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세계적으로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언어는 중국어다. 또한 중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인 한자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녔다. 2013년 기준으로 중국의 문맹률은 39% 수준이다.

그런데 유아사망률과 기대수명이 거의 전 세계 최하위권 수준인 북한의 경우 문맹률이 0~1% 수준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2011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와 2012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발표한 자료가 그 근거다. 북한의 문맹률이 낮은 이유로는 흔히 해방 직후부터 한자 쓰기를 폐지한 것과 토지 개혁을 위한 사상 계몽, 체제 선전을 위한 교육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한글, 즉 훈민정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문맹률도 약 2%로 알려져 있다.

새로 만든 문자의 창제 원리와 그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히고 그것을 해설한 책을 간행한 일은 훈민정음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 문화재청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발간한 ‘훈민정음(해례본)’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아주 교묘하여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안에는 깨우칠 수 있는 문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훈민정음을 쉽게 만든 이유는 누구나 알기 쉽게 사용하여 백성의 삶을 평안하게 하려는 목적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태생 배경으로 인해 훈민정음은 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훈민정음이 배우기 쉬운 문자라는 사실은 유엔 산하의 유네스코(UNESCO)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 기관이 1990년부터 매년 9월 8일에 시상해오고 있는 ‘세종대왕 문해상’이 바로 그 증거. 이 상은 전 세계에서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헌신하는 개인 및 단체, 기관들을 선정해 소정의 상장과 메달, 그리고 3만8000달러의 상금을 지급한다. 유네스코가 상의 이름에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한글이 그만큼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는 글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글은 다른 문자와 달리 글자 자체가 발음기호이므로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영어의 경우 표현할 수 있는 모음이 A, E. I. O. U의 5개에 불과하지만 한글은 기본 모음만 해도 10개인데다 10여 개의 복모음까지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영어의 경우 알파벳 26자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수백 개밖에 되지 않지만, 한글 24자로는 1만1000여 개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한글의 과학성은 음소와 음절, 형태소가 문자의 형태에 정직하게 투영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음소란 쪼갤 수 없는 음의 최소 단위로서, 영어의 알파벳도 음소가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영어는 몇 개의 음소로 이루어지는 말소리 단위인 음절과 단어가 뜻을 가지는 최소단위인 형태소가 문자 자체의 형태에서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한글은 최상의 디지털 친화 문자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할 때 한글은 바로 입력이 가능한 반면, 중국어나 일본어는 음과 뜻을 일일이 따로 변환해 입력해야 한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한글은 문자구성 및 전달속력에서 영어보다 3배 빠르며, 중국어보다 8배, 일본어보다 5배나 빠른 문자작성 및 전송능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영어의 경우 동일한 모음이라도 단어마다 다른 발음을 낸다. 하지만 한글은 하나의 모음이 내는 발음이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이러한 특성은 미래에 더욱 활성화될 음성인식기술에서 매우 뛰어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세계문자올림픽’은 학자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에서 역대 최고 문자를 뽑는 대회이다. 2009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대회가 열린 데 이어 2012년 10월에는 태국 방콕에서 2차 대회가 열렸다. 자국에서 창조한 문자를 가진 국가 16개국이 모여 치러진 1회 대회에서 한글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27개국이 참가한 2회 대회에서도 1위에 올랐다. 이 대회의 평가기준은 문자의 기원 및 구조, 유형, 글자 수, 글자의 결합능력, 응용 및 개발 여지 등이다.

일본 국제교양대학교 노마 히데키 객원교수는 ‘한글의 탄생’이란 저서에서 인류 역사상 문자가 돌이나 뼈, 갑골 같은 게 아니라 목판에 새겨져 종이에 인쇄되고 제본된 책의 형태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건이 벌어졌다고 묘사했다. 바로 한글의 창제 목적과 운용법 등을 밝힌 ‘훈민정음(해례본)’을 두고 일컬은 말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자국 언어를 표현하기 위한 새 문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 문자를 만든 창제자가 누구인지를 밝힌 경우는 없다. 더구나 새로 만든 문자의 창제 원리와 그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히고 그것을 해설한 책을 간행한 일은 훈민정음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훈민정음을 다루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 역시 그에 못지않게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저작물이다. 이 책은 목판본 1책으로서 전체 장수는 33장인데, 그중 세종대왕이 직접 작성한 ‘예의’ 부분은 4장이고, 집현전 학사들이 쓴 ‘해례’ 부분은 29장으로 되어 있다. 책 이름을 글자 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도 한다.

체재상 예의 부분과 해례가 독립되어 있는데, 임금이 작성한 부분은 큰 글자로, 신하들이 작성한 부분은 작은 글자로 판을 새겼다. 또한 이 책의 바탕이 되는 목판 원고의 글씨를 쓴 사람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당대의 명필 안평대군으로서, 서예학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자료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이래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한국 정부는 양력으로 이 책의 발간일을 계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한 뒤 1946년부터 매년 국가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