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 뉴시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 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각계에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해당 법안은 플랫폼 시장에서 큰 지위를 지닌 사업자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우대 행위, 자사 플랫폼에서 경쟁 플랫폼 서비스를 금지하는 행위, 끼워팔기 행위, 최혜대우 등 4대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다.

국내 기업중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의 플랫폼 기업이, 해외 기업으로는 구글, 애플 등의 기업이 그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공정위는 설 연휴 이전까지 플랫폼법 최종 정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학계에서는 해당 법안이 국내의 환경과 맞지 않는 유럽의 법안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국내 플랫폼 사업자에 역차별로 작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종희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1일 한국지역정보화학회 주최로 열린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제의 쟁점 진단’ 토론회에서 “유럽식 규제 입법은 ‘자국기업 보호’ 명목을 공식 천명하면서 미국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손발을 묶기 위해 법안을 낸 것이다.”라며 “반면 유사한 법안을 추진 중이던 미국은 사실상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관련 법안들을 모두 폐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의 플랫폼 규제는 이미 해외보다 약하지 않은 상황이며, 이 상황에서 유럽의 플랫폼 규제를 따라가는 것은 과다하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독과점 문제는 입법이 아닌 행정적인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종희 교수는 기존 법으로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불충분하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스스로의 무능을 입증하는 것이며, 기존의 전자상거래법과 같은 법안 만으로 충분히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황성수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공정경쟁을 활성화하려면 입법의 역할은 줄이고, 행정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공정위의 입법을 입법 만능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31일 국회에서도 ‘소비자 권익 관점에서 본 플랫폼 경쟁 촉진법안 정책토론회’가 열려 각계각층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이 자리에서 김성환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플랫폼 경쟁법은 지배력 평가와 위법성 판단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바로 규제하겠다는 유례없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 미국상공회의소 누리집
= 미국상공회의소 누리집

미국 재계 역시 해당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상공회의소는 29일 성명을 통해 해당 법안이 양국의 무역 합의를 위반할 수 있으며 통상마찰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300만 개 이상의 미국 기업을 회원으로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즈니스 조직이다.

찰스 프리먼 미국 상의 아시아 담당 부회장은 성명을 통해 한국이 결함이 있는 플랫폼 규제를 성급히 통과시키려는 데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플랫폼법이 도입되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쟁을 짓밟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소비자가 그 피해를 떠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한국 정부가 외국 기업을 표적삼고 있으며, 이에 대해 투명한 모습과 열린 대화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잇따르는 우려에 공정거래위원회는 1일 플랫폼법이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추가로 내놓았다. 

먼저 플랫폼법으로 인해 플랫폼의 자체 상품 판매가 제한되어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플랫폼법이 금지행위를 신설하는 법안이 아닌, 그간 공정거래법 집행 과정에서 독과점 남용으로 인한 문제가 분명히 드러났던 대표적인 4가지 반칙행위를 현재보다 효과적으로 규율하려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플랫폼 사업자의 자체 상품 판매가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제한되지 않는 것처럼, 플랫폼법 제정 이후에도 제한될 소지는 없으며 오히려 플랫폼 간 가격‧서비스 경쟁이 촉진되어 수수료, 가격 등이 인하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멤버십 혜택, 빠른 배송 등 편의 서비스 역시 새로운 규제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아니며 중단될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규제의 대상이 되고 플랫폼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번 플랫폼법은 국내‧외 사업자를 구분하지 않고 반칙행위에 대해서는 차별없이 규율할 예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해외 사업자에 대해 법을 집행할 수 있으며 국내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의 성장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누리집
=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누리집

소비자 단체들은 전반적으로 법안을 환영하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일 성명문을 통해 공정위의 플랫폼법 제정 추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국내 플랫폼 시장은 소수의 독과점 플랫폼에 의하여 시장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에 따른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어 관련 법률의 필요성이 이미 제기되어 왔다.”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해외 입법례, 그간 법 집행 경험 등을 바탕으로 독과점 플랫폼의 반칙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적극 환영하는 바이다.”라고 밝혔다.

또 유럽,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플랫폼 독점 종식법, 디지털 시장법 등 법안을 통해 거대 플랫폼의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의 거대 독점 플랫폼 기업 역시 법안 제정을 방해하지 않고 이를 즉각 수용해야 하며, 법률 위반에 대한 과징금의 기준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국・내외 영업이익 합산액 5% 이상으로 강하게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정위는 관리감독기관으로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플랫폼 시장이 형성되도록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달 22일 성명을 통해 플랫폼법 입법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며, 플랫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에 대한 사전적 예방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지난 2022년에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사건과 유튜브 프리미엄 가격 인상 등 소비자가 플랫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를 들며 이를 시장이 집중되면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데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독점적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공정위의 입법 방향성에 공감하고 정부 부처 간, 정부와 기업간 대립과 갈등을 넘어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플랫폼법 입법 자체에 대해서는 환영하면서도, 정부가 일부 기업들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며 법안의 효력을 약화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우선 참여연대는 3월부터 유럽에서 빅테크 규제법이 시행되자 애플이 최대 30%에 달하던 앱 결제수수료를 인하하고 인앱결제만 가능하던 폐쇄적인 플랫폼을 개방한 사례를 들며 독과점규제법이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는 다수의 중소업체와 이용자들에게는 새로운 혁신을 위한 기반 마련과 편익으로 이어진다며 플랫폼법 입법 자체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정부가 입법을 준비하면서도 쿠팡, 배달의민족 등 일부 기업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을 추진 중인 플랫폼경쟁촉진법에 따른 ‘지배적 사업자’ 지정에서 쿠팡과 배달의민족을 제외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가 바로 해명자료를 통해 확정된 바가 없다고 했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려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꼬집었다.

또 “쿠팡의 경우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20% 내외로 추정되어 독과점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신규 업체가 시장에 진출하면서 고착된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시장구획’을 일부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설정해 사실상 법을 형해화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우려된다.”라며 “모바일 결제시장의 발달로 전체 온라인쇼핑 시장에서 모바일을 통한 매출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쿠팡이 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면 어떤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는 플랫폼법이 5천만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지난 9일부터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컨슈머워치의 반대 서명운동은 지난 25일 서명자 5천 명을 돌파했다.

컨슈머워치는 플랫폼법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서비스 제공이 제한되어 소비자의 불편이 증대될 것이며, 물가를 안정시키고,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플랫폼의 서비스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자국 플랫폼의 위축으로 해외 공룡 플랫폼 등에 국내 시장을 내줄 가능성이 높으며 소비자피해발생 증가는 물론, 소비자피해 예방, 보상, 대응 등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정위의 플랫폼법 제정으로 국가가 나서서 글로벌 플랫폼의 한국 시장 지배를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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