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핫 칠리 페퍼스

구십 년대 초반 록그룹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이하 RHCP)의 보컬리스트 앤소니 키디스(Anthony Kiedis)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록그룹으로서 성공을 목전에 둔 호기였지만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밴드 동료였던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이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한 후 곧바로 마약에서 손을 뗐지만, 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금단현상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밴드 동료인 베이시스트 플리(Flea)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는 둘이서만 대마초를 나눠 피우며 맑은 정신으로 살려는 키디스를 놀려댔다.

새 앨범 < Blood Sugar Sex Magik > 리허설 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키디스에게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와 연인을 잃어버린 그에게 세상은 너무 잔혹한 듯했다. 헤로인은 여전히 거부하기엔 너무도 강렬한 마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 그 유혹에 넘어갈 경우 더 이상의 정상적 삶은 없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키디스는 문득 떠나간 연인 아이오니 스카이(Ione Skye)를 떠올렸다. 그녀는 육십 년대 유명한 팝가수 도노반(Donovan)의 딸로 한때는 매우 촉망받던 배우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그는 당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외로움은 나로 하여금 아름다운 천사 아이오니와 함께 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내게 모든 사랑을 주려 했는데,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로스엔젤스(Los Angeles) 다운타운의 개떡 같은 갱스터들과 몰려다니며 '다리 밑'(under the bridge)에서 팔뚝에 주사바늘이나 꽂고 있었다.”(The loneliness that I was feeling triggered memories of my time with Ione and how I'd had this beautiful angel of a girl who was willing to give me all of her love, and instead of embracing that, I was downtown with fucking gangsters shooting speedballs under a bridge.) '스피드볼'(speedball)은 코카인에 헤로인이나 모르핀 등을 섞은 일종의 칵테일 마약주사로 효과가 최상이다. 단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친구와 연인을 잃고 마약과도 인연을 끊은 상태에서 밴드 멤버들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키디스를 더더욱 정신적 고립 상태로 내몰았다. 이제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로스엔젤스뿐인 듯했다. 당시 외로운 감정을 키디스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기도 했다.

“난 자주 로스엔젤스의 거리와 할리우드 언덕을 쏘다녔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나를 살피며 돌보아주는 언덕과 도시의 영혼을 느끼곤 했다.”(I'd spent so much time wandering through the streets of Los Angeles and hiking through the Hollywood Hills that I sensed the spirit of the hills and the city, who had me in her sights and was looking after me.)

이렇게 키디스가 느꼈던 슬픔과 도시가 주는 영혼의 위로가 담긴 글은 우연히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의 눈에 띄었고, 운명적으로 RHCP의 가장 큰 히트곡(빌보드 팝 싱글차트 2위)의 가사가 되었다. 원래 키디스는 이 글이 너무 개인적 내용이고, 리듬감이 강한 펑크(funk) 성향의 록을 지향하는 밴드의 음악적 방향과고 맞지 않기에 노래로 만들어지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런데 만약 그랬다면, 너무 큰 불행이었을 것이다. 이 위대한 곡의 성공에 힘입어 차후 'Soul to Squeeze'와 'Scar Tissue' 등 멋진 RHCP 표의 록발라드들이 계속 탄생했으니 말이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스의 어느 다리 밑에서 키디스는 친구와 함께 마약을 즐겼고, 그곳에서 그를 잃었다. 그 쓰라린 경험 이전의 추억은 그립지만, 절대로 과거 마약쟁이(junkie)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노랫말에 절절이 배여 있다. 난 절대 그날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I don't ever wanna feel like I did that day. Take me to the place I love.)

당시 키디스는 한 인터뷰에서 약물중독을 극복한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아무리 지금 내가 외롭고 슬프더라도 2년 전 마약에 찌들어 있을 때보다는 백만 배 이상 낫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No matter how sad or lonely I got, things were a million percent better than they were two years earlier when I was using drugs all the time. There was no comparison.)

'Under the Bridge'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의 분출이며, 자신의 그릇된 젊은 시절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리 약물이 황홀하다 하더라도 결코 그 유혹에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어쩌면 키디스는 떠나간 친구와의 추억의 깃든 다리 밑(under the bridge)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울었는지도 모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코러스는 프루시안테의 어머니 게일(Gail)과 그녀의 교회 성가대 동료들이 불렀다. 뮤직비디오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1991년)와 <투 다이 포>(To Die For, 1995년), <엘리펀트>(Elephant, 2003년), <밀크>(Milk, 2008년)를 연출한 할리우드 대표감독 거스 밴 샌트(Gus Van Sant)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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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I feel like I don't have a partner
Sometimes I feel like my only friend
Is the city I live in, the city of angels
Lonely as I am, together we cry 

가끔 난 이 세상에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난 내 유일한 친구는 내가 사는 이 도시뿐이라고 생각해요
천사의 도시도 나처럼 외로워하죠
우린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I drive on her streets 'cause she's my companion
I walk through her hills cause she knows who I am
She sees my good deeds and she kisses me windy
I never worried, now that is a lie

난 그녀의 거리로 차를 몰죠. 왜냐면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이니까요
난 그녀의 언덕을 걷지요. 왜냐면 그녀는 나를 알아주니까요
그녀는 내 착한 행실을 알죠. 그녀는 내게 바람의 키스를 던집니다
난 절대 걱정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건 거짓말

