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해 9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해 9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 및 출국 논란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언론은 정부가 무리한 인사로 화를 자초했다며, 대통령실이 결자해지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이종섭 논란 정치공작으로 인식” 언론 총선 여파에 주목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이종섭’ 주호주 한국대사를 검색하자,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총 780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날짜별로 보면, 출국 다음 날인 11일(163건)과 대통령실이 공수처에 이번 논란의 책임을 돌린 14일(164건) 가장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이 대사 관련 보도에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였으며, 그 뒤는 ‘출국금지’, ‘민주당’, ‘법무부’, ‘대통령실’ 등의 순이었다.

특히 언론은 법무부가 공수처 수사 대상인 이 대사의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벌어진 이번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강경한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논란의 원인이 공수처의 수사 지연이라며 이 대사의 임명 철회는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4일 SBS에 출연해 “이종섭 대사가 조사를 안 받거나 안 받으려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공수처가 그동안 조사를 안 했다는 게 핵심”이라며 “공수처가 지난해 고발 후 한 번도 (이 대사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이어 “공수처가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출국금지를 길게 연장한 것은 누가 봐도 기본권 침해이고 수사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이 이번 논란을 야권의 정치공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보도도 적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14일 기사에서 “공수처가 이 대사를 출국금지한 뒤 수사도 하지 않으며 이를 두 차례 연장하고, 야당이 총선 직전에 쟁점화하는 ‘총선용 정치공작’의 일환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라고 전했다. 

YTN 또한 14일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총선 판을 흔들려는 일종의 여론전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도 전혀 몰랐던, 출국 금지나 통화 내역 같은 수사기밀을 친야 성향 언론이 먼저 확인해 보도하고 야당이 '도피 프레임'을 씌우며 여론몰이하고 있다는 주장”이라며 “대통령실은 공수처와 민주당, 좌파 언론이 결탁해 덫을 놓은 '정치 공작'으로 강하게 의심된다면서 3개 축 사이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는 '공언 유착'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논란이 내달 총선에 미칠 여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특히, 일부 매체는 이번 논란이 자칫 ‘정권심판론’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여당 내부의 불안감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14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이 총선을 앞두고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이 14일 여당 수도권 후보들을 중심으로 분출했다”라며 이상민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나경원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의 발언을 전했다. 

실제 이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야당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을 이렇게 큰 정치 행사인 총선을 바로 한 달 앞두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제가 볼 때는 적절치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또한 13일 기사에서 “당이 정부와 적극 차별화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정권 심판론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당내 의견 역시 여전하다”라며 여당 내 분위기를 전했다. 한 여당 수도권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를 통해 “민주당 공천 잡음에 실망한 야권 지지층의 시선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출구를 정부가 만들어준 셈”이라며 “비명횡사 등 민주당 공천 파동의 반사이익을 노리다 역공을 당한 형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0~15일 보도된 이종섭 주호주 대사 관련 보도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10~15일 보도된 이종섭 주호주 대사 관련 보도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이종섭 논란에 “대통령실이 ‘결자해지’해야...”

언론은 대체로 이종섭 호주대사 출국 논란과 관련해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11일 사설에서 “공수처가 수사상의 필요로 출국을 막아놓은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대통령실의 인사부터가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라며 “이 전 장관이 채 상병 사고 의혹과 관련한 핵심 인물로 오래전부터 지목돼온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을 대사에 앉힌 것부터 상식 밖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이 전 장관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지도 의문인 데다, 그런 수사를 통해 내놓은 결과를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며 “호주 대사 임명부터, 약식조사, 출국금지 해제, 전격 출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가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는 14일 사설에서 이번 논란이 ‘국제적 망신’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호주 국영 ABC방송이 한국 대사의 부임 소식을 전하며 ‘범죄 수사에 연루된 전임 국방장관이 대사직 수행을 위해 호주에 도착했다’고 보도하며 이번 논란은 호주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라며 “정부의 설명대로 호주가 안보와 방산 협력에 중요했다면 이런 상황은 사전에 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또한 14일 사설에서 “출국금지까지 된 주요 사건 핵심 피의자를 우방국 대사로 내보낸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명백한 수사 방해이자 심각한 외교 결례”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제아무리 장관급이라도 피의자를 대사로 보내는 것에 어느 나라도 우호적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라며 “(호주ABC) 방송은 비록 ‘호주 외교부가 이 대사의 호주 도착을 환영했다’고 전했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이 호주와 한국 외교 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또한 내비쳤다”고 전했다.

논란의 인물에게 중책을 맡겨 논란을 자초한 대통령실이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일보는 15일 사설에서 “공교롭게도 국민의힘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인기, 더불어민주당의 ‘사천 논란’ 내홍에 힘입어 지지율이 오르다 3월 들어 주춤하거나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며 “일부 후보들의 막말 탓도 있지만 이번 논란이 민심 변화의 한가운데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이어 “국민들은 이번 사안이 윤 정부의 슬로건인 ‘공정과 상식’에 위배된다고 보는데 대통령실만 외면하니 딱한 노릇”이라며 “대통령실이 여당의 난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김태우 후보를 공천토록 영향력을 행세하다 참패를 초래한 것을 연상하는 이들이 적잖다. 민심과 괴리된 국정 운영의 결과를 경험하고도 반복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라고 반문했다.

문화일보 또한 14일 사설에서 공수처의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대통령실과 외교부, 법무부가 검증 과정에서 문제점을 제대로 걸러 내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치 쟁점으로 떠오른 뒤의 대응도 매끄럽지 못하다. 내부 불통도 심각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화일보는 이어 “이 대사 파문도 뭉개면 커진다. 용산 대통령실과 당사자가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라며 “자진 사퇴하거나, 귀국해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자청하는 등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방안을 숙고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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