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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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시판되는 생수 1병 안에 미세플라스틱이 약 24만 개가 들어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베이잔 얀 미국 컬럼비아대 라몬트-도허티 지구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판매되는 인기 생수 브랜드 3종을 분석해 이같은 내용의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했다. 

미세플라스틱은 통상 1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5mm의 플라스틱을 일컫는다. 마모되거나 태양광 분해 등에 의해 잘게 부서지며 생성된다. 미세플라스틱은 인체침투도 수월해 혈관을 타고 세포, 뇌, 태반까지 미세플라스틱 침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미국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생수 브랜드 3가지에서 5개씩 표본을 조사했다. 분석 대상에 두 방향에서 레이저를 발사한 뒤 나온 분자의 공명을 관찰하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3종의 병입 생수에서 7종류의 플라스틱 입자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발견된 플라스틱 입자 가운데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페트)와 합성섬유 나일론 소재로 알려진 폴리아미드 입자도 있었다면서 병입과 필터 정수 과정에서 플라스틱이 물속에 들어간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결과, 1리터(L)짜리 생수 1병에는 평균 24만 개의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에 따라 최소 11만 개 최대 37만 개의 입자가 검출됐다. 이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 플라스틱의 수를 따졌을 때보다 최소 10배, 최대 100배 많은 수치다. 

셰리 메이슨 펜실베이니아주립대(베런드 칼리지) 연구진은 "그간 미지의 영역이었던 나노 플라스틱의 양을 밝혀냄으로써 건강에 미치는 영향 평가의 시작점을 제공했으며, 새로운 세계의 창을 열었다"고 말했다. 

한편,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내 영향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 2019년 추가 연구가 시급하나, 아직은 물속 미세 플라스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정책적으로 살펴보면 해외에서는 미세플라스틱과 관련된 제품들을 규제하는 법안이 도입되었고, 미세플라스틱을 독성물질 항목으로 추가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생활용품의 일부분에 한해서만 규제를 시작했다. 다만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 역시 미세플라스틱 함유량 표시기준에 대한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최근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미세플라스틱 다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또 한국해양연구원은 가리비 등의 표본을 이용해 국내 해안의 미세플라스틱 영향과 관련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행 법령에서도 생활화학제품 중 위해성 평가를 한 결과 위해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제품을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고시하고, 이 중 세정제, 제거제, 세탁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등 5종의 제품에 미세플라스틱 함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이면서도 세정제 등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약사법'에 따른 의약외품(콘택트렌즈관리용품 등), '화장품법'에 따른 화장품(영유아용, 목욕용 제품류 등) 및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관리되는 고형 세탁비누 등은 아직 미세플라스틱 함유 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관련 법・제도상 미비점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9월 8일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에 의도적 미세플라스틱 함유 표시를 의무화한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준호 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소비자가 인체 건강 또는 환경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 함유 여부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 법안은 계류 중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관련 법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현행법의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중 세정제품·세탁제품에 대해서는 미세플라스틱을 함유금지물질로 규정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하여 제조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는 생활화학제품, 화장품, 의약외품 중 일부 품목에 대하여 그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나, 이는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및 환경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음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미세플라스틱을 관리하는 것일 뿐, 충분한 연구를 통한 검증된 결과물을 바탕으로 미세플라스틱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국제적으로도 미세플라스틱의 정의, 환경·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심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미세플라스틱과 관련해 과학적 해결방안으로 연구원, 기업 중심으로 바이오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 저감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탄소와 탄소 사이에 결합력이 약한 고리를 연결해두어 미생물이 공격할 때 빠르게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될 수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6개월에 90%가 분해되는 대신 일반 플라스틱보다 값이 3배 정도 비싸다.

삼성전자의 경우 옷감 마찰을 줄여 미세플라스틱 발생량을 최대 60%까지 줄여주는 '미세플라스틱저감 코스'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측은 2021년 이후 한국과 유럽에 출시한 전체 비스포크 세탁기가 미세플라스틱저감 코스를 사용하면, 연간 최대 약 50톤(t)의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궁극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시스템 강화가 더욱 요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환경회의·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은 지난해 11월 케냐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3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과감한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요구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친 규칙을 마련하자며 175개국이 합의한 회의체다.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의를 시작했고, 마지막 5차 회의는 2024년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협약을 위한 정부간협상회의에서 나온 요구는 △플라스틱 생산 제한과 극적인 감축 △재사용 시스템 촉진 △화학 물질 사용 금지 △미세플라스틱 규제 등이 있다. 

참가자들은 "플라스틱은 90% 이상이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면서 "정부는 지금 국내 산업계를 앞장서 보호하며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규제는 없이, 오로지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화학적 재활용 확대와 재생원료 생산 확대 중심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끝내 오염을 종식 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원료 추출과 생산을 포함한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과 같이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소비한다면 우리가 살아갈 이 땅이 종국에는 플라스틱으로 덮일 것"이라면서 "산업계의 입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시민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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