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

미국사회가 '흑인인권운동'과 '베트남전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던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자신의 맨션에 갇혀 어리석은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아티스트로서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퇴보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기만큼은 여전했다. 군 입대로 인한 2년 이상의 공백도 스타로서 그의 상품가치는 훼손치 못했다. 1960년대 초 할리우드로 진출한 후엔 영화배우로도 인기가도를 달렸다. 더 이상 심혈을 기울여 앨범을 준비하거나 피곤한 장기 순회공연도 할 필요가 없었다. 출연하는 영화의 주제곡들만으로도 돈벌이와 인기유지에 충분했다. 영화 개봉 즈음 주제곡을 싱글로 발매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노래 홍보가 해결됐다.

하지만 이런 인기는 사상누각이었다. '로큰롤의 제왕'은 매니저 탐 파커 대령(Colonel Tom Parker)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였고 가수로서, 또 배우로서 그의 예술적 가치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다. 로큰롤의 젊은 패기가 빠져나간 그의 음악세계에는 캔디처럼 달콤한 발라드가 끈적끈적한 뿌리를 내린 상태였고, 개봉되는 영화마다 상업적 성공은 계속됐으나 아무도 배우로서 프레슬리나 그가 주연한 영화를 진지한 태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을러질 대로 게을러진 프레슬리의 주변에는 파커 대령이 심어놓은 아첨꾼들밖에 없었다. 그들은 감언이설로 제왕의 눈과 귀를 막았다. 파커 대령은 프레슬리에게 격한 사운드나 메시지의 노래를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제왕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절대로 팬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음악노선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프레슬리가 성공의 안락함에 안주하는 사이 음악계도, 세상도 급변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네 명의 영국 더벅머리 비틀즈(Beatles)와 '포크의 전도사' 밥 딜런(Bob Dylan)이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사이키델릭이 음악계를 휩쓸던 1960년대 후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캔디 팝(candy pop)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어느 날 프레슬리는 갑자기 뒤처진 채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더 이상 자신이 음악계의 중심이 아니란 걸 깨달은 그는 뿌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향 멤피스로 돌아가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적합한 앨범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런 프레슬리의 의지는 'In the ghetto'와 'Don't cry Daddy' 등의 명곡이 실린 < From Elvis In Memphis >라는 위대한 앨범을 낳았다. 이 앨범은 프레슬리의 앨범 중 예술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명반이 됐다.

맥 데이비스(Mac Davis)가 작곡한 'In the ghetto'는 프레슬리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연히 레코딩에 앞서 파커 대령의 반대가 격렬했다. 하지만 프레슬리는 일언지하에 그의 주장을 묵살해버렸다. 당시 프레슬리는 지인 중 하나인 프로듀서 스티브 바인더(Steve Binder)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간섭이 지나친 파커 대령을 비판했다고 한다. “I'll never sing another song that I don't believe in.”(다신 내 마음이 담기지 않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 약속은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In the ghetto' 이후 프레슬리는 더 이상 노래를 통해 세상을 깨우치길 포기했다. 다시 파커 대령의 보호 속으로 숨어든 그는 죽기 전까지 알코올과 약물, 변비, 비만 등으로 고통 받았다. 극심한 변비로 죽어가는 프레슬리를 살리기 위해 의사들은 창자의 대부분을 떼어내는 결장 조루술(colostomy)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왕은 이런 수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977년 4월16일 그의 그레이스랜드 맨션 화장실에서 호사스러운 변기를 부여잡은 채로 신의 품에 안겼다.

'In the ghetto'는 1960년대에 들어선 후 더욱 더 피폐해지기 시작한 흑인 빈민가의 현실을 고발한 위대한 노래다. 이 곡의 원제는 'The vicious circle'로 프레슬리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빈민가의 참상을 숨 막힐 듯 무거운 목소리로 고발한다.

한 소년이 아무 축복도 받지 못한 채 빈민가에서 태어난다. 사랑 없이 성장한 소년은 밤거리를 헤매며 도둑질과 싸움을 일삼는다. 청년이 된 그는 차를 훔쳐 이 지옥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총을 맞고 싸늘한 빈민가 거리에 쓰러진다. 그를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가 슬피 우는 가운데, 죽은 청년의 아기가 태어난다. 아무 변화도 없다면, 분명 그 아이도 아버지가 걸었던 인생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섬뜩한 메시지로 미국사회에 경고장을 던진 이 노래는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 발생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단 한 차례 프레슬리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In the ghetto'는 대중음악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모범답안을 제시한 위대한 노래다.

 

As the snow flies
On a cold and gray Chicago morning
A poor little baby child is born
In the ghetto
And his mama cries
Cause if there's one thing that she don't need
It's another hungry mouth to feed
In the ghetto


눈발이 날리던
매서운 추위의 회색빛 시카고 아침에
불쌍한 아기 하나가 태어났지
빈민가에서
그녀의 엄마는 울었지 
또 하나의 배고픈 입을 먹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빈민가에서


People, don't you understand
The child needs a helping hand
Or he'll grow to be an angry young man some day
Take a look at you and me
Are we too blind to see?
Do we simply turn our heads
And look the other way?


사람들은 이핼 못하지
소년에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단 걸
아니면 언젠가 성난 청년이성장할 거란 걸
우리를 돌아보세
우린 눈이 멀었을까?
아니면 일부러 고개를 돌려
딴 델 보는 걸까?


