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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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후배 중에 아이비리그 대학원 중의 하나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한 이가 있는데, 그가 대학원 수업 때 다른 수강생들과 국제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그러니까 UN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UN이 나선다고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될 리가 만무하다는 현실을 그 분야의 준전문가인 대학원생들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약간은 자조적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그런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권위를 가진 기관이 우리 대신에 나서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공을 들이지 않고도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실 제일 편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또한 그 일이 잘못된다 하여도 나의 잘못은 없는 셈이니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그래서 쉽게 국제사회 문제를 UN의 몫으로만 남겨두는 것이다. 

이런 패턴은 국내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접근방식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교육 문제, 출산율 문제, 주거 문제 등의 여러 개의 미지수가 복잡하게 얽힌 고차방정식을 대하고 있는데, 이 모든 문제를 일단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곤 한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내 자식 내 손으로 키우는 사회>라는 방향성을 제시하며, 국가가 부모 대신 이 사회의 자녀들을 맡아 키우려 하지 말고, 오히려 부모들이 자기 손으로 자기 능력으로 자기 자식들을 키워내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과 보람을 보장해 주는 쪽으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는데, 그러한 주장은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의 해결이 국가의 힘으로만 되는 일은 아니라는 이해를 배경으로 한다. 

국가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마는, 아쉽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세상에 그런 사회는 없다. 북한을 비롯한 몇몇 전체주의 국가들이 그런 주장을 해 보았으나, 그건 민중을 눈가림하고 속이는 일에 불과했고 오히려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노동자가 평생 일을 해도 자기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렵다는 산술이 나오는 시대에, 무한 경쟁 교육 체제와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에 청년들이 자녀 낳기를 꺼려하는 이 시대에, 국가가 이 일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함석헌 선생은 시대가 어두울 때에 결국 역할을 하는 것은 씨알이라 했다. 어떤 면에서는, 작은 씨앗 한 알이다. 그 한 알의 씨앗이 대지를 뚫고 움을 터 생명이 된다. 이 한 알의 씨앗이 자라난다 하여 천지만물이 터럭이라도 그에 관심을 둘까 싶지마는,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 하나가 알을 깨고 움을 터내지 않으면, 짐승도 먹일 수 없고 사람도 먹일 수 없다. 그렇기에 그 한 알의 몸부림은 세상 모든 생명의 태동이다.  

아무리 사회가 어둡고 국가가 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해도, 여전히 각 개인에게는 행동의 여지가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움직이면 그를 둘러 싼 공동체가 움직인다. 공동체가 움직이면 민중이 움직인다. 민중이 움직이면 국가는 따라 온다. 건강한 사회는 하향식(top to bottom)이 아닌 상향식(bottom to top) 사회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민주사회라 부른다. 

필자는 최근 이 사회의 풍조를 거슬러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어느 젊은 커플을 만났다. 결혼을 목표로 둔 커플이었는데, 둘은 많은 돈을 들여 결혼식을 올리는 데에 회의적이었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여 서로 도우며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스몰 웨딩에 멋진 인테리어가 없는 집에 살더라도 건강하게 자녀를 키우며 살아 보고픈 마음을 비쳤다. 

그런 방향성을 견지하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먼저 하였는가 보았더니, 둘 다 SNS 활동을 관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다소 과장된 삶으로부터 오는 압박에서 자유하기 위한 결정이었으리라. 대신 둘만이 공유하는 계정을 하나 만들어, 그 누구도 팔로우하지 않고 둘만의 추억을 그곳에 쌓아가며 결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다. 

그 커플과 수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그런 이들이 씨알이 아닌가? 

이 사회에 희망이 사라져가는 것 같고,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아직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일상을 추구하는 일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남이 날 어떻게 보든, 그리 멋질 필요는 없다. 그저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고, 그와 아이들을 낳고, 그들을 교육하며,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내는 일……. 

이 평범을 추구하는 일이 너무나 비범한 일이 되어버린 터라, 평범한 일상을 얻으려면 다소간의 투쟁은 필요하다.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한 알의 씨가 온갖 몸부림을 치듯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대지 안에 잠들어 있는 모든 씨알들에게 외친다. 

이제 올라가자!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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