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023년 10월 첫 거래일부터 12월 12일까지 KRX은행 지수 추이. 자료=한국거래소
2022·2023년 10월 첫 거래일부터 12월 12일까지 KRX은행 지수 추이. 자료=한국거래소

[이코리아] 3분기 호실적과 연말 배당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탔던 은행주가 이달 들어 좀처럼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생금융에 따른 비용 부담과 홍콩 ELS 사태로 인한 비이자이익 축소 우려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은행 지수는 13일 오후 1시 현재 전일 대비 1.18포인트(△0.18%) 하락한 652.31을 기록 중이다. 지난 10월 30일 593.61까지 하락했던 KRX은행 지수는 11월 주요 은행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반등하기 시작해 28일 653.06까지 올랐으나, 12월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대표적 고배당주로 꼽히는 은행주는 일반적으로 연말 결산시기가 다가오면 배당 기대감이 커지며 상승세를 탄다. 실제 지난해 KRX은행 지수는 10월 첫 거래일(560.15)부터 12월 12일(674.99)까지 20.5%나 상승했다. 반면, 올해는 같은 기간 625.18에서 653.49로 4.5%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5.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은행주가 연말 배당시즌에도 힘을 내지 못하는 이유로는 은행권을 향한 정부의 강한 압박이 꼽힌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며 은행권을 비판한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또한 지난달 20일 은행지주사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분들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코로나 종료 이후 높아진 ‘이자부담 증가분의 일정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중지를 모아 강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의 ‘상생금융’ 요청에 은행권은 상당한 수준의 취약차주 지원책을 고민 중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민생금융 지원방안 태스크포스’는 지난 7일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연 금리 5% 이상 기업대출을 보유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1억원에 대해 연간 최대 150만원의 이자비용을 환급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상생금융안이 시행될 경우 은행권이 감당할 비용은 약 2조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상생금융의 영향을 파악해보기 위해 10월 기준 전체 중소기업 신규대출액의 금리 구간별 비중을 개인사업자 대출(SOHO·소호)에 적용해보면 상생금융 정책이 적용되는 대출금리 5% 이상 소호 대출은 약 279조원 수준”이라며 “대출금리 5%를 기준으로 최대 1.5%까지 이자비용을 환급해준다고 가정하는 경우 대상 금액은 예금은행 전체 기준 약 2.25조원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별 시중은행도 각자 수천억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설 연구원은 “9월말 기준 약 88조원의 소호 대출을 보유한 KB국민은행이 약 44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뒤를 이어 신한은행(66원)이 약 3300억원, 하나은행(60조원) 약 3000 억원, 우리은행(52조원) 약 2600억원 수준의 상생금융 비용을 인식할 전망”이라며 “전체 그룹 기준으로는 기존 추정치 대비 약 5~6% 수준의 당기순이익 하락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따른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 ELS 판매 잔액은 약 8.4조원인데, 현재 지수 추이에 따르면 약 3~4조원 규모의 손실 발생이 예상된다. 만약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 혐의를 적발해 판매 은행에 배상을 권고할 경우 은행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실제 홍콩 ELS 판매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의 경우 주가 하락 폭이 가장 크다. 실제 KB금융 주가는 홍콩 ELS 관련 우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 23일 이후 이달 12일까지 주가가 4.1% 하락했다. 반면, 다른 시중은행보다 홍콩 ELS 판매 잔액이 미미한 편인 우리금융은 같은 기간 주가가 1.8%나 상승했다. 

홍콩 ELS 사태로 인한 타격은 배상 부담에서 그치지 않는다. ELS 판는 이자이익 의존도가 높은 시중은행에 비이자이익을 공급해온 핵심 채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이미 90%가 넘는 은행권의 이자이익 비중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내년에도 은행권의 이자이익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로 순이자마진(NIM)이 본격적인 하락세로 전환되며 이자이익 성장은 둔화될 것”이라며 “경기 회복 지연으로 비이자부문 실적 개선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출 연체율 상승과 선제적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대손상각비 부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물론, 금리가 안정화되면 대출이 다시 늘어나면서 이자이익이 올해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4년에도 마진 압박은 지속될 것이나 여신성장이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무엇보다 대손비용에 대한 부담이 완화되며 전반적인 은행의 실적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분간 상생금융 및 홍콩 ELS 사태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은행주가 연내 반등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높은 배당투자 매력에도 불구하고 상생금융 반영 및 추가 충당금 적립 등에 따른 실적 불확실성도 상존한다”며 “시기적으로는 이러한 불확실성 요인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는 1월 중순 정도가 되어야 투자심리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