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조강지처 소파

오빠가 이사를 하면서 소파를 없앤다는 말에 얼른 쫓아가 침을 발랐다. 영국 냄새가 물씬 나는 일명 체스터필드 소파다. 등받이와 팔걸이 높이가 같고, 가죽 주름을 일정 간격으로 마감한 단추가 깊게 박혀 있다고 하면 연상되는 바로 그 고전적 디자인의 소파다. 초록빛깔의 가죽은 중후하고 멋지다.

우리집 거실에도 소파가 없는 건 아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아주 실용적인 소파를 하나 마련했다. 평상시에는 소파 모양을 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등받이를 움직이면 침대로 변신하는 소파침대다.

집이 작아서 침대 따로 소파 따로 둘 수 없을 때 이것 하나로 낮에는 소파 밤에는 침대로 사용했었다. 등받이를 움직이기 귀찮은 날에는, 낮에도 침대 모양으로 거실을 차지했다. 방이 하나 더 많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드디어 제대로 된 침대를 마련해서 방에 두고, 소파침대는 소파의 모양을 하고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이 기회에 소파도 새것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이사하고 난 뒤라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 않으니 소파침대의 천만 갈아입히고 거실에 앉혔다.

이사하고는 등받이를 세워서 소파 모양만 고집했었는데, 어느 날 누워서 TV를 본다고 옛 추억을 더듬어 침대로 만든 후 그 편안함에 반해서 계속 침대 모양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사 온 집은 거실이 넓어서 소파를 침대로 만들어도 그리 답답하게 보이지 않았고, 등받이용으로 몇 개의 쿠션을 올려놓으니 침대인지 소파인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어쩌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소파로 만들어 거실을 넓히는데, 밤이 되면 불편하다고 다시 침대로 만들고 올라앉아 뒹굴뒹굴 야식을 먹는다. 우리집 사람들은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다 먼저 잠들면 임자다. 아들이고 딸이고 이제는 무거워서 안아 옮길 수 없으니 이불 하나 던져주고 끝이다.

체스터필드 소파는 영국의 체스터필드 백작이 디자인해서 혹은 애용한 것이라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 18세기 영국 체스터필드시의 4대 시장이었던 필림 도머 스탠호프의 주문으로 만들었다는 설 등 그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여럿이다. 여하튼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고급 저택의 거식을 장식했으며 신사 클럽의 전형적 소파로 자리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물건이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우리의 거실에서의 생활 패턴도 바뀔 것이 분명하다.

거실 중앙에 체스터필드 소파를 들이면서 낡은 소파침대는 없애기로 했다. 그런데 대형폐기물은 별도로 신고를 하고 배출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일단 소파로 만들어서 부피를 줄이고 창가 쪽으로 밀어두었다. 아빠가 집에 있을 주말에나 버려야겠다면서 미루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 익숙해진 소파와의 이별이 아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기도 좋고 멋진 소파지만 아이도 남편도 여기에 앉기보다는 창가 쪽 소파침대에 몸을 던진다. 누구도 소리 내어 “다시 등받이를 내려서 침대로 만들어 원래대로 쓰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몸은 낡은 소파침대에 익숙해 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소파 모양으로 만들어 작아진 그 자리에서 잠이 들면 불편하겠지만 역시 이불을 덮어줄 수밖에 없다.

큰 결정을 내렸다. 우리집 거실인데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는 낑낑거리면서 소파침대의 등받이를 내려 다시 침대로 만들고 원래의 자리로, 멋진 체스터필드 가죽소파를 창가 구석진 자리로 옮겼다. 늦은 시간 귀가한 가족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거실에서 우리가족의 시간은 체스터필드 소파보다 소파침대가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조강지처가 최고야”라는 어린 딸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맞는 말인지 아닌지, 어쨌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물건은 다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다. 이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만큼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우리집 낡은 소파침대가 ‘고급’ ‘아름다움’ ‘세련됨’ 뭐 이딴 것으로 존재했다면 가죽소파가 들어오는 그날 그의 존재는 바로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가치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빛나는 것이다. 소파 하나도 이러니 사람의 존재 가치는 어떻게 더 말하겠는가. 