I don't ever wanna feel like I did that day
Take me to the place I love, take me all the way
I don't ever wanna feel like I did that day
Take me to the place I love, take me all the way

난 절대 그날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그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난 절대 그날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그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It's hard to believe that there's nobody out there
It's hard to believe that I'm all alone
At least I have her love, the city she loves me
Lonely as I am, together we cry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최소한 내겐 그녀의 사랑이 있잖아요. 이 도시는 날 사랑해요
우린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I don't ever wanna feel like I did that day
Take me to the place I love, take me all the way
I don't ever wanna feel like I did that day
Take me to the place I love, take me all the way

난 절대 그날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그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난 절대 그날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그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Under the bridge downtown
Is where I drew some blood
Under the bridge downtown
I could not get enough
Under the bridge downtown
Forgot about my love
Under the bridge downtown
I gave my life away

다운타운의 다리 밑에서
난 꽤 많은 피를 흘리게 했지요
다운타운의 다리 밑에서
난 항상 뭔가 부족했죠
다운타운의 다리 밑에서
난 내 사랑을 잊었어요
다운타운의 다리 밑에서
난 내 인생을 떠나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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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Bridge'의 노랫말에는 도시가 자주 등장하지만 이름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the city I live in, the city of angels'에서 정확히 로스엔젤스(Los Angels)라는 힌트를 준다. 서반아어인 'los angeles'는 영어로 천사들'(the angels)이란 말이다. '천사들의 도시'(the city of angels) 로스앤젤레스는 뉴욕에 이어 미국 내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The city I live in'은 그야말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란 뜻이다. 그러니까 'live in'은 '...에 살다'가 되는데, '어느 장소에 살다', 그리고 '어느 환경에 살다'로 나뉜다. 예를 들어 차이를 살펴보자.

1. I'd love to live in the country, but I don't want to drive 2 hours to work. (난 시골에서 살고 싶지만, 직장까지 두 시간씩 운전하고 싶진 않다.)
2. Polar bears can only live in cold weathers. (북극곰들은 추운 곳에서만 살 수 있다.)
3. I've been living in misery since my wife left me. (아내가 떠난 후 나는 불행 속에 살아왔다.)
4.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 사는 걸 상상해보아요.) 존 레넌의 'Imagine'의 가사 중 일부분이다.

'Live in''이 명사로 쓰일 경우에는 '더불어 사는 파트너로 배우자는 아니나 섹스를 하는 상대', 또는 '거주하는 가정부나 일꾼'인 경우를 말한다. 전자의 경우 'cohabitant'(동거인)와 의미가 어느 정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명사로 사용할 경우에는 두 단어를 붙여서 'live-in'이라고 표기한다.

“I drive on her streets, because she's my companion.”(난 그녀의 거리로 차를 몰죠. 왜냐면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이니까요.)을 보면 키디스가 분명 로스엔젤스 어딘가에서 운전 중인 것을 알 수 있는데, 목적어 'its'와 주어 'it' 대신 마치 로스엔젤스가 도시가 아니라 여성인 것처럼 표현하는 'her'와 she'를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어 표현하는 의인화이다. 영어표현 중에는 이런 의인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Fill it up.” 대신 주로 “Fill her up.”을 쓰는 것이 좋은 예이다.

만약 “대한민국은 결국 일제 강점기 36년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자유를 쟁취했다.”라고 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Finally, Korea had gained (her) long-waited freedom after 36 years of Japanese occupation.” 물론 'her' 대신에 'its'를 쓴다 해도 당연히 틀린 건 아니다.

'Good deed'는 '착한 일이나 선행'을 뜻한다. 'Virtue'나 'virtuous act'도 비슷한 말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본다. 
1. Mother Teresa had performed so many good deeds during her lifetime.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수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2. He'll get compensated for his good deed. (그는 착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I drew some blood.”에서 'to draw blood'는 '누군가를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피 흘리게 하다', '채혈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 노래에서는 스스로를 피 흘리게 했다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다른 두 가지 예를 보자.

1. The bullet skimmed my shoulder and barely drew any blood. (총알이 내 어깨를 스쳤기 때문에 별로 피를 흘리지는 않았다.)
2. The Cleveland Indians drew first blood with Shin Soo Choo's solo home run in the bottom of first inning.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추신수의 1회 말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I gave my life away.”에서 'to give (something) away'는 '선물이나 기부금 등을 주다', '상을 수여하다' 등의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부주의나 잘못으로 인해 '빼앗기거나 포기하게 되다'라는 매우 부정적 의미로도 쓰인다. 이 노래의 경우는 후자가 된다. 'to give (something) away'가 어떻게 각기 다른 느낌으로 사용되는지 살펴본다.

1. Warren Buffett decided to give away almost all of his wealth to people. (워렌 버핏은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2. The mayor gave away the prizes to 12 citizens for bravery. (시장이 12명에게 용감한 시민 상을 주었다.)
3. Our soccer team just gave the game away to the opponent by making so many mistakes. (우리 팀이 너무 많은 실수 때문에

 

 

 

<필자 약력>

동서대 임권택 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

방송 <접속! 무비월드 SBS>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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