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완화를 위한 정책 제언과 예상 효과. 자료=한국은행
저출산 완화를 위한 정책 제언과 예상 효과.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계속될 경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낮은 육아휴직 사용률만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여도 출산율이 0.1명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만큼, 정부가 관련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3일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그 수준과 지속기간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며 “저출산‧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는 ‘성장’과 ‘분배’ 양면에서 큰 어려움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은이 향후 출산율 흐름에 따라 중첩세대모형으로 성장률 추세를 예상한 결과, 2050년에는 0% 이하의 성장세를 보일 확률이 무려 68%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령층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분배 측면에서도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 정체와 분배 문제를 초래할 인구구조 고령화의 핵심 원인은 초저출산이다. 한국의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0.78명으로 전년 대비 3.7%(0.81명) 감소했다. 국가별 비교가 가능한 2021년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217개국 중 홍콩(2021년 0.77명) 다음으로 낮은 수준으로,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 중에서는 최저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 추세가 장기간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지난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86.4% 감소해 전 세계 217개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였다. 

게다가 한국은 지난 2002년 이후 2022년까지 21년간 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을 기록 중이다. 20년 이상 초저출산을 경험한 국가 및 지역은 홍콩, 마카오, 한국 등 세 곳뿐인데, 이 중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는 한국뿐이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오랫동안 저출산이 진행되면서 인구구조 또한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한은이 진단한 저출산의 원인은 고용·주거·양육과 관련해 청년이 느끼는 ‘불안’과 ‘경쟁 압력’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취업경쟁, 인구의 도시집중과 주거비 상승, 불평등의 대물림에 대한 우려, 높은 양육 부담감 등 체감하는 경쟁압력과 불안의 정도가 높을수록 출산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 

실제 한은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9월 전국 25-3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쟁 압력 체감도가 높은 응답자 그룹의 평균 희망 자녀 수(0.73명)는 낮은 그룹(0.87명)보다 0.14명(-16.1%)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주거‧양육 등과 관련된 질문에서도 더 큰 불안을 느끼는 응답자들은 상대적으로 결혼 의향도 낮고 희망 자녀 수도 적었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청년 불안을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경쟁압력과 주거부담을 낮추기 위해 인구의 도시집중을 완화하고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키는 한편,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혼외출산을 터부시하는 문화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문제는 이러한 저출산 요인들은 단기간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다.

실제 한은은 “우리나라의 출산 여건이 모두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개선될 경우 합계출산율이 0.85명 만큼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도시인구집중도, 혼외출산비중 등 단기간에 변화되기 어려운 변수에 의한 효과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은이 제시한 해결책 중에서는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과제도 있다. 특히 육아휴직 실질 사용률을 높이는 것은 당장 나설 수 있는 과제다. 한은은 육아휴직 실 이용기간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늘어난다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약 0.096명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1987년으로 자녀당 부모가 각 1년(52주)씩 휴직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는 OECD 회원국중 가장 긴 것으로 프랑스(26주), 아이슬란드(20주) 등 서구권 국가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실질 사용기간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에서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은 21.4명, 남성은 1.3명에 불과했다. 이는 정보가 공개된 OECD 19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균(여성 118.2명, 남성 43.4명)과는 큰 격차가 있다. 

반면, 가장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은 스웨덴의 경우 출생아 100명당 여성 380명, 남성 314.1명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적인 사용률도 높지만, 특히 남성 사용률이 상당이 높은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스웨덴이 반드시 부부 양쪽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할당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스웨덴에서는 자녀 1명당 최대 480일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데, 부부 중 한 명은 반드시 90일을 사용해야 한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은 이유는 근로자가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근로자는 육아휴직 예정일 30일 전까지 사업주에게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사업주게 이에 서면으로 응답할 의무를 규정한 명확한 법적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사업주가 무반응으로 일관할 경우 근로자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 2020년 시행한 ‘일·가정양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라고 답변한 비율은 47.3%에 불과했다.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에”라는 응답이 49.6%로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출산율을 높이려면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기 위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웨덴의 경우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 근로자는 최소 2개월 이전에 사업주에게 휴직 개시일을 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근로자에게 불편을 초래할 경우, 근로자는 사업주 승인 없이 휴직을 요청한 당일 육아휴직을 개시할 수 있다.

네덜란드 또한 사업주가 근로자의 육아휴직 신청에 대해 반드시 서면으로 답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사업주의 무반응 등으로 원하는 때에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업주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지난 1월 발간한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을 위한 입법 과제’ 보고서에서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가 공공기관, 공무원, 또는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유용한 제도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의 유연성 및 급여 상향조정뿐 아니라,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자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방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라며 “육아휴직 사용이 직업적 안정성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률 규정에 대한 재정비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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