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리드

얼핏 보기에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는 매우 사랑스러운 노래 같다. 달콤한 멜로디와 무드 만점의 저음에 실린 로맨틱한 언어는 암울한 집착마저도 아름답게 포장해준다.
하지만 실상 이 노래는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유순한 시어 속에 절망과 울분의 발톱을 감춰둔 이중적 노래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뗄 수 없는 파트너처럼 집착이 찾아오고, 그 집착은 치명적 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집착의 대상이 연인이 아니라, 헤로인과 같은 강렬한 약물이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는 헤어나지 못한 채 그 절망과 파괴의 풍랑 속에 잠겨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Perfect day'에서 얘기하는 완벽한 날은 역설적으로 최악의 날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면 리드가 말하는 최악의 날은 과연 무엇으로 인해 비롯된 것일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이 노래가 만들어졌을 당시 리드가 겪었던 여자 친구 베티에 크론스탯(Bettye Kronstadt)과의 불화이거나,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헤로인과의 투쟁이다. 크론스탯은 나중에 리드의 첫 번째 부인이 된다. 

최근까지도 리드는 무엇이 이 노래의 원동력이 됐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하지 않고 있다. 연인과의 갈등과 약물중독 중 하나이거나 둘 다일수도 있다. 하지만 노랫말 전체를 볼 때 사랑의 아픔보다는 약물중독의 공포가 'Perfect day'의 탄생에 좀 더 강하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게 적합할 듯하다. 이 노래가 약물로 범벅된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1996년)의 중요 넘버로 쓰인 것도 이를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Perfect day'의 첫 부분부터 등장한다. '상그리아를 마시다'(drink sangria)는 표현은 실제로 '피가 흐르는 혈관에 주사로 헤로인을 주입하는 행위'를 뜻할 수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하릴없이 공원과 동물원 등을 쏘다니다가 밤이면 홀로 영화를 본다. 그는 매일 그의 삶을 주도하는 헤로인의 망령에 대해 “함께하니 행복하다.”(I'm glad I spend it with you.)는 식의 역설적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You just keep me hanging on.”(너는 날 매달리게 해.)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Problems all left alone'이 바로 약물중독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단 약물에 취하면 이 세상의 고민거리는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주말을 함께 보내는 대상과 나'(weekenders on our own)에서 그 대상도 사람이 아니라 헤로인 등 약물을 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약물에 취할 때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잊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양 착각하는 것이다. “You made me forget myself. I thought I was someone else, someone good."(넌 나 자신을 잊게 만들어.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으로 알았지. 괜찮은 사람.) 실제로 헤로인 등 강렬한 마약을 사용하는 이들은 취해있는 동안에 자아도취적 만족에 빠진다. 남성의 경우 마치 힘으로 누구든 제압할 수 있고, 어떤 여자든지 넘어뜨릴 수 있다는 헛된 자만에 실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Perfect day'가 결코 말랑말랑한 사랑타령이 아니라는 사실은 마지막 구절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네가 심은 대로 거두리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리드는 신약성서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이 노래의 영감을 얻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Do not be deceived: God cannot be mocked. A man reaps what he sows.) 부정하거나 무자비한 연인에게 적용할 경우에는 강렬한 복수의 암시, 그리고 약물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 무서운 결말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Paul)이 율법주의보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 형식으로 된 신약성서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Perfect day'가 젊은 시절 리드를 괴롭혔던 성 정체성의 혼란에 관한 회고라는 주장도 있다.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고교시절 리드는 양성애적 욕구 감퇴를 위한 충격 치료(shock treatment)를 받은 적이 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치욕스러웠던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창작활동에 큰 밑거름이 됐다. 약물과 성 정체성 문제는 리드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에 몸담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음악에 있어 주요 모티브가 돼왔다.

지난 1997년 'Perfect day'는 아동들을 위한 자선 프로젝트 의 수익금 마련을 위해 재녹음, 싱글로 발매됐다. 그룹 유투(U2)의 보노와 데이비드 보위, 수잔 베가, 엘큰 존, 에밀루 해리스 등이 참여한 이 싱글은 영국차트 정상에 올랐다. 물론 아름다운 얘기지만, “네가 심은 대로 거두리라.”라는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담긴 노래가 아동들을 위한 자선음악으로 쓰였다는 게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혹시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을 가르치려 했던 건가?


