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최근에 보았던 두 개의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두 개의 사랑이 모두 깊은 생각과 오랜 연단 끝에 나온 것이라 소중해 보였습니다. 하나는 축구선수 손흥민입니다. 그는 이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별’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손흥민을 사랑합니다. 그는 우리 국민 누구나의 형이거나 오빠, 동생이거나 조카, 아들이거나 손자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손흥민은 물론 축구를 잘합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로 꼽히는 영국프리미어리그(EPL)서 득점왕(2021-22)을 차지한 유일한 아시아 선수이며, EPL에서 주장(토트넘 홋스퍼 FC)을 맡고 있는 유일한 아시아 선수이기도 합니다. EPL에서 그가 기록하고 있는 아시아 최고 기록은 이외에도 10개를 훌쩍 넘습니다. 축구의 고향인 영국의 프로축구 구단에서 비유럽인이 주장을 맡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리더십을 인정받고, 현지인들에게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손흥민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축구를 잘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가 어려운 순간에 보여주는 정신력과 마음 씀씀이는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듭니다. 지난 1월 12일부터 한달 동안 열린 아시안컵 축구 경기 기간에 손흥민이 우리나라 국가대표 주장으로 보여준 성실함은 많은 국민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역대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 속에서 64년 만의 우승을 꿈꾸며 카타르로 간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졸전을 거듭해 비판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손흥민은 기자단에 선수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 기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이 그런 요청을 했더라면 오히려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마디에 국민은 한마음으로 다시 뭉쳤습니다. 손흥민의 충성심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8강전에서 호주 수비수 3~4명을 헤치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달릴 때 손흥민은 상대 선수 발에 걸려 넘어졌고,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습니다. 그때 키커로 나선 선수가 황희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했습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잠시 숨을 고른 황희찬이 깔끔하게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한국이 2대 1 승리를 거둔 후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황희찬이 키커가 된 내막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희찬 선수가 자신 있는 모습으로 차고 싶다고 했습니다. 희찬 선수도 소속팀(울버햄프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습니다.” 

매번 연장전을 치르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나라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다. 우승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나아가겠다.”고 말해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저런 배려심과 희생정신을 갖고 있으니까 수준 높은 유럽 구단에서 주장을 맡는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그 후 손홍민은 4강전을 앞둔 전날 저녁 이강인 등 젊은 선수들이 탁구를 치는 것을 제지하다 몸싸움까지 벌였고, 그로 인해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고, 손가락에 보호대를 하고 4강전을 치렀지만 참패했다는 뒷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손흥민은 참담한 마음으로 소속팀 토트넘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손흥민은 내분 사태가 보도된 후 토트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주였는데 홈팬들이 저를 다시 행복하게 해주시고 북돋워주셨습니다. 이 순간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손흥민은 이날(2월 11일) EPL 브라이턴 앤드 호브 앨비언전에 후반 17분 교체 투입돼 추가시간 결승골을 어시스트했습니다. 토트넘 팬들은 돌아온 손흥민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뜨겁게 환호했습니다. 그때 손흥민은 손가락이 탈구된 아픔도 있지만, 아시안게임 4강에서 유효 슈팅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패배한 수치와 후배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팬들의 환호에 무거운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죽을 때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선수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바탕 위에다 따뜻하면서도 엄한 가르침, 모진 훈련과 외국생활의 찬바람 같은 것을 모두 극복한 사람의 땀방울이 만든 결과일 것입니다. 손흥민은 우리가 맘껏 사랑해주고 싶은 별입니다. 

두 번째는 미셸 들라크루아 그림 전시회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들라크루아 전시회(3월 31일까지)가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장에는 매일 관람객들이 만원을 이룹니다. 이번 겨울 가장 따뜻한 문화축제가 되고 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91세의 프랑스 현역 화가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파리를 그린 그림 20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지금의 파리 모습이 아닙니다. 그가 그린 파리는 주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도시의 모습, 그러니까 한 세대나 두 세대 이전의 파리입니다. 그렇다고 단지 옛날의 풍경화를 사진 찍듯이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어릴 때 보고 경험한 파리를 40년 이상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고, 그 오랜 숙성 기간을 통해 옛날의 파리를 현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느강변이나 에펠탑 같이 파리의 유명한 시가지나 건축물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골목의 모퉁이를 뛰어가는 강아지나 눈 오는 밤의 거리에서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을 그린 그림에도 그가 숙성시킨 역사의 내러티브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기억 속에서 곰삭은 파리는 정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샹젤리제의 유명한 호텔 창문에는 러닝셔츠나 팬티 같은 빨래들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의 호텔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거리에서는 집세를 내지 못해 마차에 짐을 싣고 야반도주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것을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순전히 작가의 기억 속에서 자라나 서사화된 작품들입니다. 그의 그림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문화가 되고 유산이 되는가를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들은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자신의 세대를 거쳐 아들의 세대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미래 세대의 창의력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죽을 고국을 사랑하는 방법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의 작품에는 눈 내리는 그림이 많았습니다. 작가는 42도가 넘는 한낮 캄보디아의 작업실에서도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겨 그린다고 합니다.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은 신비롭지요. 의외로 많은 관람객이 그림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있었습니다. 화가는 한국전시회를 앞두고 준비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긴 삶의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처럼 큰 만족, 몇몇 기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론 짊어지기엔 무거운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저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저에게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와인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지는 전시회였습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기억을 유산(遺産)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임순만 작가·전 언론인 (국민일보 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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