◇ 꽃과 커피를 사랑하는 식탁

그런가 하면, 우리집에는 또 하나 사연이 있는 가구가 있다. 식탁이다. 선배가 큰집으로 이사 가면서 6인용 고급 식탁을 마련했다. 아름다운 주방은 주부의 로망이다. 싱크대 서랍 손잡이 하나하나 예쁜 것으로 고집하고 장식한 주방에 어울리는 멋진 식탁을 찾기 위해서 발품도 꽤 팔았던 것 같다.

가구단지를 찾아 상당히 먼 곳까지 다녔고, 앤틱 시장이니 수입가구가게니 족히 한 달은 돌아다닌 것 같다. 오지랖 넓은 나는 따라다니면서 별 참견을 다 했고,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식탁을 찾았다. 바로크 양식이니 로코코 스타일이니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고 엄청 크고 반짝반짝 빛나는 좋은 것이라는 사실만 알았다, 식탁 다리는 나선형으로 꼬여서 마치 건축물의 기둥과 같이 웅장하고 도드라진 부조는 장중하고 엄격한 느낌마저 준다. 의자 다리 하나하나는 마치 독수리 발과 같은 모양을 하고 발톱은 도금되어 반짝였다. 새집의 커다란 주방에 자리한 식탁 위에는 항상 꽃이 장식되었고 여자들의 수다는 커피향과 더불어 끝나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배는 이사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사업차 멀리 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식탁은 아직 학교를 마치지 않은 아들 둘을 위해서 마련한 작은 오피스텔로 옮겨졌다. 다른 물건들은 다 정리를 했는데, 식탁은 너무 크고 고급이라 쉽게 원하는 이도 없었고 헐값에 팔고 싶지 않은 주인의 마음이 더해져서 이렇게 남겨졌다. 어쩌면 조만간 귀국해서 다시 꾸미고 사는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도 무시하지 못했다. 

선배는 아들을 챙긴다고 간혹 귀국했는데, 된장 들고 고추장 들고 선배 만나러 가면 오피스텔 공간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식탁이 참 안쓰러웠다. 식탁 위에는 꽃이 아니라 커피가 아니라 머슴애 속옷이 굴러다니고 냄새나는 양말 한 짝이 굴러다니고 어제 먹은 컵라면이 그대로 올려져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면 뭐하나. 주인이 챙기지 않으면 호마이카상만도 못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도 방이 하나 더 많은, 주방이 넓어서 음식을 하는 자리와 밥을 먹는 자리를 구분 짓는 칸막이가 있는 그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도배를 마치고 나는 선배에게 가장 먼저 국제전화를 했다. 선배의 그 식탁을 잘 모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니 나한테 팔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이사 오는 날, 오피스텔에 들려서 의자가 6개나 되는 식탁을 이삿짐 차에 실었다. 선배의 두 아들은 공간이 넓어졌다고 좋아라한다. 선배는 선뜻 팔지도 없애지도 못해서 껴안고 있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식탁을 가져간다니 앓던 이 뽑은 것만 같다는 말을 하면서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없는 돈에 집을 넓히고 이사하는 입장이라 쓰레기통 하나 바꾸지 못하고 챙겼는데, 식탁만은 4인용 싸구려 식탁을 버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마치 작품 같은 웅장한 식탁을 가져다 앉혔다. 그래 이거다. 이놈은 오피스텔의 작은 공간에 있을 놈이 아니다. 이 정도의 공간은 되어야 제 자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제가 가진 가치만큼의 자리를 언젠가는 찾아가는 법인가보다. 오늘도 나는 식탁 위에 꽃을 꽂고, 커피향을 즐긴다.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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