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을 재가했다. 사진은 이날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을 재가했다. 사진은 이날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계속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독단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법안의 정쟁화를 멈추고 여야 합의를 통해 유족을 보듬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하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재가했다. 이태원 참사 재조사를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재정 지원 및 심리 안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해당 법안은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이태원 특별법이 국회에서 원안대로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 및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이 3분의 1 이상의 의석(113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여당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재의결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尹 이태원 특별법 거부에 언론 “10년 전 세월호 때와 같은 논리”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이태원’을 검색하자,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총 747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날짜별로 보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지난달 30일 가장 많은 284건의 기사가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이태원 특별법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키워드는 ‘거부권’이었으며, 그 뒤는 ‘윤석열 대통령’, ‘재의요구권’ 등의 순이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다. 무엇보다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1일 기사에서 “‘특별조사기구의 권한이 지나치게 넓다’ ‘구성이 공정하지 못하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정부 측 주장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당시 정부·여당 인사들이 제기했던 것들”이라며 “10년 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막아섰던 논리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두고도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유족들에 대한 위로와 철저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국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정부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거 세월호 사건이 장기화된 것은 처음부터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소홀했던 이유도 있다”라며 “참사 당시 우리 정부는 즉각적인 대응도 하지 못했고, 보고 체계도 엉망이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또한 지난달 30일 사설에서 “159명이 희생된 참사가 일어난 지 15개월이 지났건만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윗선 문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유가족 지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이태원 참사의 본질이 덮일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소중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은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 책임을 분명히 가려달라는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는 많은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숙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보도된 이태원 특별법 관련 보도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보도된 이태원 특별법 관련 보도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尹, 역대 대통령 중 최다 거부권 행사” 초점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총 5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9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는데, 이는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수치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30일 기사에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9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다 기록”이라며 “대통령실은 약 100자 분량의 ‘알립니다’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재가 사실만 짤막하게 전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윤 대통령 본인이 전하는 위로의 말은 없었다. 대신 정부는 유가족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희생자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내용의 ‘10·29참사 피해지원종합대책’을 내놨다”라며 이를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인 여론을 달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31일 사설에서 “취임 후 21개월이 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9건으로 늘어났다”라며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를 “여소야대 구도에서 일그러진 정치와 국정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서울경찰청장 등 23명이 기소됐지만, 포괄적 책임을 진 정부 고위직 인사는 없었다. 정부 차원에서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속 시원하게 정식 설명한 적도 없다”라며 “야당 역시 총선 후로 특조위 구성을 미루는 등 ‘정쟁 요소’를 막판에 뺐다지만 설명이 더 필요하다. 세월호 사건 등 참사 때 위원회를 반복 구성했지만, 소득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고 여야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되자 슬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되자 슬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언론, 여야 재협상 촉구... “이태원 특별법 내용 수정돼야” 

일부 매체는 이태원 특별법의 내용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이 포함됐다며, 여야가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1일 사설에서 “이태원 특별법에 논란거리가 포함된 것은 사실”이라며 “특별법은 특조위원 11명 중 국민의힘이 4명, 민주당이 4명, 민주당 출신인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도록 규정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친야 성향의 특조위가 꾸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런 이유들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판단된다”라면서도 “여권도 거부권 행사를 끝으로 이태원 특별법 문제를 마무리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민심이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이 159명이나 죽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냐’는 상식적 여론 때문”이라며 “여야는 이제라도 다시 협의를 시작해 특별법의 위헌적 하자를 제거하고 합의 처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신문 또한 이날 사설에서 “특조위 구성 절차에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결여된 것은 거대 야당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입법이라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라며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국민 분열만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는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이어 “앞서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가 빚어졌을 때도 특조위를 관철시켰지만 천문학적 예산을 쓰고도 진상규명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야당을 비판하며 “법안의 결함에도 야당이 재협상을 거부한다면 피해자와 유가족이 아닌 당리당략을 위한 법안이라는 의구심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태원 특별법 논란을 ‘정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여권은 민주당이 유족들의 아픔을 정쟁에 활용하기 위해 이태원 특별법을 밀어붙인다고 의심하는 분위기”라며 “159명이 사망한 참사를 단지 정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이어 “마침 국민의힘에서 특별법에 대한 ‘재협상’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나마 다행”이라며 “여당은 특별법을 정쟁의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민주당도 너무 무리한 요구로 일부러 판을 깬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