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근무를 중단한지 사흘째인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근무를 중단한지 사흘째인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의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며 의료 현장을 떠난 지 닷새째가 됐다. 언론은 한목소리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16일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 전공의 전원이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전국 병원으로 집단 사직서 제출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의 숫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2일 22시 기준 전국 94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총 8897명으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에 달한다. 이는 전날 발표한 수치(9275명)보다 소폭 감소한 것인데, 6개 병원이 부실 자료를 제출해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개 병원 자료까지 취합될 경우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수는 1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 언론,  의료현장 혼란에 초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전공의’를 검색하자,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총 2993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날짜별로 보면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각각 636건, 649건, 646건의 기사가 꾸준히 보도됐으며, 22일 들어 512건으로 기사량이 감소했다. 

전공의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키워드는 ‘사직서’였으며, 그 뒤는 ‘집단행동’, ‘보건복지부’, ‘의대 증원’ 등의 순이었다. 

‘의료 공백’, ‘의료 대란’ 등의 키워드도 전공의 사직서 제출 사태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했다. 실제 다수의 매체는 전공의가 떠난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이 곤란을 겪는 모습을 집중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23일 기사에서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주요 병원 인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고령 환자들이 몰리는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빅5 병원에서 입원 중 퇴원 통보를 받고 ‘뺑뺑이’ 끝에 요양병원으로 오는 환자가 늘어나고, 요양병원에서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위해 전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는 사례가 속출해서다”라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이어 “빅5 병원을 포함한 대학병원들이 응급 환자나 중증 환자의 치료와 입원을 거절하는 등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은 지속됐다”라며 “서울 의료 수요가 서울 외곽으로 번지는 양상이 나타나면서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22일 기사에서 딸의 눈병 치료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인력이 없어 진료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진료 취소 통보를 받은 부모의 사례를 전했다. 한국일보는 “타협 가능성은 안 보이고 양측 입장이 평행선만 달리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라며 “퇴로 없는 의정 간 대치 속에 불똥은 애꿎은 환자들에게 튀고 있다”라고 말했다.

 

19~23일 보도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19~23일 보도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의대 증원 막자고 의사가 파업하는 나라는 한국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번지면서 언론은 한목소리로 의료 현장을 이탈한 의사들을 비판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9일 사설에서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각종 통계와 환자들의 체감을 고려할 때 굳이 논의가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한 사실”이라며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의료 인력 확대를 막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누구보다 현장 의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의사들이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의사 부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발상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또한 이날 사설에서 “우리는 화재 현장을 두고 자리를 뜨는 소방관도, 범죄 현장에 눈을 감는 경찰관도 본 적이 없다. 오직 의료인들만 환자를 위한답시고 환자에 등을 돌린다”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이들은 의대 증원 반대 명분으로 국민과 환자를 내세운다”라며 “의약분업(2000년), 취약지역 비대면 진료(2014년),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증원(2020년) 등 이전 파업 때도 그랬다. 그들은 늘 그런 식으로 밥그릇을 지켰지만, 정작 국민들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집단행동을 선택한 전공의들에게 “국민과 정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환자 곁을 지키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겨레는 “시민사회는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촛불을 들자고 제안하는 한편, 의사들의 진료 중단이 담합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고 있다. 심지어 의료계 일부에서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명분 없고, 희소가치에서 나오는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행동’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라며 “전공의들은 더 이상 고립을 자초해선 안 된다 ... 의사들은 진료 거부를 할 때가 아니라 필수·공공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20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사가운을 입은 전공의들이 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사가운을 입은 전공의들이 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정부, 필수의료 살리기 위한 구체적 대안 제시해 의사 설득해야

한편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의료 공백’이 현실화되면서,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아일보는 19일 사설에서 보건의료노조의 표현을 인용해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국민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정부도 의사 파업이 초래할 혼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대체 인력이 없는 직종의 집단행동에 정부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이번에도 의사 증원을 지지하는 여론만 믿고 있다가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라며 “가용 행정력을 모두 동원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막고, 집단행동을 강행하더라도 비상진료체계를 빈틈없이 가동하는 것은 보건의료 행정을 책임진 정부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 의사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22일 사설에서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함께 필수 의료에 대한 보수 인상과 소송 부담 완화도 발표했다. 하지만 말뿐이고 구체안을 내놓지 않으니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산부인과·소아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진료과에 의사들이 가지 않는 것은 일은 힘든데 돈은 더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현장 의사들이 바로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수가 인상안을 마련해 발표해야 한다. 의료 사고 시 고의나 중대 과실이 아니라면 의사들의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완화해 주는 정책도 좀 더 세부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또한 19일 사설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는 직역별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충분히 조율하지 않고 방관해온 정부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정부도 오랫동안 동결된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늘리는 일인 만큼 더 정교한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라며 “늘어난 정원이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보상 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은 정부가 그간 이런 정책 마련을 소홀히 해온 탓도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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