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파라치' 피하려는 판매점, '은어'로 보조금 공유하는 소비자들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있는 한 매장 매대에 '폰파라치 경고' 공지가 붙어 있다. 강주희 기자

지난 15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 테크노마트. 평일 저녁시간임에도 저렴하게 휴대폰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러 매장을 돌며 가격을 물어보거나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휴대폰 커뮤니티 사이트에 소개된 매장으로 가봤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가입 신청서를 작성 중이었다. 매장 한 쪽에서는 상담이 진행 중이었다. 이를 지켜보자 남성 직원이 "한 바퀴 돌고 다시 오라"며 쫒아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 보조금 단속을 우려한 것이다.

매장 관계자는 “정장을 입은 남성들이 와서 가격들을 물어보면 일단 정부 사람(방송통신위원회 직원)으로 의심부터 한다. 테크노마트를 중심으로 불법 보조금이 성행한다는 소문이 도니 감시하러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LG전자 V10가 출시된지 일주일째 된 날이었다.

또 다른 매장 앞에는 ‘폰파라치 경고’ 공지가 붙어 있었다. 포상금을 목적으로 휴대폰 판매 내용을 녹음할 시 적발되면 고소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영업장 내 감청장비가 비치 중’이라는 문구도 써있었다. 폰파라치들의 기승이 얼마나 심각한지 '고소조치'를 빨간색으로 강조했다.

직원에게 갤럭시 S6가격을 물어보자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 보여줬다. 폰파라치를 의식한 것이다. 기자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자 직원은 "녹음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폰파라치 포상금이 워낙 높다보니 일부 악성 폰파라치들이 극성을 부린다는 설명을 그제서야 들을 수 있었다.

방통위 산하 기관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는 올해 초 이동통신 3사와 협의해 불법 보조금 신고 포상금액을 최대 1000만원으로 올렸다. 일부 폰파라치들이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영세 판매업주들도 방어에 나섰다. 신고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공방은 첩보전을 연상케 했다.

◆ ‘현아’ ‘59육’ 은어로 보조금 정보 공유

이날 휴대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V10를 싸게 구입했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SK텔레콤이 지난 8일 영업재개를 하면서 경쟁업체들이 고객 사수에 나서며 벌어진 일이다. 사수의 수단은 ‘보조금’이었다.

한 네티즌이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휴대폰을 저렴하게 산 후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강주희 기자

한 네티즌은 ‘ㅅㄷㄹㅌㅋㄴㅁㅌ에서 르그 59욕 ㅂㅇ 현아 29에 싸게 구매했다’는 글을 올렸다. 월 5만9000원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한 뒤 V10를 현금 29만원에 구입했다는 애기다. 여기서 ‘ㅅㄷㄹㅌㅋㄴㅁㅌ’는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르그’는 LG유플러스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처럼 불법 보조금 정보는 주로 은어 등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진다. 정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다. 15일 기준으로 이 사이트에서 ‘ㅅㄷㄹ V10’를 검색하니 게시글이 50여개가 넘게 떴다. 게시글 하나에 댓글은 10여개 달렸다.

반면 불만을 토하는 글도 있다. 자신을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비슷한 시기에 지인이랑 같은 기종의 휴대폰을 샀는데 비싸게 구매했다"며 "발품을 판 보람이 없었다. 이래저래 휴대폰 사기 어려운 시기다"라고 전했다.

◆ 단통법 1년, 혼란스런 이통통신 시장

단통법 시행 1년을 맞았지만 불법 보조금을 둘러싼 백태는 여전하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단통법이 성공적으로 안착됐다고 자평했지만, 유통가는 여전히 혼란에 빠진 상태다.

특히 영세 판매대리점들은 줄줄이 폐업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유승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휴대전화 영세 판매대리점은 지난해 12월 3만2289개에서 올해 6월 2만8752개로 3537개(11%) 줄었다.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싸늘하다. 단통법 이후 휴대폰 구입 가격이 올라 저렴한 가격대를 찾아 온오프라인으로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미래창조과학부가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한 단통법 1주년 댓글 이벤트에는 '전국민 호갱시대가 열렸다’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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