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위험이 커지면서, 시중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반면, 은행의 주요 비이자이익 원천인 ELS 판매를 제한할 경우, 이자이익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최근 문제가 된 홍콩H지수 연계 ELS는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우량 중국 국영기업으로 구성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의 변동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통상 3년인 만기 시점까지 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정해진 이자와 원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수가 지나치게 하락해 녹인(Knock-in,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하거나, 만기 때까지 일정 수준 이상 회복되지 않으면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판매 잔액은 약 8조41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에서는 이 중 상당 규모가 이미 녹인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하나은행이 판매한 ELS 중 최근 만기가 돌아온 181억원에서 83억원의 손실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실률은 약 46%로, 이를 적용하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ELS에서 약 3조86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실 위험이 커지면서 불완전판매 여부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당 ELS가 고위험 파생상품인 만큼 안전 투자 성향인 고객에게 가입을 권유했거나 복잡한 상품구조, 원금손실 위험 등을 중요 사항을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

실제 지난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홍콩H지수 연계 ELS에 9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힌 75세의 투자자가 출연해 가입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 투자자는 “(은행 직원이) 6개월짜리 상품이 있다고 해서 원금이 보장되고 만기 때는 찾느냐고 물었더니 ‘예, 찾습니다’라고 했다”라며 “그래서 가입을 하겠다고 했더니 바로 AI로 된 상품 설명하는 녹음기를 틀어놓고 대답만 ‘네, 네’ 하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투자자는 은행 직원이 홍콩H지수 등과 관련해 설명을 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하나도 안 했다”라며 “그런 설명을 했으면 내가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미 일부 피해자들은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하고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데다, 금융감독원도 판매 은행 및 증권사를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만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시중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금지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에도 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대순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는 2019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은행 파생상품 판매,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은행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여수신업무를 통해 시중에 통화를 원활히 공급하는 것”이라며 “이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다른 업무를 가급적 삼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DLF 사태로 인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 금지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지만, 결국 ‘제한적 허용’으로 결론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12월 발표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에서 기초자산을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 5개(KOSPI200, S&P500, Eurostoxx50, HSCEI, NIKKEI225)로 한정하고, 공모로 발행되고 손실 배수가 1 이하인 파생결합증권을 담은 신탁(ELT) 상품에 대해서만 은행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ELT 판매 규모 또한 총량제를 적용해 2019년 11월 말 잔액 이내로 제한했다.

당시 금융당국이 제한적 허용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은행권의 강력한 반발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은행권 수수료 수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ELT 판매를 금지할 경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 2019년 6월말 기준 은행의 ELS 판매 규모는 약 40조원으로, 통상 1%인 신탁수수료율을 적용하면 약 40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자수익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은행의 핵심 과제가 된 상황에서 고위험 파생상품의 판매 금지 조치는 수익성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실제 올해 5대 은행의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약 31조원으로 총 이익의 92%를 차지한다. ELS 판매가 중단될 경우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 수단이 막히면서 지금도 높은 이자이익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DLF 사태 이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라며 “최근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해 소비자 피해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말하는 건 자기 면피로 들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홍콩 ELS 판매 은행 및 증권사를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시중은행의 파생상품 판매에 더욱 강한 규제를 적용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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