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이코리아] 정부가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상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정부안의 처리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조항이 낳을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 17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 홀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네 번째 민생 토론회를 열고 이사의 책임 강화, 주총 내실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유튜버 ‘슈카월드’의 운영자 전석재 씨는 “기업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닌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청년들에게 우리 기업에 투자해 달라고 설득할 수 있겠나”라며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 거버넌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회사법, 상법을 저희가 계속 꾸준히 바꿔나가면서 이 거버넌스가,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24일 ▲전자주주총회 제도 도입 ▲주식매수청구권 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은 모든 주주가 전자적으로 출석하는 완전전자주주총회와 전자적 출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병행전자주주총회의 개최 및 이를 통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전자적 방법으로 주주의 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또한, 비상장기업의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기업이 주주에게 매수가액 산정근거를 제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소관위에 계류된 상태다.

정부는 이 밖에도 이사가 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하지 못하도록,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 구체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공매도 전면 금지,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투세 폐지 추진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자본시장 핵심 쟁점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고 있는 만큼, 그동안 진전이 없었던 상법 개정 논의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정부의 상법 개정이 소액주주 권익 보호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전자주주총회의 경우 소액주주의 참여율을 높이고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독려해 이들의 의견이 경영에 실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모든 주주가 전자적으로 출석하는 ‘완전전자주주총회’의 경우 오히려 주주의 의사가 기업 경영에 반영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경우 전자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주주의 참여가 제한될 수 있는 데다, 자칫 참여 주주의 질문권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 

실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10월 제출한 상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에서 “완전전자주주총회에서는 주총 의장이 주주들의 질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답변하거나, 특정 주주를 배제한 채 질문을 선별하여 답변하고, 주주가 아닌 참석자가 질문을 제출하여 다른 주주들의 질의시간을 줄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영진에 불리한 질의를 쉽게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국 기관투자자협회(CII)를 비롯해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인 ISS, 글래스루이스 등은 이러한 문제 떄문에 완전전자주주총회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논평에서도 “법무부 입법예고안은 주주들에게 총회 참석 편의성을 제고하는 것을 넘어 그로 인한 부작용이 큰 방안”이라며 “전자주주총회를 먼저 도입한 미국에서는 완전전자주주총회 방식의 경우 주주의 질문권이 침해하고 주주와 경영진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안은 특정 주주총회 방식을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모든 주주총회 방식을 허용한 뒤 완전주주총회만 여는 것을 규제할 방법은 없다. 경제개혁연대는 “상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전자주주총회는 병행전자주주총회만 허용하되 정관이 아닌 이사회 결의로 개최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 수 이상 주주들의 요구로 회사가 병행전자주주총회를 개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방안은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사의 충실의무는 이사가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박주민·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뿐만 아니라 ‘총주주’, ‘주주의 비례적 이익’ 등을 추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는 기업 및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가 상충될 경우 이사에게 일반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다.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런 규정이 생기더라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에 그칠 수 있다”라며 “보다 피부와 와닿게 주주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실용적인 장치를 마련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기존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실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획기적인 법안”이라고 평하며 “개정안의 방향에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 역시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보름 만에 입장을 뒤바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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