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서 투자 원금 전액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서 투자 원금 전액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시중은행들이 결국 금융당국의 요청대로 자율배상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7일 이사회를 열고 홍콩 ELS 손실사태 관련 자율배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금융감독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구체적인 자율배상안을 마련한 뒤, 손실이 확정됐거나 현재 손실구간에 진입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신속한 투자자 보호조치를 실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하나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와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지원팀’을 신설해 자율배상 절차를 전담하도록 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금융업 및 파생상품 관련 법령, 소비자보호 등에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 3인을 포함해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하나은행은 구체적인 자율배상안과 전담조직이 구성된 만큼, 신속하게 배상비율을 확정해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 또한 지난 22일 이사회에서 홍콩ELS 손실과 관련해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자율배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의 경우, 조정비율 협의와 동의를 마치고 나면 일주일 이내로 배상금 지급이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우리·하나은행이 자율배상에 나서기로 하면서 KB국민·NH농협·SC제일·신한은행 등 다른 판매은행도 자율배상 흐름에 동참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1일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며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28일,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29일 이사회를 열고 홍콩 ELS 관련 자율배상안을 논의한다. 특히 KB국민은행은 홍콩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곳으로 판매잔액이 8조원에 달하는 만큼, 자율배상 수용 여부에 가장 많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홍콩 ELS 판매계좌가 39만6000개(판매잔액 18.8조원) 이 가운데 개인 계좌만 39만개에 달하는 데다, 금감원의 배상기준안에 정성적 지표의 비중이 커 개별 사례 적용 시 모호한 부분이 많아 자율배상 절차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게다가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했다가 자칫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선배상에 나섰다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배상비율이 더 낮게 결정된다면 과지급된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 

하지만 우리·하나은행이 결국 자율배상에 나서면서 ‘선배상’ 흐름이 은행권에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율조정 대상 ELS 판매잔액이 415억원으로 배상 부담이 적은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판매잔액이 조 단위인 하나은행도 자율배상을 결정한 만큼 시중은행이 금융당국의 자율배상 요청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들로서는 금융당국의 제재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발생한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등과 관련해 판매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중징계를 처분한 바 있다. 

금감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 배상기준안을 발표하면서 “검사결과를 조속히 정리하여 제재절차를 신속하게 개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은 이어 “구체적인 제재범위 및 수준은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추후 결정될 것”이라며 “소비자피해 배상 등 사후수습 노력에 대해서는 제재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제재 양정 시 고려요인의 하나로서 감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복현 금감원장 또한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과징금 등 제재 수준 결정 시 참작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자칫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는 물론 조 단위의 과징금까지 부과될 가능성을도 있는 만큼, 은행으로서도 금융당국의 자율배상 요청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 자율배상 절차를 통해 홍콩 H지수 ELS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과 원만한 소통과 배상을 이뤄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 또한 “이번 자율조정을 통해 투자자 중심의 은행 자산관리서비스 수준을 한층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사회를 앞둔 시중은행들이 홍콩 ELS 자율배상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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