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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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금융지주사 이사화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인사 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7명 중 28명(75.6%)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주사별로 보면 신한금융이 9명 전원으로 가장 많았고, KB금융은 7명 중 4명, 하나금융 8명 중 6명, NH농협금융 7명 중 5명, 우리금융 6명 중 4명 등의 순이었다.

5대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4명 중 3명의 임기가 곧 만료되는 만큼, 금융지주사가 이사회 다양성 제고를 위해 새 얼굴 찾기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금융권 화두로 떠오른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지만, 정작 이러한 관심을 경영방침에 반영시켜야 할 이사회의 다양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 사외이사의 직군은 학계 37%, 금융계 22%, 관료 12%, 비금융계 11%로 구성돼 학계 중심으로 편중됐다. 또한, 사외이사 전문분야 또한 금융·경제·경영 위주(61.8%)로 IT·소비자·ESG를 전문분야로 하는 사외이사를 보유하지 않은 은행도 많다. 

해외 금융사의 경우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분야로 이사회 전문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다. 씨티그룹의 경우 디지털·보안(3명), ESG(3명), HR(4명), 지배구조(3명), 보수(4명), 글로벌(5명)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인재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성별 구성은 더욱 심각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 이사 중 여성 이사 비중은 약 12%로, 여성 이사가 전혀 없는 은행도 8개에 달했다. 씨티·웰스파고·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글로벌 은행의 여성 이사 비율이 30~50% 수준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감독대상인 유럽 은행의 여성 이사 비율이 평균 34%인데도, 젠더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은행지주사 또한 마찬가지다. 5대 은행지주사 사외이사 37명 중 여성 이사는 9명으로 24.3%에 불과했다. 은행 이사회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글로벌 금융사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지주사별로는 KB금융이 7명 중 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신한·농협금융 2명, 하나·우리금융 1명 등의 순이었다. 

글로벌 금융사는 이미 이사회 다양성을 중요한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실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2018년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골드만삭스 또한 지난 2020년 성별·인종 등의 측면에서 다양성을 충족하는 이사가 없는 기업의 기업공개(IPO)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3대 자산운용사로 꼽히는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어드바이저스(SSGA) 또한 지난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모든 투자 대상 기업에게 “모든 글로벌 기업은 이사회에 1명 이상의 여성을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사회 다양성이 경영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지난 2020년 12개국 1000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사회 내 성별이 다양한 기업의 영업이익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약 2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또한, 지난 2018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평균보다 높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19% 높은 수준의 혁신수익(기업이 최근 3년간 새로 출시한 상품·서비스로부터 창출한 수익을)을 달성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당국의 강요에 밀려 ‘구색 갖추기’ 격으로 다양성을 높인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사회 내 소통구조도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성에 대한 검증 없이 ‘다양성 이사’를 선임하면 오히려 경영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은행지주 이사회 다양성에 대한 고찰’ 보고서에서 “이사회 내 문화적 다양성 확대가 경영성과 악화로 이어진다는 연구도 제시된 바 있는 등 다양성 확대의 효과는 다양성의 단면, 이사회 내 의사소통을 생산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노력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다양성 제고는 경영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지주사들이 전문성과 다양성을 고루 갖춘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지주는 각사별 중장기 경영전략과 부합하는 다양성의 식별, 다양성 기준 수립, 중장기 다양성 제고 로드맵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수립한 다양성 기준 및 제고 로드맵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 위해 사외이사 후보군 구성, 사외이사 평가·임면이 이들과 합치하는지 정기적으로 검토 및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지난 12일 발표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best practice)’에서 “이사의 전문분야, 직군, 성별 등과 관련하여 은행별 영업 특성에 따라 중장기 전략, 가치 등을 감안해 전문성 및 다양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이를 상시후보군 구성 분야, 후보군 수, 후보군 평가 등 관리 정책과 연계시킬 것을 요구했다. 사외이사 4분의 3이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금융지주사가 다양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나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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