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발표한 세계 태도 조사 결과. 빨간색 네모가 한국. 자료=퓨리서치센터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발표한 세계 태도 조사 결과. 빨간색 네모가 한국. 자료=퓨리서치센터

[이코리아] 최근 한국인의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인용한 해외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소개되면서 “씁쓸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는 지난 19일 ‘나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주제의 라이브 방송에서 퓨리서치 센터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세계 태도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슈카월드는 조사 대상에 포함된 국가 대부분이 ‘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은 것과 달리, 한국은 유일하게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으며, ‘가족’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해당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돈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다른 가치들은 아예 돌아보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 “빠른 경제성장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 “천박한 졸부 근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등 대체로 조사 결과에 대해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진=유튜브 '슈카월드'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유튜브 '슈카월드' 방송화면 갈무리

◇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일까?

슈카월드에서 소개한 퓨리서치센터의 ‘세계 태도 조사’는 한국을 포함한 17개국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What Makes Life Meaningful?)라는 주제로 진행된 설문조사다. 지난 2021년 봄 17개국 1만88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이 가운데 1만7603명의 답변이 실제 결과에 반영됐다. 한국은 1006명이 조사에 참여해 936명의 답변이 반영됐다.

조사 결과 슈카월드에서 언급한 대로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물질적 안녕’(Material well-being)이었다. 17개국 중 13개국은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으로 ‘가족’을 가장 먼저 꼽았으며, 이탈리아는 ‘가족’과 ‘직업’을 함께 꼽았다. 가족이 아닌 다른 가치를 1위로 꼽은 국가는 스페인(건강), 대만(사회), 한국(물질적 안녕) 등 3개국 뿐이었다.

다만 한국인들이 ‘물질적 안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고 해서 “한국은 황금 만능주의에 물든 사회다”, “한국인들은 돈을 밝히고 탐욕적이다”라는 결론으로 바로 달려가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 퓨리서치센터는 해당 조사 참여자들에게 “당신 삶의 어떤 측면이 의미 있거나 만족스러운가?”(What aspects of your life do you currently find meaningful, fulfilling or satisfying?)라는 질문을 던진 뒤 나온 답변을 여러 가지 범주로 나눠 코딩했다. 

‘물질적 안녕’이라는 범주에 포함된 답변에는 명품 등의 사치재나 엄청난 부, 한탕주의 같은 답변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퓨리서치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편안함, 안전, 주거환경, 고용 안정, 꾸준한 소득, 삶의 질 등 다양한 답변이 ‘물질적 안녕’이라는 범주로 분류됐다. 한국인이 ‘물질적 안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고 해서 이를 “돈이 최고”라는 결론과 동일시하는 것은 비약에 가깝다.

 

삶에 의미와 성취감을 주는 요소에 대한 질문에 '물질적 안녕'을 거론한 응답자 비율. 한국은 19%로 17개 조사대상국 중간값과 같다. 자료=퓨리서치센터
삶에 의미와 성취감을 주는 요소에 대한 질문에 '물질적 안녕'을 거론한 응답자 비율. 한국은 19%로 17개 조사대상국 중간값과 같다. 자료=퓨리서치센터

응답 방식의 문제도 있다. 슈카월드 방송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세계 태도 조사에 참여한 17개국 응답자들은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거나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부분 여러 가지 답변을 제시했으나 한국은 유독 한 가지 답만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질문에 대한 한국인의 단수 응답률은 무려 62%로 17개국 중간값(34%)의 두 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답변 순위에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 응답자가 물질적 안녕을 최고의 가치로 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율은 19%로 17개국 중간값과 같다. 유일하게 ‘건강’을 가장 많이 거론한 스페인은 응답자의 42%가 ‘물질적 안녕’이 중요하다고 답했는데, 이는 17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가족’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응답자 비율이 가장 높은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물질적 안녕’을 한국보다 많이 언급했다. 이들 국가는 복수 응답률이 한국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중 ‘가족과 아이’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응답자 비중이 다른 국가보다 낮았다는 슈카월드의 언급은 사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과 아이를 중요한 삶의 의미로 언급한 한국인 응답자는 16%로 17개국 중 대만(15%)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2022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자료=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한편, 한국인이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지 않은 다른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진행한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 결과, 서울시민들이 꼽은 “삶에 의미를 주는 요소”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건강(6.26점)이었다. 2위는 자유(5.98점)였으며, 풍요(5.95점)는 3위, 가족(5.86)은 4위로 뒤를 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22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서는 응답자에게 여러 개의 보기를 주고 그 중 하나의 답을 고르게 했는데도 돈이 1위는 아니었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자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은 것은 건강(39.5%)이었으며, 2위는 행복한 가정(21%)이었다. 경제적 풍요는 18.4%로 3위에 머물렀는데, 이는 퓨리서치센터의 다른 국가 응답 순위와 비슷한 결과다.

다만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실제 문체부 조사에서 건강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1996년 57.1%에서 2022년 39.5%로 감소했으며, 행복한 가정 또한 같은 기간 26.3%에서 21%로 줄어들었다. 반면 경제적 풍요는 1996년 3.1%에서 2022년 18.4%로 6배가량 증가했다.

◆ 검증 결과

판단유보. 퓨리서치센터의 세계 태도 조사만으로는 한국인의 가치관을 완벽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해당 조사는 응답자의 주관적 답변을 코딩한 것으로, ‘물질적 안녕’이라는 범주를 ‘돈’으로 단순 치환할 수 없다. 한국인 응답자가 삶의 중요한 의미로 물질적 안녕을 많이 거론하고 가족을 덜 거론한 것은 맞지만, 한국인이 유독 다른 국가보다 단수응답률이 높은 만큼 답변 순위를 국가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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