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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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결국 승인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진입을 상징하는 사건인 만큼, 투자자들도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오늘 위원회는 다수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다”라고 밝혔다. ETP는 주식·채권·부동산·달러 등 기초자산과 수익률이 연동되는 상품으로, ETF(상장지수펀드)나 ETN(상장지수증권)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비트코인 선물 ETF가 거래돼왔으나 과도한 롤오버(Rollover) 비용으로 인해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비트코인 선물 ETF가 처음 출시된 2021년 4분기 자금 흐름은 17억 달러에 달했으나, 1년 뒤인 2022년 4분기에는 3500만 달러로 급감했다.

반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경우 롤오버 비용이 없는 데다, 가상자산 가격과의 괴리율이 낮고 운용보수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상당한 규모의 자금 유입이 기대되고 있다. 문제는 선물 ETF와는 달리 현물 ETF의 경우 운용사가 비트코인을 실제로 보유해야 하는 만큼, 시장 및 지수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높은 변동성과 부족한 감시 체계를 고려하면 자칫 시장 조작으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SEC는 해당 위험이 해소되기 전까지 현물 ETF를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ETF 승인을 거부할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더는 승인을 미룰 수 없게 됐다. 앞서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8월 SEC가 암호화폐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신청을 거부한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을 맡은 네오미 라오 판사는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와 선물 ETF를 다르게 취급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레이스케일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결정”이라며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SEC는 승인 여부에 대한 결정을 미루며 기존 태도를 고수했지만, 결국 항소 제기 시한인 지난해 10월 14일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판결을 수용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앞서 법원은 SEC가 그레이스케일의 ETP 상장 및 거래를 불승인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위원회의 처분을 취소했다”라며 “이런 상황과 승인처분에 대한 추가 논의를 바탕으로 비트코인 현물 ETP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하는 게 지속가능한 길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는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입성을 의미하는 사건인 만큼 업계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암호화폐 혁신위원회(CCI)의 쉴라 워렌 최고경영자(CEO)는 10일(현지시간) CNBC를 통해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중대한 분기점”이라며 “(SEC의 승인 결정으로) 많은 기관 자본이 유입될 것이며, 이 자산군의 역학을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비트코인 테마 ETF를 처음 출시한 멜라니언 캐피털의 자드 코메어 CEO 또한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대규모 전통적 투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큰 이정표”라며 “우리는 월스트리트의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 또한 현물 ETF 승인 소식과 관련해 급격한 변동을 보였다. 암호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날 SEC 소셜미디어 해킹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됐다는 가짜뉴스가 알려지자 4만4707달러까지 하락했던 비트코인은 SEC의 공식 발표 이후 4만7647달러까지 급등했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붕괴로 가상자산이 급격한 침체에 빠졌던 2022년 12월(약 1만6000달러)보다 3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다만 높았던 기대감에 비하면 발표 전에 비해 상승세는 완만한 편이다. 11일 낮 12시 현재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0.32% 상승한 4만635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물 ETF 승인을 계기로 비트코인 가격이 더욱 상승할 거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자산관리회사 코인쉐어스의 멜텀 데미로스 최고전략책임자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올해 말까지 6자리를 넘어설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과 4월에 도래할 반감기를 근거로 제시했다. 

한편 SEC는 이번 결정이 다른 가상자산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겐슬러 의장은 “중요한 것은 오늘 위원회의 조치가 비트코인을 보유한 ETP에 국한된다는 것”이라며 “위원회가 암호화폐 자산증권에 대한 상장 기준을 승인할 뜻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겐슬러 의장은 이어 “우리는 중립적인 입장이지만 비트코인은 랜섬웨어, 자금세탁, 제재 회피, 테러자금 조달 등 불법적인 활동에도 사용는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및 암호화폐 관련 상품에 연관된 다양한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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