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후보를 가리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작업이 끝나가고 있다. 이번 공천의 특징은 민주당에서 현역의원 탈락 숫자가 많은 데 비해, 국민의힘에서는 현역 탈락 수가 적은 것이다. 공천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아직 정확한 집계는 낼 수 없지만, 이런 추세는 끝까지 유지될 것 같다.

공천 기간 많은 논란이 이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민주당의 ‘사천(私薦)’ 논란이다. ‘사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내의 주요 현역의원들이 상당수 탈락한 것을 놓고 이재명 대표 비판그룹을 탈락시킨 ‘비명횡사’라는 입장이다. ‘공천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1년 전 당에서 공식합의한 대로 정치 개혁을 위해 ‘시스템공천’을 한 것인데 점수에서 뒤진 사람들의 항변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언론들의 보도는 상당히 편파적이었다. 민주당 공천에 관해서는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기사가 압도적이었던 반면에 국민의힘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단순하게 사실과 결과만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종이신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총선 승리보다는 이재명 대표가 당을 장악하기 위해 밀실에서 비명 세력을 걸러내는 공천을 해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역 탈락 없이 잡음이 일어나지 않는 안정적인 공천을 통해 갈등과 논란을 막았다’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이런 보도는 공천 기간 내내 거의 일관된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런 보도들은 이 대표가 공천에 개입해서 결과를 좌지우지했다는 어떤 분명한 사실은 제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공천 결과를 보면 친명이어서 공천을 받았고, 비명이어서 낙선했다고 구분지을 만한 객관적 사실은 없다. 단지 공천 결과에 불복하는 일부 인사들이 ‘비명이어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친명 그룹에서도 탈락자가 적지 않았다. 비명 탈락자 중에서도 뒷말 없이 민주당의 공천시스템을 인정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런 보도의 와중에 진보 진영에서 특히 의아스러워한 것이 ‘진보언론’으로 인식해 왔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민주당의 공천을 시종 부정적인 흐름으로 보도했다는 점이다. 조선·중앙·동아 등 이른바 ‘보수 커넥션’인 조중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당의 우군으로 인식해왔던 경향과 한겨레도 민주당이 주장하는 ‘공천 혁명’이라는 주장은 거의 외면했다.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공천의 주요 시점과 여론조사의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공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재명은 당 대표에서 물러나라’ ‘이재명은 불출마를 선언하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경향과 한겨레의 논조는 민주당의 최대 리스크가 이재명 대표라는 것이었다. 

대세가 결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드는 단계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당대표가 물러나라”고 하거나 “불출마를 선언하라”고 쓰는 기사는 언론사에서 보기 어려운 폭력이다. 만약 당 대표가 그렇게 한다면 그 당의 선거는 끝장이다. 선거에서 대패할 수밖에 없다. 그게 객관적이고, 균형을 갖춘 의견인가. 민주당이 선거에서 대패하면 그런 주장을 펼친 사람들이 이번에는 뭐라고 했을지 의아스럽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인터넷신문 ‘민들레’의 전지윤 편집위원은 한겨레와 경향의 이런 민주당 공격은 주요 고비 때마다 되풀이돼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겨레와 경향이 보인 태도다.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문재인의 운명>)

 여기서 언급한 마녀사냥은 그 후에도 2013~2014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조작과 강제 해산 국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고, 2019년 조국몰이, 2020년 윤미향 마녀사냥, 2021년에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 추 장관을 몰아가는 과정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됐다. 그 밖에도 검찰과 언론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서도 동일한 요소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민들레’ 3월 6일 보도)

진보언론이 왜 이렇게 민주당에 비판적일까? 평소에는 민주당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결정적일 때는 매섭게 몰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결정적일 때마다 민주당이 객관적으로 잘못하기 때문”이라면 바람직하다.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이번 공천 보도처럼 극히 주관적이고, 그 논리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일부 낙천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라면, 매우 특이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많은 이론과 분석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낮았던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인간들의 심리와 같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머슴이 잘되는 것은 죽어도 볼 수 없다는 것 같은 경우 말이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6장은 갈릴리에서 사역하던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 돌아가 병자를 고치고 회당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어디선가 온 선지자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혜로운 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 중 한 사람이 그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본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인 예수가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모든 사람이 돌아선다. 그가 목수의 아들인 예수였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도 예수의 지혜에 놀랐던 사람들이 그가 목수의 아들이라는 걸 안 순간 차갑게 돌아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를 따라운 제자들에게 말한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즉 어떤 선지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가 미천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목수의 아들이며 그 동생들을 우리가 잘 알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예수를 쭉 보아왔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말씀을 해도 어떤 기적을 행해도 사람들은 그를 냉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성경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모든 인간사회에 있는 강약·약강의 이야기다. 인간들은 보편적으로 강한 자에게는 약하지만, 약한 자에게는 강해지려고 한다. 이것은 비기득권자가 기득권자가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스토리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미디어에 비하면 기득권 언론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온라인 미디어가 힘을 얻어가는 2010년대 들어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와 온라인 미디어의 대립 현상이 나타났고, 양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 한겨레와 경향은 조중동의 입장과 거의 일치하는 특징을 보였다. 족벌언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권력을 동경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약한 자는 동정의 대상이다. 단 약자로 머물러 있을 경우에 한한다. 약자가 세력을 획득하려 할 경우에는 만민의 질시의 대상이 된다. 과거 비기득권자였던 사람들의 질시는 더욱 심하다. 이런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한국언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임순만 작가 ·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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