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

수려한 멜로디만으로도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엘튼 존(Elton John)의 'Daniel'. 하지만 이 노래만큼 뜻이 곡해된 팝송도 드물 것이다. 엘튼 존이 동성애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노래 속의 주인공이 그의 전 남자친구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무지한 자들이 있었다. 그자들은 엘튼 존 노래의 가사 전부(거의 전부)를 파트너인 버니 토핀(Bernie Taupin)이 썼다는 기초상식도 모르는 바보들이다.

엘튼 존/버니 토핀 노래가 대부분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전해지는 형의 이야기 'Daniel'은 베트남 참전 용사의 슬픔을 노래한 아름다운 발라드이다. 곡도 베트남전쟁이 격화일로를 걷던 1973년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노래 어디에도 화자가 다니엘의 남동생이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쓴 사람이 남성이니, 그리 짐작할 뿐이다. 

토핀은 고향에 돌아온 후 쓸쓸히 죽음을 맞은 한 참전용사의 얘기를 신문에서 접한 후 'Daniel'의 노랫말을 썼다. 완성된 원래 가사에는 참전용사의 사연이 자세하게 담겨있었다. 그러나 곡의 길이에 맞추기 위해 가사가 줄어들면서 주인공 다니엘이 참전용사였다는 정보는 빠지게 됐다.

하지만 다니엘이 전투 중에 시력을 잃게 됐다는 내용은 “Your eyes have died, but you see more than I.”란 가사 속에 정확히 담겨있다. 버니 토핀은 이 노랫말을 쓴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니엘은 실명으로 인해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온다. 모두가 그를 전쟁영웅으로 치켜세우지만, 시력을 잃은 그에게 이런 명예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농장으로 돌아가 예전에 살았던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나는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을 향한 측은지심을 표현하고 싶었다.”

고향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없게 된 다니엘은 사랑하는 동생을 뒤로 한 채 마음속 이상향인 스페인으로 향한다. 하지만 왠지 이 노래 속 스페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아름다운 시절의 고향이거나, 아니면 천국이 아닌가 한다.

“내 눈에 보이는 게 다니엘 같아.”(God, it looks Daniel.)라고 해놓고는 곧바로 “하지만 아마도 내 눈 속 구름인 것 같다.”(But it must be the clouds in my eyes.)라고 말을 바꾸는 게 이상하다.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떠나가는 형 다니엘을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것을 'Clouds in my eyes'라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흘리는 눈물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다니엘, 너는 저 하늘의 별이야.”(Daniel you're a star in the face of the sky.)란 말도 다니엘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케 한다.

토핀은 전쟁으로 인한 '고통의 상처'(the pain of the scars)는 “영원히 치유되지 못한다.”(Won't heal.)며 은근히 반전의 메시지를 흘리고 있다.

'Daniel'은 베트남전이 절정을 이루었던 73년 완성됐다. 한심한 레코드사는 'Daniel'의 분위기가 너무 침울하다는 이유로 싱글발매를 거부했다가 존의 저항에 백기를 들었다. 레코드사의 기우를 조롱하듯 'Daniel'은 빌보드 팝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지난 2000년 엘튼 존은 'Daniel'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꼽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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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is travelling tonight on a plane 
I can see the red tail lights heading for Spain 
Oh and I can see Daniel waving goodbye 
God it looks like Daniel
Must be the clouds in my eyes 

오늘 밤 다니엘은 여행을 떠나네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미등이 보여
안녕하며 손을 흔드는 다니엘이 보여
정말 다니엘인 것 같아
아마도 내 눈 속의 구름이겠지

They say Spain is pretty though I've never been 
Well Daniel says it's the best place that he's ever seen 
Oh and he should know, he's been there enough 
Lord I miss Daniel
Oh I miss him so much 

스페인이 참 아름답다는데 난 본적이 없어
다니엘은 자기가 본 곳 중 최고라고 얘기하지
그는 잘 알거야, 여러 차례 가봤으니까
다니엘이 너무 그리워
정말 너무 너무 그리워

Daniel my brother you are older than me 
Do you still feel the pain of the scars that won't heal? 
Your eyes have died but you see more than I 
Daniel you're a star in the face of the sky 

다니엘, 너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야
아직도 나을 수 없는 상처 때문에 고통스럽니?
네 눈은 죽었지만, 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보지
다니엘, 너는 저 하늘의 별이야

Daniel is travelling tonight on a plane 
I can see the red tail lights heading for Spain 
Oh and I can see Daniel waving goodbye 
Oh God it looks like Daniel
Must be the clouds in my eyes 

오늘 밤 다니엘은 여행을 떠나네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미등이 보여
안녕하며 손을 흔드는 다니엘이 보여
정말 다니엘인 것 같아
아마도 내 눈 속의 구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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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ing for Spain'에서 'heading'은 '어디론가 향하다'는 뜻인 'head'의 동명사 형태다. 'heading'이 명사로 쓰일 때는 축구에서의 '헤딩'이나, '주제' 혹은 '제목' 등이 된다. 'heading'은 실제 어느 특정한 장소로 향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의미도 갖는다. 차이를 보자.

1. The bus was heading toward downtown.(버스는 다운타운으로 향하고 있었다.)

2. It looks like the couple next door is heading for divorce.(옆 집 부부가 곧 이혼할 것 같아.)

“They say Spain is pretty.”에 등장하는 'they'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스페인이 아름답다고 직접 말한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스페인이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바로 밑에 등장하는 “Daniel says it's the best place that he's ever seen.”은 당연히 전에 다니엘이 직접 한 말이다. 차이를 보자.

1. They say Seoul is the most beautiful city in the whole Asia.(서울이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들 한다.)

2. John Lennon once said that the Beatles were more popular than Jesus.(존 레넌은 언젠가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Do you still feel the pain of the scars that won't heal?”에서 'scar'는 '분명 정신적인 상처'다. 몸에 난 '흉터'를 말할 때도 'scar'를 쓴다. 알 파치노 주연 영화 제목이기도 한 'scar face'는 말 그대로 '얼굴에 흉터난 사람'(scared up face)을 뜻한다.

"Your eyes have died."는 실제로 눈이 죽었다는 말이기보다는 시력을 잃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대화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You've gone blind.", 혹은 “You've lost your eyesight." 정도가 맞는 표현이다. 청력을 잃었다면 "You've gone deaf."라고 하면 된다.

'다니엘'(Daniel)은 영어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이름이다. 줄여서 '댄'(Dan), '대니'(Danny)등으로도 부른다. '신이 나의 심판자'란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다니엘은 구약성서 시절 유대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선지자였다.

 

 

<필자 약력>

동서대 임권택 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

방송 <접속! 무비월드 SBS>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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