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11월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기획재정부, 외교부, 광해광업공단, KOTRA, 배터리산업협회,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관계부처 및 관련 유관기관, 협회, 기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 흑연 공급망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중국의 흑연 수출통제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승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11월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기획재정부, 외교부, 광해광업공단, KOTRA, 배터리산업협회,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관계부처 및 관련 유관기관, 협회, 기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 흑연 공급망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중국의 흑연 수출통제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코리아] 중국이 12월 1일부터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 생산에 쓰이는 흑연 수출을 통제한다. 한국은 전체 흑연 수입량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동차와 배터리 등 우리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리스크 요인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 서울 대한상의에서 정부 부처, 국내 배터리 3사와 포스코퓨처엠 등 기업,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망센터, 한국광해광업공단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 흑연 공급망 점검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흑연은 우리나라에서 배터리 음극재 제조용 물질로 주로 활용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은 이차전지 음극재용 인조흑연과 천연흑연을 지난해 기준 2억4100만 달러(약 3146억7370만원) 가량 수입했는데, 이 가운데 93.7%가 중국에서 들여왔다. 2023년 1~9월 기준 중국의 흑연 수출국은 미국(13.0%), 한국(10.3%), 폴란드(7.4%) 등 순으로 우리나라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조치에 따라, 고순도, 고강도 및 고밀도 합성 흑연을 포함한 2가지 형태의 흑연과 천연흑연가루 및 그 파생품의 수출자는 해당 수출을 위한 수출허가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미 한시적 수출통제가 적용되고 있는 3가지 형태의 고감도 흑연은 이번 조치 대상에 포함된 반면, 한시적 수출통제 대상으로 철강, 야금, 화학 산업 등에 사용되는 5가지 저민감 흑연은 수출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통제 대상에 특수 흑연에 속하는 고순도·고강도·고밀도 흑연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고감도 흑연의 경우 반도체, 자동차, 항공우주, 배터리 제조, 화학 등 산업 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고성능 소재다. 

중국의 이번 흑연 물량 통제 움직임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무역마찰과 기술경쟁이 격화되는 데 나온 조치라 주목된다. 앞서 중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네트워크의 안정 및 안보를 보장하고, 국가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미국이 엔비디아가 만든 첨단 인공지능(AI) 칩의 판매를 중단하는 등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나온 것이다. EU는 중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혜택을 부당하게 받는다며 관세 부과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중국 정부의 흑연 수출 통제 시행 계획 발표 이후 흑연 수급 대응 전담반을 꾸려 관련 동향을 점검하고 업계와 함께 대책을 준비해왔다. 

업체별로 추가 도입 계약 등을 통해 3∼5개월분의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했다. 또 기업들은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공급망 다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흑연의 3분의 2를 생산하고 있지만, 전 세계 매장량과 비교하면 중국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튀르키예(27.3%)와 브라질(22.4%)은 전 세계 천연 흑연 자원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 뒤를 이어 중국이 16%로 3위, 마다가스카르(7.9%), 모잠비크(7.6%), 탄자니아(5.5%) 순이며, 러시아도 4% 이상의 흑연을 보유하고 있다. 

이승렬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앞선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사례로 볼 때 다소 기간은 걸리더라도 흑연 수급에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정부는 만일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흑연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의 대응을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도 지난 10월 펴낸 '중국 흑연 수출 통제의 영향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수출 통제가 본격 시행되는 12월을 전후로 중국의 흑연 수출 물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지만, 3개월 안에는 수출이 전반적으로 정상화되는 시나리오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중국은 2006년 9월에도 흑연 수출을 통제한 바 있는데, 통제 시행 직후 2개월간 흑연 수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이후 기존 수준으로 회귀했다"면서 "이번 수출통제 조치도 기존('06년)의 통제 대상 목록을 조정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과거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이 흑연 수출통제를 미국에 대한 보복성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 미국에 공장을 둔 우리 배터리 기업이 수출허가를 받기 어려울 수 있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또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인조흑연 생산시설 증설을 통해 자급률을 높이고, 실리콘 음극재 기술 개발을 통해 흑연 수요를 줄이는 것이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분석가들은 중국이 흑연에 대한 새로운 조치가 단기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가격에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향후 흑연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 주요 흑연 수출국인 러시아의 전쟁 등으로 흑연 가격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수년간 중국은 환경 보호를 위해 흑연 채굴량을 축소하고, 2021년 이후 합성흑연의 생산을 확대해 왔다. 현재 중국 전체 흑연 생산량의 70%는 합성 흑연으로 알려져 있다. 

이반 람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수석 분석가는 지난 10월 2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흑연은 산업 분야에서 광범위한 응용 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그 사용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 주요 흑연 공급국 중 하나였던 러시아를 포함한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흑연 평균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흑연 통제가 대체 공급원 부상과 더불어 각국의 배터리 산업 자급자족을 촉진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플라이 체인 인사이트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디 레일랜드는 "흑연 시장은 최근 가격 하락과 함께 공급 과잉 상태에 있기 때문에 수출 허가는 시장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수출 허가는 서구에 걱정을 끼치고 중국 밖의 떠오르는 생산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쿄 CLSA 연구 부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리히터는 "(일본 산업이) 할 일은 흑연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해결책은 대체 공급원을 찾고, 대체 재료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케미 캐피탈 인베스트먼트의 최고 상업 책임자인 킨 하인은 "중국 배터리 업계의 거대 기업은 서구 시장의 발전을 앞지르며 맹렬한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의존하는 필수 재료의 소비를 늘리면서 업계 장악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이는 서방 국가들이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는 절박함을 가중시켜, 자국의 배터리 산업 성장 전략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와 다운스트림 부품 모두에서 자급자족을 향한 길을 개척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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