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금융당국이 3년 만에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를 확정했다. 오랫동안 지연된 CEO 징계가 확정됐지만, 증권사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선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정례회의를 열고 신한투자증권, KB증권, 대신증권, NH투자증권, 중소기업은행, 신한은행, 신한금융지주 등 7개사의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에 대해 임직원 제재, 과태료 부과 등 조치를 최종 의결했다.

◇ 금융위, KB·신한투자증권에 강도 높은 징계 "라임 사태 핵심 과정 관여"

이날 관심을 모은 것은 3년간 미뤄온 판매사 CEO에 대한 징계 확정 여부였다. 금융위는 이날 박정림 KB증권 대표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 대해 문책경고를 처분했다.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은 금감원 제재조치안보다 한 단계 낮은 주의적 경고 조치를 받았다. 

특히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다른 금융사보다 강도 높은 징계가 내려졌다. 실제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박 대표는 금감원이 정한 문책경고보다 징계 수위가 한 단계 높아졌다.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이사와 김형진 전 신한투자증권 대표이사 또한 각각 직무정지 3개월, 1.5개월의 퇴직자 조치를 받았다. 

금융위는 두 증권사에 대해 강도 높은 징계를 처분한 이유에 대해 “신한투자증권과 KB증권의 경우 다른 금융회사와 달리 펀드의 판매뿐 아니라 라임관련 펀드에 TRS(Total Return Swap) 거래를 통해 레버리지 자금을 제공하는 등 펀드의 핵심 투자구조를 형성하고 관련 거래를 확대시키는 과정에 관여했다”라며 “그럼에도 이를 실효성 있게 통제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만큼 임원에 대하여 중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라임·옵티머스 제재, 3년이나 걸린 이유는?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판매사 CEO에 대한 징계를 최종 결정하기까지는 약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020년 11월 라임 펀드와 관련해 박 대표와 양 부회장에 대해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문책경고 조치를 내렸으며, 이듬해 3월에는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해 정 대표에게도 문책경고를 처분했다. 

하지만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으로 금융사 CEO를 징계하는 것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길어지면서 제재 확정이 3년이나 지연됐다. 실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징계 취소 소송 최종심에서 대법원은 현행법에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는 규정돼있지만 ‘준수’ 의무는 규정되지 않았다며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 때문에 금융위도 지난해 3월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우선 제재조치 간 일관성・정합성, 유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입장, 이해관계자들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충분한 확인 및 검토를 거친 후, 심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DLF 징계 취소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야 올해 1월 심의를 재개했다. 금융위는 “DLF 판결의 법리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해당 법리에 따라 제재의 적법성을 심의했으며, 제재조치 간 일관성·정합성을 유지하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2023년 2월부터 11월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안건 검토 소위원회를 개최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한편, 피조치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 DLF·라임 사태 교훈에도 여전한 증권사 금융사고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판매사 CEO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됐지만, 증권사 내부통제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증권사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14건으로 피해금액만 668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9~2022년 4년간 발생한 증권사 금융사고가 연평균 7.8건, 143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건수와 금액 모두 상당히 늘어난 셈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A증권사에서는 직원이 다수의 고객에게 계좌 및 공인인증서를 제3자에게 대여하도록 알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계좌는 이후 주가조작에 악용됐으며, 약 187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B증권사 직원은 11년간 고객자금을 관리하며 투자 손실을 감추기 위해 허위잔고증명서를 발부했는데, 이로 인한 피해금액은 약 111억원에 달한다. 

2019년 DLF 사태와 2020년 라임 사태가 연달아 터지면서 증권사 내부통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금융당국의 감시도 강화됐지만, 정작 금융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셈이다. 

황선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지난 14일 열린 국내 증권사 감사‧준법감시인‧CRO 간담회에서 “일부 증권사의 금융사고 은폐 행위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라며 “관행개선과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서는 증권사의 자체적인 내부통제 기능 제고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KB·NH투자증권, 중징계 확정으로 리더십 공백 불가피

힌편, 중징계가 처분된 증권사의 경우 리더십 공백이 우려된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권 취업 및 연임이 제한된다.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되는 박 대표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정 대표는 각각 직무정지, 문책경고 처분을 받은 만큼 연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물론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처럼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한 뒤 연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최근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가 점차 엄격해지고 있다는 것. 이미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여러 차례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사 중, 함영주 회장의 임기가 남아있는 하나금융을 제외한 4개 지주사 회장은 모두 교체됐다. 

손 전 회장이 라임 사태 징계와 관련해 행정소송을 포기한 것도 정부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말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손 전 회장의 징계 취소 소송 제기 가능성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증권가 금융사고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CFD(차액결제거래) 사태 등 시세조종 의혹에 증권사 임원이 연루돼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데다, 최근에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SL) 손실 위험이 커지면서 판매사 경영진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에 대한 비판 여론도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권사가 금융당국의 압박과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징계 취소 소송에 나서며 CEO 연임을 추진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CEO 징계로 리더십 우려가 커진 KB·NH투자증권이 어떤 대응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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