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영등포센터 정찬희 분회장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영등포센터 정찬희 분회장. 사진=장지선 기자

“그동안 삼성전자 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못 보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2013년 10월 故 최종범 기사, 지난해 5월 故 염호석 기사가 세상을 등지면서 남긴 유서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는 2013년 7월 첫 깃발을 들어 올린 이후 지난 2년간 두 사람의 기사를 떠나보냈다.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로 불리는 삼성을 상대로 노조를 꾸린 이들은 왜 목숨 건 투쟁을 시작했을까.

15일 서울 신풍역 근처 조용한 북카페에서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영등포센터 분회장 정찬희 씨(35)를 만나 2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노조의 ‘노’ 자도 몰랐다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수리 기사들이 힘을 합쳐 만든 노동조합이다. 기사들은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자 서비스가 외주화한 도급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이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수리 기사들은 기본급 없이 수리하는 제품 한 건당 정해진 성과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수리 요청인 일명 ‘콜’이 중요했는데, 센터 사장이 콜을 끊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서 사장 눈 밖에 나면 하루 종일 일 없이 지내는 날도 있었다.

정찬희 분회장은 “처음에는 노조의 ‘노’자도 몰랐다”며 “부산에서 수리 기사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힘을 보태자고 생각해 합류한 게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는 “돈 문제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부당한 대우가 많았다”며 “나가라는 말 한 마디에 대꾸 한 번 못하고 짐을 싸는 동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이 많은 날에는 사측에서 마음대로 근무시간을 조정해 사전 통보 없이 야근을 하는 날도 잦았다.

사측의 지속적인 부당한 대우에 맞선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는 출범 1년 만에 임금을 '기본급+건당 성과급' 체계로 바꾸는 기본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76년간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의 벽은 높았다.

◇ 거대한 삼성의 ‘벽’

노조가 결성된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故 최종범 기사는 삼성의 노조 분쇄, 조합 탈퇴 압박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40여일 간 노숙농성의 시발점이 됐던 故 염호석 기사의 죽음 역시 사측의 노조 와해 시도와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조합원들의 모습이 원인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도 노조 와해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삼성 측에서는 단번에 노조를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조금씩 노조원들을 압박해 탈퇴시키는 방식으로 노조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고 정찬희 분회장은 전했다.

그는 “삼성에서 자주 썼던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센터를 폐업하는 것이다. 사측에서 센터를 폐업하면 그곳에서 일하던 기사들은 고스란히 길에 나앉아야 한다. 그 사이 본사에서 사람이 내려와 폐업한 센터 앞에 대형 버스를 이용해 이동 수리 센터라고 하며 수리를 해준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영등포센터 조합원들. (사진=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제공) 장지선 기자

삼성은 폐업한 센터를 두세 달 후에 다시 열고 해고됐던 기사들은 고용승계 된다. 하지만 두세 달 간 돈을 받지 못한 조합원들은 회사를 떠나거나 조합을 탈퇴한다. 지난해 10월 진주센터의 경우는 사측의 폐업 방식으로 60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10명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지난해 3월 아산센터에서는 센터가 폐업되고 조합원들이 노숙 농성을 벌였는데 삼성에서 경찰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연행해 가는 과정에서 수갑을 뒤로 해서 채우는 등 강압적인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의 끊임없는 노조 와해 시도에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는 초기보다 조합원 수가 줄어들었다. 특히 정찬희 씨가 분회장인 영등포센터는 처음 노조가 결성됐을 때 조합원이 70명으로 100%에 가까운 참여율을 보였지만 15일 현재 21명이 남아있다.

노조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조에서 탈퇴하면서 현재 영등포센터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혼재된 상태다.

정찬희 분회장은 “노조를 탈퇴한 분들은 생계 문제가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우리 서비스지회에서 모두 끌어안아야 할 분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이유

정찬희 분회장은 “노조가 생기면서 부당행위가 많이 없어졌고, 있다 해도 대응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사측 입맛대로 정해졌던 근무 시간도 이제는 주 40시간으로 정해졌다”고 변화를 언급했다.

이어 “노조 활동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이번 달부터 투표를 통해 2기 간부 체제로 서비스지회가 변화하고 임금단체협약 준비 때문에 또 다시 무척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찬희 분회장의 카카오톡 소개글에는 '우리는 벌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말이오'라고 적혀 있다. (사진=카카오톡 캡처) 장지선 기자

정찬희 분회장과 인터뷰 전 만날 장소를 정하면서 보게 된 그의 카카오톡 소개글에는 ‘우리는 벌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말이요!’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정찬희 분회장에게 그 의미를 묻자 ‘송곳’이라는 제목의 웹툰 이야기를 꺼냈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은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으로 정찬희 분회장이 언급한 대사는 4부 1화에 나온다. 이는 비정규직을 패배자 취급하며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용자에 대한 일갈이다. 여기에는 ‘패배는 죄가 아니오’라는 외침이 덧붙어 있다.

정찬희 분회장은 “우리는 벌을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내가 분회장으로 있는 영등포센터를 포함해 전국의 수리 기사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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