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금투세 폐지를 통해 해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은 세부담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한국거래소 증시 개장식에서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윤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기업들이 많이 있지만 주식시장은 매우 저평가돼있다”라며 “제 임기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의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서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해 실현된 소득(양도·환매)이 연간 5000만원 이상인 경우 20~25%를 세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금투세는 지난 2020년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23년 시행될 예정이었다.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거래세와 소득세를 모두 부과할 경우 이중과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손실을 본 거래에 대해서도 일괄 부과되는 거래세는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이를 양도소득세로 대체하자는 취지에서다. 다만 지난 2022년 시행 시점이 2025년으로 연기된 데다, 윤 대통령이 폐지 입장을 밝히면서 시행 시기는 알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은 금투세가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해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저평가가 계속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오히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다. 

실제 미국·일본·유럽 등 다수의 금융 선진국에서는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거래세 없이 소득세만 부과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얻은 자본소득을 장·단기로 나눠 과세하는데, 1년 미만 보유한 주식을 처분한 경우 일반 소득과 더해 종합과세하지만 1년 이상 장기 보유한 주식의 경우 0~20%의 낮은 세율을 적용해 분리과세한다. 

일본 또한 지난 1989년부터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한편, 1999년 증권거래세를 폐지했다. 독일 또한 거래세 없이 시세차익에 대해서만 소득세로 세금을 징수한다.

금투세 시행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앞서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 ▲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회계 불투명성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등을 국내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금투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연관이 없다며 윤 대통령에게 폐지 입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금투세 폐지 주장에 대해 “총선을 앞둔 시점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개인투자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추상적이고 포퓰리즘적인 레토릭”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소수 재벌일가 중심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및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자본시장 등에서 기인한 것이지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금융투자소득세로 나타난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며 “금투세 폐지의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자가당착에 빠진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이어 “지난해 맹목적인 부자감세로 인해 역대급 ‘세수펑크’ 사태를 자초한 윤석열 정부가 새해에도 계속하여 부자감세 기조를 이어가면서 세수부족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라며 “금투세를 폐지하면 대자산가와 재벌기업의 대주주 등 소위 큰손에게 감세의 혜택이 집중되면서 조세공평의 원칙이 형해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또한 2일 성명을 통해 “자산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금융소득·자본소득과 같은 불로소득이 점차 증가하는 우리사회에서 과세 정상화를 위해 금투세의 도입과 시행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라며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는 근로소득에 반해, 금융소득에는 과세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조세형평성에 반할 뿐더러 우리 사회의 공정을 훼손하고 자산불평등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금투세 폐지를 마치 개미투자자들을 위한 것인냥 포장하지만 금투세 과세 대상은 0.9%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부자감세일 뿐”이라며 “정부가 조세제도를 훼손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조세제도의 규범력을 정부 스스로 허물고,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시장 활성화를 지원하고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금투세 폐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금투세 폐지 추진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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