Well the world turns
And a hungry little boy with a runny nose
Plays in the street as the cold wind blows
In the ghetto


세상은 변하고
코흘리개 소년은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놀고 있지
빈민가에서


And his hunger burns
So he starts to roam the streets at night
And he learns how to steal
And he learns how to fight
In the ghetto


배고픔은 그를 끓어오르게 하고
그는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지
도둑질을 배우고
싸움을 배우지
빈민가에서


Then one night in desperation
A young man breaks away
He buys a gun, steals a car,
Tries to run, but he don't get far
And his mama cries


어느 날 밤 절박한 청년은
멀리 달아나려 했지
그는 총을 사고, 차를 훔쳤어
도망치려 했지만, 멀리 가진 못 했어
그의 엄마가 우네


As a crowd gathers round an angry young man
Face down on the street with a gun in his hand
In the ghetto


사람들이 이 성난 청년 주위로 몰려들었지
그는 총을 쥔 채로 길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어
빈민가에서


As her young man dies
On a cold and gray Chicago morning
Another little baby child is born
In the ghetto


그녀의 아들이 죽은
매서운 추위의 회색빛 시카고 아침에
또 하나의 아기가 태어났지
빈민가에서

 

최근 미국에서 흑인이나 남미, 특히 푸에르토리코 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지역을 통칭하는 뜻으로 알려진 '게토'(ghetto)는 원래 중세 유럽에서 '유태인들을 격리해 살게 했던 구역'(Jewish confinement)을 말한다. 지난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의 광풍 이후 유태인들에 대한 증오가 극심해지면서, 그들은 게토에서 모여 살게 됐다. 특히 베니스 등 당시 이탈리아 대도시에선 아예 벽을 세워 유태인들의 게토 밖 출입 자체를 불허했다. 그 안에서 유태인들의 자치는 어느 정도 허용됐으나, 그들이 시민권을 얻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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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유럽을 장악했던 1939-1944년에 유태인들은 또 다시 게토에 갇히게 됐다. 나치는 유태인과 집시들을 효율적으로 핍박하기 위해 그들을 격리했고, 게토에 갇힌 그들 대부분은 결국 수용소로 끌려가는 운명을 맞이했다.

미국에서 게토란 말이 유행하게 된 건 역시 흑인인권운동의 열기가 한창이던 1960년대부터이다. 이때 흑인들 다수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 게토는 자연스럽게 그 범위를 넓혀갔다. 흑백 차별에 대한 미국 게토 흑인들의 울분은 점차 랩이라는 형태의 음악으로 승화됐다. 현재 미국 내에서 게토는 가난한 소수인종이 몰려 사는 지역을 뜻한다. 

'A poor little baby child is born'(불쌍한 아기 하나가 태어났지)에서 'poor'는 '불쌍한'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poor'하면 '가난한'을 떠올리는데, '좋지 못한', '형편없는' 등의 뜻도 있다. 몇 가지 다른 예를 들어보자.
1. The parents were too poor to feed their children. (부모가 너무 가난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었다.)
2. My grades were so poor that I'd got kicked out of the school. (내 성적이 너무 나빠서 학교에서 쫓겨났다.)
3. How could you be so mean to that little poor thing? (그 작고 불쌍한 것에게 어쩜 그렇게 못되게 굴 수 있니?)

“It's another hungry mouth to feed.”를 직역하면 “그것은 먹여야 할 또 하나의 입이다.”가 된다. 풀어서 설명하면 새롭게 태어난 아이를 먹여야 되는데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mouth to feed'는 '부양가족'을 뜻한다.

“Are we too blind to see?”(우린 눈이 멀었을까?)에서 'blind to see'는 실제로 앞을 못 보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깨우치지 못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The world turns.”에서 'turn'은 거의 대부분 '돌다'란 의미로 쓰이는데, 이 경우는 '변하다'란 뜻이다. '변하다'란 의미로 쓰인 경우를 두 가지만 들어본다.
1. All the leaves have turned brown. (나뭇잎들이 모두 누렇게 변했다.)
2. The man turned violent when his request was turned down.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광폭해졌다.)

'Runny nose'는 '콧물'이다. 감기로 인해 콧물이 흘러 의사나 약사를 찾는다면, “I have a runny nose.”라고 하면 된다. 콧물뿐만 아니라 기침도 나고 목도 아프다면 “I have a runny nose, a cough and sore throat.”이라고 해라. 왜 'runny nose'와 'cough' 앞에는 'a'가 붙는데 'sore throat' 앞에는 없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목구멍은 누구나 다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So he starts to roam the streets at night.”에서 'roam'은 '어슬렁거리다', 또는 '배회하다'를 뜻한다. 그러니까 'roam'이 'walk'(걷다)와 완전히 같은 건 아니지만 흡사한 단어라고는 할 수 있다. '걷다'라는 의미의 'walk'와 뜻이 비슷한 단어로는 'stroll'(산책하다), wander(거닐다, 헤매다), 'ramble'(산책하다), 'saunter'(느긋하게 걷다) 등이 있다.

“Then one night in desperation.”에서 'in desperation'은 '자포자기하여', '절망하여'를 뜻하는데, 'out of desperation'과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A young man breaks away.”에서 'break away'는 '달아나다'를 뜻한다. '(...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다', '(시합 등에서 (제치고 나가다)' 등을 뜻한다. 몇 가지 예를 본다.
1. He broke away from home. (그는 집으로부터 도망쳤다.)
2. I broke away from my best friend because he was trying to make a pass at my wife. (나는 내 아내에게 수작을 건 가장 가까운 친구와 절교했다.)
3. We finally broke away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우린 결국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났다.)
4. Usain Bolt broke away from the competitors at the last second. (우사인 볼트는 마지막 순간에 다른 도전자들을 제쳤다.)

 

<필자 약력>

동서대 임권택 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

방송 <접속! 무비월드 SBS>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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