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의 어느 여름날. 18살이었던 나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국제선 탑승구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곧 생애 최초의 배낭여행이 시작될 텐데, 설렘보다는 암담함이 눈앞을 가렸다.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중간에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비행기 표를 끊은 것을 자책하기 시작했고, 기내서도 안절부절못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그러나 유럽에 도착한 지 1달이 지났을 무렵,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이전과는 꽤나 다른 사람으로 변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말을 적게 하고 조심조심 행동했다면, 여기서는 주저 없이 말을 걸고 때로는 논쟁도 피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이 홀짝홀짝 잘도 넘어갔다. 나를 이루는 세포들은 분명 그대로인데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저 발을 디딘 장소가 달라졌을 뿐인데?

오랜 의문이 풀린 것은 리처드 니스벳의 책 『생각의 지도』를 통해서다. 저자는 몇몇 대학원생들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에게 세 가지 사물의 이름(예컨대 원숭이, 바나나, 판다 곰)을 제시하고, 그중 서로 가장 연관되어 있는 2개를 고르게 한 것이다. 미국 대학생들의 경우 ‘동물’이라는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판다 곰과 원숭이를 고른 반면, 중국과 타이완의 대학생들은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는다’라는 서로의 관계에 근거하여 원숭이와 바나나를 고르는 경향을 보였다. 쉽게 말해 앵글로색슨 계통의 서양인들은 명사(=본질) 위주로, 동아시아 쪽의 동양인들은 동사(=관계) 위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이를 저맥락(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로 구분한다.)

그런데 영어와 중국어에 모두 능통한 ‘이중언어자(bilingual)’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 본토와 타이완의 중국인들은 영어와 중국어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같은 문제를 영어로 풀었을 때 관계성에 기반한 판단을 훨씬 적게 했던 것이다. 결국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언어 구조상의 차이가 사고 과정의 차이를 낳는다고 주장한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와 벤저민 워프(Benjamin Whorf)의 가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비록 유창하진 않지만,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생각도 영어로 하게 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자연스럽게 예의와 복잡한 관계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짧게 만나다 보니 탐색전은 생략하고 그 사람의 핵심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단지 다른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의 간략한 설명에 따르면 서양은 오래전부터 개인의 자유, 개성, 객관적인 사고를 강조해왔다. 그리스가 도시국가 형태의 정치 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해안가에 위치해 이질적인 문화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세상들과 접촉하며 수많은 주장들을 접한 그리스인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고대 중국은 문화적 동질성이 매우 강한 사회였다. 중국인들은 서로 다른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 공동체 안에서 불협화음을 없애고 서로 합의점에 이르는, 중용의 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동양인들은 사람이나 사물을 파악할 때 그것이 속한 전체 맥락과의 관계를 고려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1995년 출범한 WTO 체제는 공산품뿐 아니라 농산물, 서비스, 교역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강제적인 자유무역 규정을 둠으로써 지구 전체의 단일경제권 형성을 가속화시켰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생산된 물건을 사용하고, 음식을 먹는다. 또한 유튜브, 넷플릭스, 극장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국경 너머의 문화를 실시간으로 접한다. 학교에서 꾸준히 영어를 배우며, 교통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외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세계화의 효과는 시간적, 경제적 여력을 가진 사회의 상층부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한다. 세계의 가진 자들이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균질화되고 있는 와중, 갖지 못한 자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소외된 채 나고 자란 사회에 식물처럼 뿌리 박혀 있다. 결국 사회의 하층민들은 자국의 상층민과도, 타국의 하층민과도 이질적인 존재로 남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각 사회에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필자 소개>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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