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금융당국이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증권사를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ELS 판매 과정에 대한 감시·관리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며 금융당국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9일 홍콩H지수 연계 ELS 손실 위험과 관련해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다 마련했다고 말하는데, 자기 면피로 들린다”라고 말했다. 

최근 문제가 된 ELS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국영기업으로 구성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만기 도래 시점까지 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정해진 이자와 원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최근 미중갈등과 중국 경기둔화로 홍콩H지수가 급락하며 대부분의 판매 잔액이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 ELS 판매 잔액은 약 8.4조원으로, 이 가운데 약 3~4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 및 증권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조사 중이다. 만약 판매사가 원금손실 위험이나 상품 구조 등 중요 사항을 고객에게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2019년 DLF 사태와 마찬가지로 판매사에 상당한 제재가 부과될 수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우리·하나은행에 업무정지 6개월과 각 197억원, 167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또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서도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처분했다. 

이 원장은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라며 “노후 보장 목적으로 만기 해지된 정기예금을 재투자하려는 70대 고령 투자자에게 수십 퍼센트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설명을 했는지 여부를 떠나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홍콩 ELS 사태와 관련해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은행권은 이자이익 의존도를 낮추고 비이자이익 비중을 늘리기 위해 ELS를 적극적으로 판매해왔다. 실제 이번에 문제가 된 홍콩 ELS 또한 주로 시중은행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ELS 판매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제재에 나선 사례는 많지 않다. 금감원 제재내용 공시에서 'ELS'를 검색한 결과, DLF 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9년 이후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 대해 ELS 관련 제재가 부과된 것은 8건에 불과했다. KB국민은행이 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신한은행이 2건, 나머지 세 은행이 각 1건씩이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ELS 판매 과정에서 녹취의무 및 실명확인 의무를 위반해 16억16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국민은행은 70세 이상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ELS 상품을 판매할 때 판매과정을 녹취하지 않았으며, 유효기간이 경과한 가족관계증명서를 받거나 명의인 실명확인증표 사본을 보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은행은 2021년 2월에도 70세 이상 고령 투자자에게 ELS를 판매하면서 녹취 의무를 위반해 11억38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으며, 2019년 12월에는 파생상품투자권유자격이 없는 직원에게 ELT 투자를 권유하도록 하거나, ‘위험중립형’인 고객에게 ‘다소높은위험’으로 분류된 ELS를 판매해 적정성 원칙을 위반해 21억3110만원의 과태료와 기관경고를 부과받았다. 

신한은행 또한 파생상품 투자권유 자격이 없는 직원이 고객에게 ELS 상품 투자를 권유하고, ELS 판매과정을 녹취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되 2019년 12월과 2021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0억원의 과태료와 기관주의, 21억3110억원의 과태료와 기관경고를 부과받았다.

농협은행은 고객 투자성향보다 높은 ‘초고위험’ 등급의 ELS 상품을 판매하는 등 적정성 원칙을 위반해 2020년 1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으며, 하나은행도 ELS 판매과정 녹취의무 위반 및 비전문 인력의 ELS 투자 권유로 2019년 31억6000만원의 과태료 및 기관경고를 부과받았다. 

우리은행은 파생상품 투자권유 자격이 없는 직원 42명이 701명의 고객에게 총 399억원 규모의 ELS 투자를 권유해 2020년 5월 20억8000만원의 과태료와 기관경고 처분을 받았다. 

최근 홍콩 ELS 손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금융당국에는 벌써 해당 상품에 관련된 민원만 36건이 접수된 상태다. ELS 판매과정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의혹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5년간 단 8건의 제재가 부과됐다는 사실은 당국의 감독 의지가 미약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ELS 판매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실제 금감원이 지난 2021년 실시한 ELS 판매 미스터리 쇼핑(암행점검)에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IBK기업 등 15개 은행의 평균 점수는 60.5점에 불과했다. 이는 최하 등급인 ‘저조’를 겨우 0.5점 차이로 벗어난 ‘미흡’ 등급에 해당하는 점수다. 직전인 2020년에는 평균 점수가 40.7점에 그쳤다. ELS 관련 불완전판매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홍콩 ELS 사태와 관련해) 연내 기초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금융사와 소비자 간) 어떤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의혹에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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