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도 셰프. (사진=권기도 셰프)

[이코리아] = 쿡방, 먹방 등 요리·음식 프로그램 인기에 대학교마다 조리학과들이 신설됐고 많은 졸업생들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그 중에 호주 '르꼬르동 블루'에서 유학해 세계적인 셰프의 길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권기도 셰프의 유학시절 이야기를 8일 그의 자술로 들어봤다.

지난 2006년 봄 어학연수를 위해 몸을 실었던 비행기에서 내린 지 10년 후 2016년 나는 수 셰프(보조 셰프)가 되어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정해진 운명 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07년 '르꼬르동 블루'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서툰 칼질부터 시작해 무엇을 만드는지도 잘 모르면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요리를 하고, 맛보며 조금씩 기본을 배워 나갔다.

구직 활동을 할 시기인 2010년에는 일식 퓨젼 레스토랑 'Toko'에 입사했다. 오전 8시에 출근하고 밤 12시가 되서야 겨우 서비스가 끝나는 고된 주방 생활을 했다. 이때 비로소 진짜 셰프의 모습이 조금은 배어 들었고 요리의 범위도 넓히게 됐다.

2013년 다시 시드니로 돌아온 후 일하게 된 곳이 지금까지 공부한 프랑스 요리를 잘 살릴 수 있는 호텔 'Sofitel'이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직접 주방을 진두지휘하며 이그제큐티브 셰(Executive Chef)와 함께 시즌 메뉴, 매주 만드는 스페셜 메뉴를 직접 만들었다. 그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분자요리를 연습하며 한식의 세계화란 화두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강하고 무거운 한국 특유의 장을 좀 더 가벼우면서 산뜻하게 만들어 서양인들 입맛에 맞게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초계탕을 이용한 테린, 나박김치 국물을 부드러운 고체 형태 젤로 변형시킨 아뮤즈 부쉬, 사과, 김치 등 여러 가지 요리를 이용해 다채롭게 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높은 벽에 부딪히면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더 새롭고 높은 수준의 요리에 대한 갈구가 커져갔다. 그래서 책과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공부했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 보기만 해서는 내 것이 되지 않았다.

이에 나름 승승장구하던 호텔 생활을 접고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세계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렵게 결정한 다짐을 주위 동료들에게 털어 놓았을 때 대부분 만류했다. 호텔과 파인 다이닝은 확연히 다른 곳이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호텔에서 수 셰프의 위치까지 오른 경력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시작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늦게 시작한 요리였기 때문에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도 없고 후회를 남길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돌렸다.

오랜 기간 파인 다이닝에서 떨어져 있었던지라 나의 원래 직급으로는 절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시드니 내에 모든 햇 레스토랑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나는 낮은 직급으로 지원해 그토록 바라던 레스토랑 'Berowra Waters Inn'에 입사하게 됐다.

모던 프랑스 요리를 표방하는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셰프들과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매달 새로운 메뉴를 만들며 요리와의 전쟁을 치렀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토마토만을 이용해서 열 가지의 다른 재료법으로 만든 요리를 선보였고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다채로운 요리법과 맛을 경험하며 나는 입사 3개월만에 승진하는 기쁨까지 얻게 됐다. 더불어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한 끝에 1햇 레스토랑을 2햇으로 상승시켰고, 2년 연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내가 추구하는 요리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어떻게 하면 각기 다른 나라의 요리들이 섞일 수 있을까?'라는 화두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그 재료의 맛을 최상으로 끌어내고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재료 본질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추구하는 요리다.

현대적 기술, 전통의 맛, 각 나라의 특유의 맛을 잘 조합해 가장 맛있고 가장 아름다운 요리를 만들고 싶다. 오감이 동시에 행복할 수 있는 요리를 한국인 조리사가 만든다면 그것이 최고의 한식이라고 생각하며 한식의 세계화에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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