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휴대폰이 진동하며 086으로 시작하는 긴 번호가 들어왔다. 순간 ‘살아계신다’는 안도와 반가움이 몰려온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귀에 댄다. 

“야~ 00 맞니? 내 엄마다. 아픈 데는 없니?” 수화기 너머로 얇고 힘없는 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진다. “엄마, 아픈 데는 없어요? 추운 겨울 어떻게 지내세요? 먹을 건 있어요?” 딸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사라질까 불안해하며 빠르게 말을 쏟아놓는다. 

“나는 일없다. 지난해보다는 좀 힘들다.”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잠시 멈춘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다. “코로나에 걸렸다. 좀 도와 달라….”

그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불안이 엄습한다. 이렇게 통화가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딸은 귀에 붙었던 전화기를 떼어 눈앞으로 가져온다. 전화는 통화 연결상태다. 엄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들려요?” 지지직하는 통신 불협화음과 사나운 바람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사라지지 않고 거기 계시는 것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산속에서 통화를 하실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 있어요. 많이 있어요.”

엄마의 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통신상태가 좋지 않다. 엄마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엄마! 엄마! 아무리 소리쳐도 전화는 먹통이다.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본다. 전화는 여전히 끊기지 않은 상태다. 엄마는 아직 전화기를 놓지 않은 것이다. “엄마,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저는 여기서 잘 살아요. 돈도 많아요.” 딸은 어떻게든 전화를 움켜쥐고 있으려 한다. 전화를 움켜쥐고 있으면 엄마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휴대전화에는 빨간 불이 뜬다. 전화가 끊겼다. 

탈북 여성 이 모 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한국에서 20년 동안 수십가지의 일을 했다.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고 엄마가 돈을 벌러 다니다가 다쳐 일을 못하게 되자 장녀인 그녀는 한달에 2할이 넘는 고리의 돈을 빌려 장사를 다녔다. 어느날 물건을 몽땅 도둑맞은 그녀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기 쉽다는 말을 듣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중국에서 몇 번 공안에 잡혀 북송당했고, 북한 보위부 감옥살이와 중국행을 거듭하다 한국에 오는 데 성공했다. 그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녀는 중국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팔려다니면서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남한에 와서 여러 일을 했다. 부품 조립공장에서 일하다 손이 느리다는 이유로 해고돼 집으로 가던 어느 날 그녀는 차도에 ‘천천히’라고 쓰여진 교통 안내 문구를 보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천천히’라는 말은 처음 보았다. 한 번 터진 눈물의 둑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두달 동안 울기만 했다. 실컷 울고 나서 그녀는 다시 일을 다녔다. 남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남한 사람 흉내를 내지 않았다. 자신의 페이스대로 생활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산다. 북한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남한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모나 형제에게 몇십만원을 도와드리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을 저는 알았어요. 그러나 탈북민들은 배를 곯고 차별대우를 받아가며 돈을 모아서 북한의 부모 형제에게 한 번에 몇 백만원씩 보내드려요. 그것이 남한 사람과 탈북민의 차이입니다.” 

그녀는 겨우 몇 달에 한 번, 또는 몇 년에 한 번 북한에 있는 엄마와의 통화를 하는 것이 삶의 희망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에 있는 브로커가 북한으로 잠입해 통신이 되는 곳에서 비밀 통화를 연결시켜 준다. 살아있으나 만날 수가 없는, 목소리만 살아있는 모친. 그동안 엄마는 돈을 보내달라고 말하는 적이 없었다. 딸이 힘들게 번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엄마의 원칙이었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도와 달라고 하는 엄마는 처음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민 3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난해 탈북민 임금 근로자 평균 임금은 236만600원이다. 남한 국민 평균임금(273만4000원)의 74.4% 수준이다. 또 탈북민의 일용근로자 비율도 19.3%로, 남한 국민(3.9%)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올해의 탈북민 대북송금액은 전년 대비 27%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중 국경봉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탈주민의 대북 송금 평균 금액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2023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 통합실태조사’ 결과 올해 대북 송금 총액은 1인 평균 367만원이다. 지난해 289만원보다 27% 상승한 수치다. 2016년 이후 처음으로 평균 송금액이 300만 원을 넘겼다. 대북 송금 중개 수수료도 48.1%나 된다. 보내는 돈의 거의 절반은 브로커가 가져간다. 그렇건만 탈북민들은 사명감을 갖고 돈을 모아 북한의 가족들에게 보낸다. 

탈북민의 기초 생계비 수급자는 5년째 감소 추세에 있다. 탈북민의 직업별 취업자의 경우 단순노무종사자(30.7%), 서비스종사자(19.9%), 사무종사자(14%)가 가장 많았다. 남한 주민의 경우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21.8%), 사무종사자(17.3%), 단순노무종사자(13.9%) 순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탈북민들은 기초생계비를 받기보다는 단순노동을 해서라도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을 지며, 점점 더 많은 돈을 북한 가족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만큼 탈북민들은 생활력과 책임감이 강하다.

현재 탈북민의 수는 2023년 9월 말 기준 34,021명이다. 탈북민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3~2011년에는 연간 입국 인원이 2,000명~3,000명 수준에 이르렀다. 드러나 2012년 이후 연간 평균 1,300명대로 감소했고, 2021년에는 63명 입국, 2022년에는 67명이 입국했다. 탈북민 입국이 근년에 줄어드는 것은 2020년 코로나 발생 이후 북한·중국간 국경이 봉쇄된 탓고 있고, 남한에서 탈북민들의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알려져 죽기 살기로 탈북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한편 탈북민의 실업률은 올해 5.5%로 2021년 2.9%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탈북민의 고용 상황과 소득 수준은 한국 내 결혼 이민자와 비교해도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논문 ‘전체인구와 결혼이민자와 비교한 탈북민의 사회통합 수준’을 보면 탈북민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1%로 전체 인구(61.6%)는 물론 결혼이민자(69.5%)보다도 낮다. 고용률도 탈북민이 54.5%로 가장 낮았으며 전체 인구(59.1%), 결혼이민자(66.4%)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런 여러 조사결과가 보여주는 사실은 △탈북민의 실업률이 상당히 높다 △탈북민은 책임감과 생활력이 강하다 △탈북민의 가족연대감이 강하고 저축을 잘한다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인력난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산업현장이 유지가 되지 않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률이 높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근면한 탈북민을 고용한다면 큰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탈북민을 채용해본 회사는 계속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회사에서 탈북민을 최소한 한 사람씩 채용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회사 차원에서도 큰 이익이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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