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에 불량부품이 쓰였다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정부당국의 무사안일한 관리감독 내지 안전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가뜩이나 팍팍한 전력사정에 발전 용량 100만kW급인 영광 원전 5·6호기의 전면 가동중단 조치까지 겹치면서 올 겨울에 사상 최악의 전력대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광 5·6호기 위조부품 무더기 사용...연말까지 가동중단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2003년부터 지금까지 9년간 영광 5, 6 호기 등 국내 원전 5곳에 품질검증서가 조작된 미검증 부품 5000여 개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감독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최근 원전부품 납품업체로부터 제출받은 해외 검증기관 검증서에 대한 전수조사를 펼친데 따른 것이다.
조사결과 8개 업체가 제출한 총 60건의 검증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2곳의 해외 품질검증기관 중 유독 1곳에서 발행한 품질 검증서가 집중적으로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위조된 검증서를 통해 원전에 납품된 미검증품은 모두 237개 품목의 7682개 제품으로 이 가운데 실제로 원전에 사용된 것은 5,233개라고 말했다. 금액으로는 8억2000억원 어치에 이른다.
미검증품은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 '안전성품목(Q등급)' 대체품인 '일반 산업용' 품목들이었다.
한수원은 2002년부터 원전부품 중 Q등급을 구입하기 어려운 경우 일반 산업용 제품을 기술평가와 성능시험을 거쳐 Q등급 제품으로 사용해 왔다.
이들 제품은 영광 5,6호기에 대부분(98.4%) 투입됐고, 영광 3,4호기, 울진 3호기에도 일부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경부는 발전용량이 각각 100만 KW급인 영광 원전 5,6호기의 전반적인 안전점검을 위해 올해말까지 가동정지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업체들을 광주지검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지경부는 문제가 된 미검증 부품들은 원전의 핵심안전설비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방사능 누출과 같은 원전 사고의 위험은 없지만, 미검증 부품 전체를 전면교체한다는 원칙하에 교체작업에 착수하겠다고 설명했다.
◇작년 ‘9·15사태’를 능가하는 최악의 정전대란 오나
정부가 발전 용량 100만kW급인 영광 원전 5·6호기의 가동을 올 연말까지 '스톱'시키기로 하면서 사상 최악의 전력대란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퍼져나오고 있다.
자칫하다간 전국이 순환정전(블랙아웃)에 들어가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지난해 ‘9·15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달과 다음달 예비전력은 275∼540만 kW수준으로 예상되지만, 내년 1,2월에는 예비력이 뚝 떨어져 230만 kW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경부는 영광 5·6호기 부품교체가 내년 1월까지 지연될 경우 예비전력은 30만kW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경부에 따르면 올 겨울 이상한파가 한반도를 덮칠 경우 올 겨울 전력 수요는 지난해보다 635만kW 증가한 8018만kW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전력공급량은 지난해보다 고작 97만KW 늘어난 8048만㎾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국의 원전은 그야말로 '부상병동' 수준이다.
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전체 23기 원전 중 고리3호기와 영광3호기, 울진 4호기, 울진 6호기 등 4기가 예방정비를 받고 있고 월성 1호기는 고장으로 멈춰선 상태다.
이에따라 현재 공급능력은 6884만kW 정도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이달 1240만㎾, 다음달 436만kW 규모의 예방정비가 준비돼 있기 때문에 발전소 1기라도 궤도를 이탈할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가 올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9월15일 정전사태 때 예비전력이 24만kW까지 떨어져 전국적인 대규모 순환정전이 이뤄진바 있다.
이번 겨울 역시 예비전력이 30만kW까지 곤두박질친다면 1년만에 대규모 정전사태를 다시 맞을수도 있다.
겨울철 전력난 우려에 대해 홍 장관은 "1월 중순 전력난이 발생할 경우 수요관리를 통해 업체로부터 비용을 지불하고 170만㎾ 전기전력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년 대비 일정 퍼센트의 전기 사용량을 줄이도록 강제하고, 개통을 앞두고 있는 열방합 발전소의 준공시점을 두달 정도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홍 장관은 이날 오후 한전과 전력거래소 등 유관기관장들을 긴급소집해 비상전력수급대책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