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재작일(再昨日) 총리대신 이완용 씨 집 산장에서 모모 관인들이 모여 화투판 노름을 벌였는데, 박의병 씨가 3,000환을 잃고 이완용의 종질 이용구씨가 5,000환을 땄다더라” (대한매일신보 1909년 3월 4일) 

“중추원 고문 이지용 씨가 근일 자기 집에서 화투판을 크게 벌이고 최진택 씨의 돈 2만환을 따먹었다는 사실이 있어 헌병사령부에서 정탐 중이라 하더라.” (대한매일신보 1909년 4월 9일자)

위의 두 보도는 진실 뉴스일까, 가짜 뉴스일까. 물론 진실 뉴스이다. ‘~했다더라’는 전언(傳言)체의 문장이지만, 당시는 사실 보도의 문장이 이런 식일 때였다. 때는 1910년 한입합병 직전, 세상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 이완용과 이지용 가문의 도박소식을 전한 뉴스다. 당시 순사 한 달 봉급이 20환 남짓했다. 

러일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李址鎔)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사이에 비밀리에 ‘한일의정서’가 체결됐다. 조인에 앞서 일본 공사관은 이지용에게 뇌물 1만환을 먹였다. 거금을 삼킨 이지용은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한일 의정서’ 조인에 서둘렀다. 이듬해 이지용은 내부대신으로 영전해 을사늑약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지용은 일본의 한국 병탄에 기여한 공으로 일본으로부터 백작 작위와 10만환 은사금을 받았으나 도박판에서 탕진했다. 

이완용이 누구인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은 투전과 골패가 도박의 수단이던 한반도에 화투를 급속히 확산시켰다. 대신들은 일과를 팽개치고 술판을 곁들인 화투판을 벌여 날 새는 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언론들은 목숨 걸고 이들의 망동을 파헤쳤다.

위의 두 보도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교훈은 일제 시절에도 우리 언론은 진실 보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점이다. 나라의 임금인 고종조차도 두려워했던 친일 권력자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술과 도박에 탐닉했고, 이에 대해 언론들은 진실보도로 맞섰다. 오늘의 한국언론에 이런 기개가 있는가.

가짜 뉴스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 뉴스를 말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의 보급은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증가했으나, 지금은 주류 미디어에서도 의도적으로 가짜 뉴스에 발을 담그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정치가 극단적으로 양극화 하면서 명백한 가짜 뉴스는 물론 지나친 추론, 확증 편향, 그리고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과 같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교묘한 가짜 뉴스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기존 미디어는 그런 흙탕물 속에서 맑은 뉴스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가짜 뉴스는 실제 뉴스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 가짜 뉴는 진실보다 빨리 퍼지며,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독자·시청자들은 진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심지어는 가짜 뉴스인지를 알면서도 지지한다. 정치에서의 가짜 뉴스는 특정한 목적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특정인에 대한 당선이나 낙선, 특정 정당에 대한 옹호나 비난, 특정 사건을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하거나 특정 세력의 추측이나 견해를 마치 사회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은유적인 뉘앙스를 통해 정치적 목적의 가짜 뉴스를 퍼트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연말(2023년)에는 일본으로 도망친다”고 말했던 유명 유튜버는 그 말이 허무맹랑해진 지금도 말을 바꿔가면서 유뷰브를 계속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확산되는 가짜 뉴스는 욕설과 험한 말투를 사용하고, 근거 및 관련 자료의 교차 검증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한다. 지지하지 않는 대상을 혐오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일삼는다. 어떤 유튜브는 기계 목소리를 내보내고, 가면을 착용하거나 알 수 없는 보도자와 자칭 전문가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런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의 책임이 막중하다. 물론 가짜 뉴스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형사처벌 규정은 물론 상당히 많다. 정통망법 명예훼손이나 출판물명예훼손이 있고, 선거기간에 후보자를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려는 목적으로 가짜뉴스를 공표하면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가 적용된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 의한 정치비판은 악의적 목적을 가진 것인 지의 여부를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 지난 2021년 언론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면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 문제와 함께 언론 활동의 고의·중과실을 법률로 열거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추진하자는 의견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정권교체로 불씨는 꺼졌다. 그러나 지금 가짜 뉴스의 폐해는 더욱 극심해졌다. 여야를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짜 뉴스 판별력은 비판적 사고력에 달려있다. 비판적 사고력은 고도의 인지능력이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진실을 뺨칠 정도로 교묘해지고 있어 오랫동안 언론 관련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치권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가짜 뉴스는 은근히 지지하며 가담하는 경우도 많아 구별을 더욱 어렵게 한다.

가짜 뉴스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먼저 정부 여당에서 정당한 뉴스를 온당하게 대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언론관련 정부기구에 언론계 전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사를 기용하고, 언론을 존중해야 한다. 처벌 위주의 대응은 오히려 언론을 위축시키고, 더 많은 가짜 뉴스를 만드는 요인이 될 뿐이다. 언론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기존언론들의 노력도 크게 요청된다. 지금은 상당수의 언론인들이 정치적 편향성에 침윤돼 있다. 영향력이 큰 매체일수록 편향성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자사에서 지지하는 진영의 뉴스는 최대한 호의적으로 다루거나, 비판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예 입을 다문다. 지지하지 않는 진영의 뉴스는 최대한으로 후벼파는 비판적인 보도로 일관한다. 언론 보도에 대한 긍지가 사라져버거나, 중립성의 가치를 망실한 보도 및 해설기사의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위의 이지용·이완용 가문의 도박에 대한 보도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정신이 살아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래야 언론의 신뢰가 생기고, 가짜 뉴스가 발붙일 토대가 줄어든다. 여·야, 특히 정부는 언론의 치열한 사실보도 기능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 진영에 불리한 기사를 손보려 하면 가짜뉴스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져 만인의 손해, 국가의 손해로 이어진다. 

정부에서 뉴스 보도에 개입하는 대신 팩트체크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확산시켜야 한다. 팩트체크는 저널리즘의 근본적인 기능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정부에서 크게 주목해야 한다. 팩트체크는 뉴스의 사실성을 판정해주는 심판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 검증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확인해야 한다. 스스로 중립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윤리적 의무까지 지니게 된다. 시급히 팩트체크 연구소와 단체를 육성시킬 필요가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정보 분별력을 키워서 최소한 가짜뉴스를 구별할 수 있는 시민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가짜 뉴스를 줄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키우는 지름길이다. 지금과 같이 가짜뉴스가 활개 치는 것을 내버려 두면 몇 년 후에는 지옥의 세상이 될 것 같다.

임순만 작가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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