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한-농협-우리-하나은행, 정-관계 인사들의 '먹잇감' 전락

【서울=이코리아】이코리아 =  최근 은행권을 중심으로 '정치금융'이 횡행,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4대 부문 구조개혁 중 금융개혁은 완전 실패했다는 견해가 금융권에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이나 전현직 고위 관료층에서는 사외이사를 비롯 금융지주 사장-회장이나 은행장 등 '물 좋은' 금융권 인사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려 하고, 은행권은 그런 정치권과 관계 인사들을 영입해 정부나 정권의 압력을 막아보려는 속셈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착 관계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은 후진성을 씻지 못하고, 금융소비자는 골탕을 먹는 악순환이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 국민은행, '내분'에 이어 정치권 '지분거림' 심해

▲ KB국민은행.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은 연초부터 지배구조 개선안의 일환으로 지주 사장직을 되살리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전직 국회의원을 비롯 대선 캠프 출신을 ‘꽂으려는’ 노골적인 정치권의 압력으로 결국 지난 9일 차기 이사회에 이 안건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금융그룹의 경영 실적이나 개혁과는 전혀 관계없이 정치권의 움직임이 금융기업의 전술적 움직임을 막은 것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정치권과 '관피아' 등의 '대리 전쟁'이었던 지난해 KB 내분사태의 당사자로 지목돼 물러났던 박지우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KB캐피탈 대표로 내정된 지난 5일 인사도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박 전 부행장은 작년 9월 KB사태의 핵심 관련자 중 한명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박 전 부행장은 2007년 말많고, 탈많은 '서금회(서강금융인회)' 창립 때부터 참여해 6년간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융권 서강대학교 동문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당초 KB캐피탈 사장은 다른 사람으로 내정돼 있었으나 막판에 서금회라는 혐의가 짙은, 외부 입김이 작용해 박 전 부행장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KB 내분' 사태의 핵심 당사자였던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가 지난 1월 초에 자진 사퇴한 후 석달째를 맞고 있지만, 후임을 정하지 못하고 경영감사부장이 대행을 맡고 있다. 정치권의 간섭으로 적당한 후임자 물색 조차 못하고 있어 주총에서 선임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우리은행, '서금회' 행장에 '서금회' 사외이사

▲ 우리은행.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아직 민영화 되지 않은 우리은행에도 정치권의 입김은 만만찮다. 우리은행 신임 사외이사 4명 중 3명이 정치권 출신이거나 정치권 언저리의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외이사 중 하나인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정한기 초빙교수는 우리은행 이광구 은행장과 함께 '서금회' 회원이다. 그래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동문끼리 은행장과 그 은행장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라는 자리를 맡게 된다면, 과연 사외이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정치권 인사 논란은 지난해 10월 금융권 경력 없는 정수경 변호사의 상임감사 선임 때도 불거졌다. 정 감사는 2008년 총선 때 친박연대 대변인과 2012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정치금융' 인사의 수혜자라는 것이다.

◆ 농협, 정-관계 인사들의 '놀이터' 혹은 '쉼터'

▲ 농협은행.

농협도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 관계 인사들의 ‘놀이터’나 잠시 쉬어가는 '쉼터'로 빠지지 않는다. 최근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임영록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기재부 1차관·국무총리실장 출신이다.

현재 사외이사로는 최근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 임명된 현정택 이사(전 한국개발원장)를 비롯 김준규 이사(전 검찰총장), 손상호 이사(전 금감원 부원장), 전홍렬 이사(전 금감원 부원장) 등 내로라하는 인사가 포진돼 있다.

지금 NH농협금융은 공석 중인 회장의 차기 후임을 결정하기 위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아직 가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하마평은 무성하다. 정치권의 압력은 여전하다는 얘기가 안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외부 인사의 경우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허경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등 관료출신과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 등 민간 금융사 출신으로 나뉘어 있다. 이외에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 등도 함께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치권의 대표 주자로서 관료출신의 정점에 서 있는 김석동 전 위원장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의 경우 지난달 말로 공직자 취업제한 기간이 끝나 더욱 유리한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관료로서의 역량도 확인됐을 뿐 아니라 2008년 기획재정부 차관에서 물러난 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를 맡은 적이 있어서 나름대로 농협의 내부 사정에 밝은 편"이라며 "농협금융이 임종록 전 회장처럼 중량있는 인사를 원하고 있는 데다 김 전 위원장이 정치권의 신임도 얻고 있어 무난히 회장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현재 정치권 실세, 특히 친박 측에서 장-차관급 인사를 돌발적으로 밀고 들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의 경우처럼 ‘서금회’의 움직임이 이번 인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신한, 이상한 정치권 악연...아직도 앙금 남아

▲ 신한은행

신한은행의 경우는 정치권과 이상한 악연을 맺고 있다. 라응찬 전 회장과 이백순 전 행장이 신상훈 전 사장을 업무상 배임 등의 이유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촉발된 '신한사태' 때부터다.

핵심 당사자인 최고경영진 3명이 다툼 끝에 모두 물러났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적 절차가 진행 중으로 조직 내분의 후유증이 아직까지 심하게 남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신 전 사장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신한사태 때 불거진 이른바 '남산 3억원 의혹'으로 고발된 라응찬 전 회장은 최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나왔던 의혹 내용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라 전 회장 측이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정권 실세에게 3억원을 건넸다'는 것이었다. 대상으로는 이상득 전 의원이 지목됐지만 모두 무혐의로 처리됐다.

하지만 검찰은 참여연대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라 전 회장을 상대로 정동영·박지원·정세균·박영선 의원 등 당시 민주당 의원과 신 전 사장의 신용정보를 불법조회·유출했다며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 정치권과의 악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MB정부' 시절 고려대학교 출신이 금융권에 득세했던 2010년 신한은행의 수장이 된 서진원 은행장은 최근 건강 문제로 물러났다. 후임 행장으로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조용병 신한BNP파리바 사장이 내정됐다.

하지만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임 신한은행장 '쌍두마차'가 TK 실세 등 정치권과 연계된 내부 임원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그리고 정치적인 압력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가 향후 신한금융그룹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게 신한금융 내부자의 진단이다.

◆ 외환과 통합 앞둔 하나은행의 '딜레마'

하나은행은 외환은행과의 통합을 앞두고 정치권과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존의 사외이사들이 대부분 '관피아' 출신이라 언론을 통해 몰매를 맞아온 상황이라 정치권인사나 관료 출신을 배제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하나은행의 현재 사외이사들은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거친 박봉수 이사, 금융감독원 출신 김영기 이사,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 이기배 이사, 외교부 주중 경제공사를 거친 정영록 이사 등이 대표적인 '관피아'로 꼽힌다.

이번에 김 이사와 이 이사의 임기가 끝나는 상황엑서 대체할 사외이사 중 '관피아'와 '정피아'를 피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시 영입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 "정치 금융 철폐 없는 금융개혁은 공염불"

참여연대 장흥배 경제노동팀장은 "금융분야는 다른 어떤 산업분야 보다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라며 "그런 자리에 경험 없는 정치권 인사가 고위직 차지하게 되는건 부정부패 요인 높인다"며 관련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한성대학교 김상조 교수는 "정치금융 철폐 없는 금융개혁은 공염불"이라며 "정부가 앞에서 금융개혁의 깃발을 올리면서 뒤로는 금융권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는 행태는 금융권의 냉소와 보신주의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후진적 금융산업을 고착화 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대표소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용돈 벌자는 심산으로 금융사 사외이사로 왔다가 큰 손실을 입는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knt@ekore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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