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획재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기획재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재정준칙을 신속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야 간 견해 차이가 큰 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최 후보자는 지난 17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재정의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추진한 재정준칙 법안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라며 “건전재정 기조의 확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중장기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정준칙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정준칙(fiscal rules)은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국가채무 등의 재정지표를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규범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9월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으며, 이후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이를 2%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방안(통합재정수지 3%, 국가채무비율 GDP 대비 60%)보다 기준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재정준칙 도입 논의는 여전히 공회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미 지난 3월 재정준칙 도입 관련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한 뒤 6월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심사를 진행했으나, 여야 간 견해차가 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부·여당은 최근 악화된 국가재정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재정준칙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에 대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재정지표가 상당히 악화했기 때문.

정부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지난 2018년 0.6%에서 지난해 5.4%로 크게 높아졌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또한 지난 2018년 35.9%에서 지난해 49.6%로 상승했으며, 올해는 50.4%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주요국 대부분이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재정준칙 도입을 지지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105개 국가가 최소 하나 이상의 재정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서는 캐나다와 튀르키예, 한국 등 3개국만 재정준칙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여전히 팬데믹의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소극적 재정정책으로 선회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여차민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재정준칙은 그 경직적 특성으로 경제위기 시 기민한 재정대응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 위기와 불확실한 경제상황이 계속되는 현 상황에서 재정준칙 도입을 시도하는 것은 더더욱 부적절하다”라며 “재정준칙이 있는 국가들에서도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거나 상한을 훨씬 넘어서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실제 재정준칙의 구속력과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야당 또한 역대급 세수 부족을 초래한 정부가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 올해 1~10월 국세 수입은 305.2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4조원(△14.2%)나 줄어들었다. 세수 부족에는 조세정책보다는 글로벌 경기둔화의 영향이 더 컸다는 지적도 있지만,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기업 및 부동산 관련 감세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정책위의장과 강훈식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는 지난 8월 논평을 내고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스스로 약속한 재정준칙도 못 지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라며 “정부가 내년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음에도 올해 세수와 내년 세수가 크게 감소하는 것은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와 대규모 감세 기조에 따라 세입 기반이 훼손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재정적자 규모는 92조원, GDP 대비 비율은 3.9%로 재정준칙 상 기준인 3%를 초과한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가 재정준칙 도입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정준칙은 예산집행에 제약을 거는 방침인 만큼 국회의 예산 증액 시도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이다. 총선을 앞두고 각종 선심성 돈 풀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국회가 스스로 예산에 족쇄를 채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한편,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70.6조원으로 연간 전망치(58.2조원)을 이미 넘어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가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논의에 다시 나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