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주자의 엔화 예금 잔액 추아.(단위: 억 달러) 자료=한국은행
국내 거주자의 엔화 예금 잔액 추아.(단위: 억 달러)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엔화 약세가 계속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당장 일본의 통화정책 방향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만큼 투자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국환은행의 거주자외화예금 잔액은 1017.6억 달러로 전월말 대비 74.6억 달러 증가했다. 기업 수출 증가로 인해 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예금으로 쌓아두면서 외화예금 잔액이 크게 늘어난 것.

통화별로 보면 달러화가 838.3억 달러로 전월 대비 59.5억 달러 늘어나며 전체 외화예금의 82.4%를 차지했다. 한은은 “기업의 수출이 증가하고 증권사의 투자자예탁금이 늘어나면서 상당폭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것은 엔화 예금이다. 지난달 기준 엔화 예금 잔액은 99.2억 달러로 전월 대비 13.1억 달러 증가했다. 전체 외화예금에서 엔화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로 전월 대비 0.6%포인트, 전년말 대비 3.7%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는 장기간 계속된 엔저로 인해 엔화 개인 예금 및 일본 주식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일본은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치는 동안, 일본은행은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기 위한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추진된 양적 완화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었다.

덕분에 엔저 현상이 계속되면서 국내에서도 엔화 예금이나 일본 주식투자 규모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전 세계적 긴축 기조를 거스르며 계속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할 수 없는 만큼, 조만간 엔화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 

이 때문에 내년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고 일본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면 금리 격차가 좁혀지면서 엔화 강세가 시작돼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전망이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됐다. 실제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지난 3분기 기준 966.6억 달러였는데, 일본이 33억 달러로 홍콩(19억 달러), 중국(12억 달러)를 제치고 압도적 1위인 미국(623.7억 달러 88%)을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일본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언제 시작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9일 열린 일본은행의 올해 마지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정상화 관련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일본은행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임금과 물가 선순환이 강해지고 있는지 여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라며 “금융정책에 대해서는 (이번 회의에서) 동일한 위원과 논의해 끈질기게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아직 완화적 통화정책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는 것. 그동안 엔화에 투자해온 국내 투자자들이 단기간 내 엔화 강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일본은행의 이날 결정에 대해 “지금 일본은 일본은행이 완화적이라 표현했다시피 경기도, 물가도 크게 강하지 않다”라며 “성명문에도 나타났듯 지금의 일본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일본은행의 정상화 유인은 크지 않다. 정상화라는 말이 긴축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면 더욱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연구원은 장기간 비정상적인 양적 완화를 유지해온 것에 대한 부담, 양적 완화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은행이 금리정상화에 나설 것이라며, 그 시점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내년 초 있을 춘투(春鬪, 일본 재계와 노동계의 임금협상)를 거론했다.

박 연구원은 “이번 춘투에서도 예년과 같은 수준의 임금상승률이 결정된다면 물가상승 압력을 확인한 일본은행이 4월에 정상화를 단행하기 용이해진다”라면서도 “당장 정상화가 시급하지 않으니 BOJ는 4월 이후로 정상화를 미룰 유인이 충분하다. 따라서 엔화 또한 선제적으로 매수하기보다는 일본은행이 실제로 정상화를 단행하는지 확인한 후 매수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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