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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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관련해 배상기준안을 발표했지만, 과거와 달리 일괄 선지급 등 빠른 배상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일률적인 배상비율을 적용하는 대신, 판매사와 투자자별로 가감요인을 고려해 각 사례에 따라 배상비율을 개별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판매사의 경우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위반 여부 등에 따라 20~40%의 배상비율이 적용되고 투자자 또한 금융취약계층 여부, 투자경, 금융상품 이해능력, ELS 수익규모 등에 따라 배상비율이 ±45% 조정된다. 

여기에 판매사 내부통제 부실 및 대면·온라인 판매에 따른 공통 가중요인 3~10%이 적용된다. 투자자가 초고령자거나 투자경험 및 지식이 부족한 경우 높은 배상비율이 적용되지만, ELS에 여러 차례 재투자했거나 이전에 번 수익이 이번 손실액보다 많은 투자자의 경우 단 한 푼도 배상받지 못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배상기준안에 따라 판매사들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1일 “판매사는 이 조정기준안에 따라 자율적으로 배상(사적화해)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과징금 등 제재 수준 결정 시 참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증권사가 금감원의 기대대로 선제적 자율배상에 나설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투자자별로 차감요인을 계산해 배상비율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홍콩 ELS 판매 계좌는 총 39만6000(판매잔액 18.8조원)개로 이 가운데 개인 계좌만 39만개에 달한다. 자율배상을 위해서는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배상위원회를 꾸려 개별 사례를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데, 배상 규모와 건수가 상당한 만큼 빠른 배상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게다가 금감원의 배상기준안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 개별 사례에 적용할 때 모호한 부분이 있다. 특히 정성적 지표의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배상비율에 납득하지 못한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지난 11일 배상기준안 관련 질의응답에서 “배상비율이 과학적 수식은 아니다. 상당 부분 정성적 판단도 필요하지만 자율적 합의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배상에 따른 배임 논란도 제기된다. 자본시장법 55조는 불완전판매 등 예외적 사유가 아니라면 판매사가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만약 판매사가 일괄적인 기준에 따라 투자자에게 선배상했다가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위원회 결과 배상비율이 오히려 낮아진다고 해도 과지급된 비용을 회수하기는 어렵다. 배상 규모가 적지 않아 은행 수익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자칫 주주들로부터 배임 이슈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 

반면, 금융당국은 판매사의 배임 우려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3일 “배임 관련 여러 법률 업무를 20년 넘게 해왔는데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라며 판매사의 배임 우려에 선을 그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또한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배상 문제를) 처리하자는 건데 왜 배임 문제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물론 과거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나 라임·옵티머스 등 판매사들이 일괄적으로 투자원금의 일부~전액을 선지급한 사례도 있다. 당시에도 배임 우려가 제기됐지만, 판매사의 책임이나 상품 자체의 문제가 뚜렷한 데다, 금융당국의 제재 부담이 컸던 만큼 판매사 대부분이 선지급에 나섰다. 

반면, 홍콩 ELS의 경우 상대적으로 상품구조가 단순하고, 지난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형식적으로라도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가 마련된 이후 판매됐다. 상품구조가 일반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고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책임이 광범위하게 인정된 DLF나, 상품 자체의 설계 및 운용 과정에서 사기 정황이 드러난  라임·옵티머스 펀드와는 다른 경우라는 것. 판매사와 투자자 간의 책임을 따져볼 수 있는 상황인 만큼, 판매사가 선지급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과거 DLF 및 라임 사태 등에서 판매사의 선지급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중징계를 고수한 전례가 있다. 판매사들이 “제재 결정 시 참고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말을 얼마나 신뢰할지는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판매사 대부분이 금감원의 분쟁조정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수의 민원에서 대표사례를 선정하고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마무리할 때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실질적인 배상 논의는 올해 하반기에나 시작될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오늘(18일) 오후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정례회의 겸 비공개 만찬을 갖고 홍콩 ELS 자율배상 등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배상기준안 발표 이후에도 계속된 홍콩 ELS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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