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고(故)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고(故)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배우 이선균 씨가 지난 27일 사망했다. 언론은 경찰의 수사행태가 비극을 초래했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언론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 언론, “경찰 무리한 수사가 비극 초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이선균’을 검색하자, 이 씨가 사망한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1050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날짜별로 보면, 이 씨가 사망한 다음 날인 28일 가장 많은 414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 씨 사망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 키워드는 ‘마약 투약 혐의’였다. 이 씨는 서울 강남구 유흥업소에서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왔으며, 지난 10월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씨는 유흥업소 실장에게 속아 수면제인 줄 알고 흡입했다며 고의성을 부인해왔다.

‘경찰수사’도 이 씨 관련 기사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언론은 이번 사건은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초래한 비극이라며 경찰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한겨레는 27일 사설에서 “경찰은 그를 소환할 때마다 포토라인에 세우고 검증되지도 않은 조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라며 “이 씨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피의자 인권 보호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 씨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또한 28일 사설에서 “마약 관련 의혹 제기만으로도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는 연예인들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혐의가 공개됐다”라며 “이선균 씨의 비극을 계기로 경찰의 수사 방식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최근 경찰이 소환했으나 혐의가 없어 불송치로 결론 난 가수 권지용씨(지드래곤)는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웃다가 끝났다’고 말했을 정도”라며 “제보에만 의존해 유명인의 혐의를 공표하는 게 적절했는지 수사 원칙을 재점검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경찰은 이러한 비판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28일“고인에 대한 수사는 구체적인 제보 진술과 증거를 바탕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라며 “일부에서 제기한 경찰의 공개 출석 요구나 수사 사항 유출은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다. 

 

27~29일 보도된 배우 이선균 씨 사망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27~29일 보도된 배우 이선균 씨 사망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계속된 비윤리적 자살보도... 언론 스스로 돌아볼 때

반면, 언론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자살 관련 보도에서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을 위반하는 기사가 여전히 보도됐기 때문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는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하지만 ▲문화일보 “배우 이선균, 차에서 숨진 채 발견…번개탄 흔적” ▲서울경제 “이선균, 사망한 채 발견… ‘발견 당시 이미 사망, 번개탄 흔적’” ▲매일경제 “배우 이선균, 차에서 쓰러진 채 발견… 현장서 번개탄 발견” 등 다수의 언론은 기사 제목에서 ‘번개탄’을 명시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자살’, ‘스스로 목숨 끊다’, ‘극단적 선택’, ‘목매 숨져’, ‘투신 사망’ 등과 같은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과 같이 객관적 사망 사실에 초점을 둔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또한 지난 7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해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에 자살이 마치 힘든 상황에서 선택지의 하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며 “자살을 마치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가능성처럼 보도하면 안 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매체는 이 씨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실제 이 씨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목록에는 ‘극단적 선택’이 높은 순위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극단적 선택한 이선균… 지인 ‘가족·주변인 고통에 괴로워했다’”는 기사 제목을 사용했으며, 다른 매체도 기사 본문에서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족 동의 없이 유서 내용을 공개한 언론도 있었다. 앞서 TV조선 ‘뉴스9’는 지난 27일 방송에서 이 씨 유서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는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9일 “TV조선은 ... (이 씨가) 아내와 소속사 대표에게 남긴 유서 내용을 ‘단독보도’라며 공개했다”라며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유서 공개는 ‘자살보도 윤리강령’ 위반이고, 도덕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이어 “더 큰 문제는 TV조선의 보도 이후 이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쓴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는 점”이라며 “윤리강령도 저널리즘의 원칙도 무시된 자극적이며 경쟁적인 언론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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