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코리아]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대응이 한 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ESG 공시 기준 마련 논의도 늦어지고 있는 만큼, 글로벌 추세를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8일 ESG 규범 강화 대응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국내 기업 및 경제단체, 학계 전문가와 함께 국내외 ESG 규범 동향 및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 글로벌 확산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EU의 공급망 실사 및 국내외 ESG 공시 의무화 관련 동향이 논의됐다. 미국·독일·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 기업 부담을 우려해 ESG 공시 의무화가 지연되고 있지만, ESG 규범 강화는 국제적인 추세인 만큼 국내 기업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 참석자들 대부분이 공감했다. 

실제 국제사회는 기업의 경영활동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포함한 비재무적 정보를 일반 투자자들의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ESG 공시규제 관련 글로벌 현황과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설립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해 6월 지속가능성 공시를 위한 첫 번째 기준서인 ‘IFRS S1 일반 요구사항’과 ‘IFRS S2 기후 관련 공시’를 발표했다. 

해당 기준서는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해야 할 지속가능성 관련 중요 정보를 ▲지배구조 ▲전략 ▲위험관리▲지표 및 목표 등 4가지 핵심요소로 나눠 공시하도록 했다. 또한 기업의 스코프(Scope) 1~3 온실가스 배출량을 모두 공시하도록 해, 기업의 기후 관련 위험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스코프 3은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스코프 1)나 소비한 전력 등 에너지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스코프 2)뿐만 아니라 기업이 소유·통제하지 않는 가치사슬(value chain)에서 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 포함한 배출량을 의미한다. 

유럽 또한 ESG 공시 의무화를 서두르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은 이미 지난 2018년부터 ‘비재무 정보의 공개 지침(NFRD)’에 따라 임직원 500명 이상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했으나, 올해부터는 한층 강화된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이 도입되면서 적용대상이 더욱 확대됐다. CSRD에 따르면, 임직원 수 250명 이상인 EU 기업뿐만 아니라 비EU 기업까지 ESG 공시 대상에 포함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EU에 일정 규모 이상의 자회사나 지점을 둔 경우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앞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022년 3월 미국 상장사의 기후 관련 정보공시 의무화 규정 초안을 공개한 바 있다. 초안에 따르면 상장사는 기후위험이 기업의 전략· 사업모델 및 전망에 미치는 영향, 기후위험의 평가·관리 관련 지배구조, 기후위험의 평가·관리 프로세스 및 재무제표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해 공시해야 한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지난해 SEC와 별도로 주 내에서 활동 중인 기업에 대한 기후정보 공시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연 매출 10억 달러를 초과하는 캘리포니아주 내 상장사·비상장사는 오는 2026년부터 스코프 1~3 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또한, 5억 달러 이상 기업은 기후 관련 재무적 리스크와 리스크 완화 전략을 공시해야 한다.

ESG 공시 의무화를 위해 걸음을 재촉 중인 주요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준비는 더딘 편이다. 금융위는 지난 2021년 ‘녹색금융 추진계획안’을 발표하고 기후위험 등 환경정보 관련 공시를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해당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기후 관련 공시가 의무화되고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적용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ESG 금융추진단’ 제3차 회의에서 주요국 ESG 공시 일정 등을 고려해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계획을 수정했다. 

일각에서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ESG 규범 강화 추세에 뒤처지면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시가총액 200대 기업들 중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한 기업은 70개사로 전체의 35%에 불과했다. ESG 관련 규제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국내 기업의 수출 및 투자 유치가 어려워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국들에서 ESG 공시가 의무화되고 있고 우리 기업들도 그 대상이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도 글로벌 표준을 참조하되 국내 특수성을 반영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조속히 마련하여 기업들이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다만, 시행 시기의 경우 미국 대선 등 국제 정세 변화에 따른 환경변화 가능성과 국내 기업들의 부담 정도 등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