만, 홍역과 관련해 자연적으로 발생한 집단면역 현상이 발견되면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1932년 A. W. 헤드리히가는 홍역이 널리 확산되자 아동 감염자 수가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특정 비율 이상 홍역환자가 발생하면 홍역 발병률이 일시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초기에는 집단면역을 자연발생적 현상으로 인식했지만, 이후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면서 예방접종을 통해 인위적으로 집단면역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스탠리 플로트킨 석좌교수가 2011년 발표한 논문 '집단면역에 대한 대략적 지침' 중 집단면역 역치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자료=옥스포드 아카데믹 저널
펜실베이니아대학 스탠리 플로트킨 석좌교수가 2011년 발표한 논문 '집단면역에 대한 대략적 지침' 중 집단면역 역치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자료=옥스포드 대학

◇ 집단면역 역치(Herd Immunity Threshold), 어떻게 산출하나?

그렇다면 특정 전염병을 완전히 억제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몇 %가 면역력을 획득해야 할까? 필요한 집단면역의 구체적 비율을 산출하는 공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선 특정 질병 억제를 위한 집단면역 비율인 ‘집단면역 역치(Herd Immunity Threshold)’를 구하기 위해서는 감염병 재생산지수(Reproduction Number, R0)와 백신유효율(Vaccine Efficacy, Ve)이라는 두 가지 지표가 필요하다. 감염병 재생산지수는 한 사람의 감염자가 몇 명을 전염시킬 수 있는지를 수치화한 지표이며, 백신유효율은 백신을 접종받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얼마나 덜 감염되는지를 수치화한 지표다.

스탠리 플로트킨 펜실베이니아대학 석좌교수가 지난 2011년 미국감염병학회(IDSA) 학술지 ‘Clinical Infectious Diseases(CID)’에 게재한 논문 “집단면역에 대한 대략적 지침”에 따르면, 임의의 백신을 가정한 상태에서 집단면역 역치를 구하는 공식은 1-1/R0다. 예를 들어 전염성이 가장 높은 질병 중 하나인 홍역의 경우 R0는 약 12~18 수준인데, 이 경우 집단면역 역치는 91.6%~94.4%에 해당한다. 전 인구의 94.4%가 홍역에 대한 면역력을 가져야 홍역을 완전히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코로나19는 어떨까?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의 R0값을 1.4~2.5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대치인 2.5명을 가정하면 정확하게 60%라는 값이 도출되는데, 이는 중앙임상위나 패트릭 발란스가 주장한 집단면역 역치와 일치한다.

문제는 이 수치가 ‘완벽한 백신’을 가정해 산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는 이 수치를 다시 백신유효율로 나눠야 정확한 집단면역 역치를 구할 수 있다. 홍역의 경우 2회 접종 시 Ve가 약 97%로 이를 고려하면 홍역의 집단면역 역치는 94.5%~97.4%까지 높아진다. 인구의 97.4%가 홍역 백신을 접종받아야 홍역에 대한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코로나19의 경우 백신 개발이 요원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수치를 계산할 수 없다.

게다가 코로나19의 감염병 재생산지수가 WHO 추정치보다 높다는 지적도 있다. 스웨덴 우메오대 연구진이 최근 ‘여행 의학 저널(Journal of Travel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재생산지수 평균치는 3.28명, 중앙값은 2.79명로 나왔다. 3.28명을 공식에 대입하면, 코로나19 억제에 필요한 집단면역 역치는 69.5%다. 물론 이 수치 또한 코로나19 감염을 완벽하게 억제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된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백신이 없거나 유효율이 낮으면 더 올라갈 수 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이행상황과 입국자 대상 검역강화조치 진행상황 등을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이행상황과 입국자 대상 검역강화조치 진행상황 등을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집단면역은 왜 방역대책이 될 수 없나?

집단면역이 방역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집단면역은 백신의 존재를 가정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집단면역을 자연발생적 현상으로 취급했지만, 백신이 개발되면서 집단면역은 인위적으로 달성해야할 목표가 됐다. 백신 접종을 통해 중증 및 사망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인구의 면역력을 끌어올림으로서 특정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의료정책의 핵심이다. 

반면,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자연발생적 집단면역을 기대한다는 것은 감염으로 인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확산을 방치해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는 뜻이다. 스웨덴 연구진이 산출한 코로나19의 재생산지수(3.28)를 고려하면, 5000만 국민 중 약 3500만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야 집단면역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3500만명이 감염되도록 방치한다면, 치사율을 1%로 계산해도 약 35만명이 희생된다는 참혹한 결과가 나온다.

설령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을 형성했다고 해도, 그것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면역력을 가진 고령층이 사망하고 면역력이 없는 신생아가 태어나면 결국 집단면역 비율이 다시 하락하기 때문이다.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집단면역은 항구적 상태가 아닌 일시적 현상에 가깝다. 5년 전 발생한 메르스(MERS) 백신도 아직 개발 중인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며 집단면역으로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방식의 방역대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정부도 집단면역이라는 이론적 개념에 의존해 방역대책을 변경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우리나라 인구가 약 5000만명인데, 70%가 감염돼야 한다고 하면 3500만 명”이라며 “치명률이 1%라는 점을 고려하면 35만 명이 사망하는 희생을 치뤄야 집단면역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반장은 이어 “방역을 최대한 강화하고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이런 상황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방역당국의 책임이자 목표”라며 “이론적 수치에 근거해 방역대책을 강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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