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응답한 가구는 7.9%에 불과했다.(단위: %) 자료=통계청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응답한 가구는 7.9%에 불과했다.(단위: %) 자료=통계청

[이코리아]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지만 노후 준비는 매우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가구 대부분이 충분한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 7일 발표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아직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노후를 위한 준비 상황이 “잘 되어 있지 않다”고 답한 가구는 53.8%에 달했다. “보통이다”라고 답한 가구는 38.2%, “잘 되어 있다”라고 답한 가구는 겨우 7.9%에 불과했다.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도 대부분 여유롭지 못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 중 가구주와 배우자의 생활비 충당 정도가 “여유 있다”라고 답한 가구는 10.5%에 불과한 반면, “부족하다”라고 답한 가구는 58.4%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노후 준비 실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드러난 상태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중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비율은 69.7%로, 나머지 30.3%는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나라 은퇴 전 가구의 절반은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은퇴 가구 중 생활비가 여유로운 곳은 10가구 중 1가구에 불과하고, 국민 10명 중 3명은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고령층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점차 악화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18년 기준 43.4%로 OECD 평균인 13.1%의 3배가 넘는다. OECD는 지난 7월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1 OECD(Pensions at a Glance 2021)’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인 안전망 수준은 콜롬비아, 헝가리, 라트비아와 함께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노인 빈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유독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후 준비 부실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1~2020년) 한국의 고령화 속도(65세 이상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는 4.4%로 OECD(평균 2.6%) 회원국 중 가장 빠르다.

노후 준비 부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경우, 노인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할 위험은 매우 크다. 이 때문에 국민들의 노후 준비를 돕기 위한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공적연금·수혜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사적 연금 등을 통해 노후 준비 수단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 중 생활비를 개인의 저축액이나 사적 연금으로 충당한다고 응답한 가구는 겨우 4.8%에 불과했는데, 이마저도 지난해(5.2%)보다 0.4%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대부분의 가구는 공적 수혜금(30.9%), 공적연금(30.8%)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가족수입 및 자녀·친지 등의 용돈에 기대는 가구도 25.4%에 달했다. 

문제는 공적연금만으로는 충분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제9차(2021년도) 중·고령자의 경제생활 및 노후준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고령자는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부부 월 277만원, 개인 177만3000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최소한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는 적어도 부부 198만7000원, 개인 124만3000원이 든다고 답했다. 

지난 1월 말 기준 국민연금 월 평균 수급액은 61만7603원으로 최소 생활비의 절반(개인)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연금만으로는 평범한 수준은커녕,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것. 

이 떄문에 퇴직연금의 역할을 확대해 공적연금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4월 발간한 ‘퇴직연금 소득대체율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적정 노후소득을 고려하면 국민연금만으로 부족하므로 퇴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 제고를 통해 보충할 필요가 있다”라며 “퇴직연금의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오래 가입하고 추가로 납부하며, 가입 중 누수를 막고, 수급단계에서 연금형태의 수령을 원칙으로 하는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사적연금의 기능을 강화해 공적연금 의존도를 낮추며 노후 빈곤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공적·퇴직·개인연금의 3층 보장체계를 통해 노후 소득을 보장해왔는데, 공적연금 재정 불안이 심각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적연금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실제 독일 정부는 지난 2001년 공적연금 개혁에 나서면서 공적연금 가입자 및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연금인 ‘리스터 연금’(Riester-Rente)을 도입하고, 가입자에게 기본보조금, 자녀보조금 및 가입보너스를 포함한 다양한 보조금과 소득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제도적으로 사적연금 가입을 강제하기보다는 다양한 혜택을 통해 가입을 유도한 것. 

일본 정부도 공적연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퇴직연금 가입 요건을 완화하고 연금 수령 나이를 높이는 한편, 기여금 한도도 확대하는 등 퇴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일본, 연금제도 개혁의 최근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DC 퇴직연금 가입 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기업형 DC 퇴직연금 가입 연령을 65세 미만에서 70세 미만으로 조정하고 개인형 DC 퇴직연금(iDeCo) 가입 연령을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인상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DC 퇴직연금(기업형 및 개인형 포함)의 연금 수령 가능 연령을 기존 60~70세에서 60~75세로 상향하고, 기업형 DC 퇴직연금 가입자의 iDeCo 가입 제한 요건도 폐지했다. 내년에는 DB 퇴직연금 가입자의 iDeCo 기여금 한도를 매월 1.2만 엔에서 매월 2만 엔으로 상향할 예정이다. 

고령층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해 노후 준비를 도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021년 발표한 ‘한·일 고령층 연금수령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65세 이상 고령층은 ‘노인 일자리 창출’(한국 48.1%, 일본 32.0%)을 노후 생계 안정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한경연은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연금소득은 부족해 노인빈곤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묘 “공적·사적 연금의 노후 생활보장 기능을 강화하고,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통한 소득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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