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판교 넥슨코리아 본사. 사진=뉴시스
경기도 판교 넥슨코리아 본사.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치권에서 상속세 개편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율을 낮춰 대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돕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상속세 감면은 전형적인 부자 감세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4일 열린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에서 국세물납증권 48개의 공개매각을 오는 18일부터 진행하는 내용의 ‘2023년도 제2차 국세물납증권 매각 예정가격 결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국세물납증권은 상속세로 금전 대신 납부한 비상장증권을 말한다. 이번에 공개매각이 진행되는 종목에는 넥슨의 지주사 엔엑스씨(NXC) 지분 29.3%가 포함됐는데, 이는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이 상속세 대신 납부한 것으로 약 4.7조원 규모로 평가된다. 

유족들이 상속세 대부분을 NXC 주식으로 물납한 이유는 약 6조원대로 추정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현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창업주가 남긴 자산 대부분은 NXC 지분인데, 유족들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 요건인 지분 3분의 2를 초과하는 나머지 지분을 모두 상속세로 냈다. 덕분에 정부는 갑자기 NXC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김 창업주 유족이 상속세로 물납한 지분이 시장에 나오면서 다시 상속세 개편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명목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다. 최대주주 지분을 상속하면 할증이 적용돼 세율은 60%까지 높아져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막대한 현금 마련에 어려움을 느껴 유가증권, 부동산 등으로 상속세를 대신하고 있다. 삼성 일가의 경우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남긴 상속재산에 대해 납부해야 할 세금만 12조원에 달한다. 삼성 일가는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고 있으며, 계열사 주식 일부를 처분하는 한편 주식을 담보로 대출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주식으로 상속세를 물납하게 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NXC 지분 공개매각으로 이러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상속세 개편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재개되는 분위기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일 ‘기업 생존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를 열고 “우리나라에 100년 이상 장수기업은 단 10곳뿐”이라며 “상속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업 생존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지난달 14일 기업 지분 상속 시, 상속 받은 시점이 아니라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하는 시점에 상속세를 납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야당도 상속세 개편 논의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김병욱·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상속·증여 및 부동산 과세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상속세 감면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김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 최근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기업을 물려 줘야할 시기인데 상속세율 50% 와 최대주주 할증 부과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라며 “상속세의 기업 최대주주 20% 할증을 너무 징발적으로 보면 안되고, 부의 세습을 완화하는 순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기업 경영권 승계도 원활히 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의원 또한 “상속세는 전체 세수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상속세에 할증까지 매겨서 최대 60%까지 부과하기 때문에 불법·편법 상속이 매번 문제가 된다”라며 “OECD 평균인 24~25% 정도로 (상속세를) 낮추면 오히려 상속세 세수 확보가 더 많이 될 수도 있고, 일부는 폐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단정을 짓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21년 발표한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각 국가들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실효세율 측면에서 각종 공제제도나 기존 소득세와의 관계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며 “다른 나라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상속재산에는 기초공제 2억원, 배우자 공제 5억원, 자녀 1인당 공제 5000만원, 동거주택 공제 6억원 등 다양한 공제 항목이 적용된다. 또한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상속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부분을 모두 적용한 국내 상속세 실효세율은 명목 최고세율 60%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실제 참여연대가 지난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속세 담세율(상속세 과세가액 대비 결정세액)과 실효세율(과세표준 대비 결정세액)은 각각 16.7%, 28.6%로 명목세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또한 지난달 1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속세 개편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장 의원은 “지난해 기준 과세표준이 15조6000억원, 과세가 4조9000억원으로 31.4%다. 명목 최고세율에서 절반으로 떨어진다”라며 “과세표준이 아닌 신고한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하면 18.5%, 전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하면 5.1%까지 떨어진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어 “지난해 기준으로 명목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상위 10%, 1245명의 실효세율은 39.2%가 좀 안 된다”고 부연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정치권의 상속세 개편 논의에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상속세 감면 주장에 대해 “현 정부의 ‘부자감세’가 논란인 가운데 오히려 소수 자산가만을 위한 혜택을 늘리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2022년 상속세 총결정세액 중 자산가(20억원 이하~최대치인 500억원 초과) 구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99.3%였다. 특히 ‘500억원 초과’ 구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결정세액 중 77.3%”라며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면 사실상 소수 초고액 자산가만이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이어 “내년부터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며 “정치권은 소수 자산가를 위한 입법·행정을 멈추고 민생을 촘촘히 들여다보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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