Just a perfect day
Drink sangria in the park
And then later, when it gets dark 
We go home 

완벽한 날
공원에서 상그리아를 마시고
나중에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지

Just a perfect day
Feed animals in the zoo
Then later, a movie, too
And then home

완벽한 날
동물원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고
나중에 영화도 보지
그리고 집으로

Oh it's such a perfect day 
I'm glad I spent it with you
Oh such a perfect day
You just keep me hanging on
You just keep me hanging on

너무나 완벽한 날
너랑 함께 하니 즐거워
너무도 완벽한 날
너는 날 매달리게 해
너는 날 매달리게 해

Just a perfect day
Problems all left alone
Weekenders on our own
It's such fun

완벽한 날
골치 아픈 문제는 모두 접어둔 채
우리만의 주말을 함께 하는 건
너무도 즐거워

Just a perfect day
You made me forget myself
I thought I was someone else
Someone good

완벽한 날
넌 나 자신을 잊게 만들어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으로 알았지
괜찮은 사람

Oh it's such a perfect day 
I'm glad I spent it with you
Oh such a perfect day
You just keep me hanging on
You just keep me hanging on

너무나 완벽한 날
너랑 함께 하니 즐거워
너무도 완벽한 날
너는 날 매달리게 해
너는 날 매달리게 해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

네가 심은 대로 거두리라
네가 심은 대로 거두리라
네가 심은 대로 거두리라
네가 심은 대로 거두리라 


'상그리아'(sangria)는 포도주에 소다수와 레몬즙을 넣어 만든 달콤한 적색의 칵테일 술이다. 브랜디(brandy)가 추가되는 경우도 많다. 원래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즐겨 마셨으나, 지금은 유럽/북미 등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맛이 부드러워 마시기에 덜 부담스럽게 느껴지나, 우습게 여겼다가 낭패를 보게 하는 술로 유명하다. 스페인어로 'sangre'는 '붉은 피'를 뜻한다.

“Feed animals in the zoo.”에서 'feed'는 '먹이다', '먹이를 주다'란 의미 외에도 '가족을 먹여 살리다', '식물에 영양분을 주다', '제공하다', '공급하다', '...에 넣다', '만족케 하다' 등 동사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Did you feed the dog in the morning? (아침에 개 밥 줬니?)
2. Don't you know I have a family to feed? (내게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는 걸 모르나?)
3. The electricity must be fed through an underground cable. (전력은 꼭 지하 케이블을 통해 공급돼야 한다.)
4. Star players like LeBron James and Dwayne Wade feed off each other on the basketball court.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 같은 스타선수들은 농구코트 위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얻는 플레이를 한다.) 

명사로 'feed'는 '식사', '영양공급원', '배관장치' 등을 뜻한다. “I'm glad I spent it with you.”에서 'spend'는 동사로는 크게 '돈을 쓰다'와 '시간을 보내다' 등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이 노래에서는 후자가 되는데, 특히 'spend' 뒤에 'with'가 붙으면 '...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된다. 가끔 'spend'는 '돈이나 시간을 낭비하다'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명사로는 자주 쓰이지 않는데, '경비'나 '비용'을 뜻한다.
동사로 쓰이는 경우만 살펴보자. 
1. He thought his money was well spent after giving all he had to the charity. (전 재산을 기부한 후 그는 자신의 돈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썼다고 생각했다.)
2. You spend too much time playing that stupid computer games. (너는 그 바보 같은 컴퓨터 게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Weekenders on our own'에서 'weekender'는 주말에 어딜 놀러 가거나 놀러 온 방문객을 뜻한다.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ow.”는 서양인들에게 훗날 지금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격언으로 쓰이는 말이다. 우리 속담 중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생각난다.

'Reap'은 '수확하다', '거둬들이다' 등 대체적으로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데, 이 경우는 드물게 부정적 느낌이다. 'Sow'는 '씨를 뿌리다'는 의미인데, '마음에 의심이나 혼돈이 싹트다'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구약성서 시편(Psalm) 126편 5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이 곡의 영감이 된 갈라디아서 구절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메시지다.

 

<필자 약력>

동서대 임권택 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

방송 <접속! 무비월드 SBS>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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