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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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고 불확실성이 높은 전통적인 신약개발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빅파마와의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2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이 지난 23일 바이오 벤처 아이젠사이언스와 인공지능(AI) 기반 항암제 연구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난 2021년 설립된 아이젠사이언스는 약물의 잠재적 표적, 작용 기전을 도출할 수 있는 전사체 데이터 기반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통해 14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협약에 따라 아이젠사이언스가 AI 플랫폼을 기반으로 항암 후보 물질을 발굴하면 한미약품은 자체 R&D 역량을 토대로 해당 물질의 도입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인공지능은 신약후보물질 발굴뿐만 아니라 임상 단계에서의 효율성과 성공확률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GC셀은 지난해 12월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과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 물질 'AB-201'을 연구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루닛은 개발 중인 AI 바이오마커(생체 표지자) '루닛 스코프 IO'를 공급하고, 두 기업은 이를 활용해 'AB-201'의 후향적 연구를 진행한다. 

후향적 연구는 이미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AB-201은 유방암·위암 등 고형암에 쓰이는 CAR-NK 세포치료제다. CAR-NK 세포치료제는 암세포에 특별히 반응하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와 자연 살해(Natural Killer·NK) 세포를 결합한 차세대 면역항암제다. 

이 외에도 삼진제약은 인세리브로와 AI 신약개발을 하고 있고, 대웅제약, JW중외제약, 보령 등도 심플렉스, 온코크로스 등과의 협업을 통해 AI 신약 개발을 진행 중이다. 

해외 AI 업체와의 협약도 활발하다. 

동아에스티는 지난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이스라엘 바이오 기업 일레븐 테라퓨틱스와 리보핵산(RNA) 기반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일레븐이 보유한 플랫폼 기술인 '테라'(TERA)를 활용해 섬유증 질환용 RNA 치료제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테라는 RNA 약물 발굴에 활용하는 AI 기반 플랫폼으로, RNA의 화학적 변형을 해독할 수 있다고 동아에스티는 설명했다. 이를 통해 동아에스티는 합성 신약 분야를 넘어 유전자 치료제 분야로 연구개발 역량을 확장하는 데 속도를 낼 예정이다. 

현재 제약사들이 AI와 디지털 기술의 활용 폭을 넓히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연구개발(R&D)이다. R&D 지출 규모가 매년 늘어나는 것과 비교해 임상 개발 성공률은 매년 낮아지고 있어 이러한 효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바이오제약사의 R&D 투자 수익은 2010년 10.1%에서 2018년 1.9%로 크게 감소했다.

여기에 더해 치료제를 시장에 출시하는 데 드는 비용은 12억 달러에서 22억 달러로 증가했지만, 치료제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매출은 8억1600만달러에서 4억700달러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약업계는 AI를 통해 가지고 있는 파이프라인의 성공을 예측해 비용의 효율을 높이고 이를 다시 R&D에 투자하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화이자는 AI를 활용해 코로나19 유행지역 예측과 임상시험 분석으로 mRNA백신 개발을 10.8개월로 단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이후 AI와 제약기업의 협업 발표가 다수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제약바이오계에서 압도적인 단독 AI 기술을 갖춘 곳은 없다. 제약사들도 분야별 각자 잘하는 영역이 있고, AI 개발 업체들과 오픈 이노베이션 협업을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초 제 42회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은 분야 역시 신약개발 AI였다. 구글, 엔비디아와 같은 빅테크 기업이 신약개발 AI에 선제적으로 투자했고, 최근 빅파마들은 신약개발 AI와 조단위 공동개발 계약을 맺고 있다. 더불어 글로벌 빅 파마 중 독자적인 연구시설을 설립해 AI 기술을 키우는 곳도 있다. 

황재성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센터 책임연구원은 25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화이자의 디지털혁신센터, 아스트라제네카의 데이터사이언스&인공지능센터, 사노피의 AI신약개발가속센터 등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자체 AI 연구시설을 설립해 수백 명에서 많게는 천명 이상의 관련 연구원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다 투자금과 기술력의 미국이 AI 생명공학 특허만 약 600여개 보유하는 등 우리보다는 앞서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2016년에 고작 2개였던 국내 기업의 AI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이 수적으로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이렇게 늘어난 파이프라인이 AI가 예측한 바와 같이 실제 임상에서 일반적 신약개발보다 성공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인하는 단계까지는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다만 AI 신약개발을 위한 선결 과제가 있다.

AI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같이 쉴 새 없이 발생 축적되는 데이터와 다르게 신약개발 데이터는 신약개발이라는 특수한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실험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다. 즉, 타 산업에서 AI가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는 데이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비용의 데이터 생산성, 후기 단계로 갈수록 수집가능 데이터가 적어진다. 

신약개발 환경에서 야기되는 데이터 고립 문제는 AI 활용 실제 데이터 부족 문제를 동반하고 있으며, 제약산업이 AI의 실질적 효과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선결 과제이다. 

이에 민관 협력으로 추진될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가속화 사업(K-MELLODDY 프로젝트)’이 AI 솔루션의 가치를 증명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K-멜로디 프로젝트는 여러 기업‧기관 등이 보유한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지 않고 AI를 학습하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을 활용, 신약개발을 가속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K-멜로디 사업은 정부의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육성방안 등에 반영되었으며, 올해 본격적인 추진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12일 AI신약융합연구원(CAIID, Convergence AI Institute for Drug Discovery)을 설립했다. 연구원은 AI 신약 융합연구 촉진을 통한 제약바이오산업의 혁신 생태계 조성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17일 발표한 ‘인공지능 신약개발 가속화와 K-MELLODDY’ 보고서를 통해 “신약개발에 있어서 AI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데이터 분산과 고립이 있다. 이러한 데이터 사용의 한계는 곧 AI 학습과 성능향상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제약바이오산업계는 이 문제를 연합학습 기술을 활용해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K-멜로디 사업을 통한 분산된 신약개발 데이터를 유출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여 데이터를 통합해 마치 빅데이터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합학습 기반이기 때문에 빅데이터가 부가가치를 생성할 수 있도록 AI 기술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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