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의 사회적 비용 추정 방법. 자료=사단법인 넥스트
탄소의 사회적 비용 추정 방법. 자료=사단법인 넥스트

[이코리아]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도 커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그로 인해 정확히 어느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는지 체감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우리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정확하게 측정해 기업활동과 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탄소의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 SCC)을 측정해 기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참조하고 있다. SCC는 대기 중에 추가적으로 배출되는 탄소 한 단위(통상 1톤)에 의해 발생하는 경제·사회·환경적 손실을 화폐단위로 추정한 것이다. 

정확한 SCC 추정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SCC는 정부가 공공사업의 편익과 비용을 분석할 때 기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데 활용할 수 있으며, 지나치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에는 SCC에 기반한 탄소세 등을 부과해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기후 관련 규제로 인한 비용을 고려해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SCC를 중요한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DICE, FUND, PAGE 등 기후-경제 통합평가모형을 통해 산출하는데, 이는 온실가스가 단순히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생물다양성 감소 등 다양한 사회·환경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인구·GDP 등 사회경제적 발전 경로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영향과 경제적 피해를 산출한 뒤 최종적으로 할인율을 적용한다.

할인율은 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적용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온실가서 배출에 따른 부담을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정하는 수치다. 높은 할인율은 현재 가치를 미래 가치보다 중요하게 생각해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부담을 떠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할인율을 낮게 설정하면 현 세대가 기후변화에 따른 비용 부담을 더 많이 지게 된다.

이 가운데 핵심은 할인율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SCC는 장기에 걸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인 만큼, 어떤 모형을 사용하느냐보다 할인율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 주요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SCC를 측정해 정책 결정에 참고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 2019년 환경청이 FUND 모형을 통해 SCC를 측정했는데, 할인율 1%를 적용할 경우 탄소 1톤을 배출할 때 사회가 입는 손실은 2015년 180유로에서 2050년 240유로로 크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또한 지난 2003년에 녹림환경부가 SCC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2005년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SCC는 2020년 90파운드에서 2050년 130파운드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SCC에 아직 공통된 기준이 없는 만큼 정권의 성격에 따라 측정 방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정부에서 트럼프 정부로 넘어가며 SCC 측정 방식이 크게 달라졌는데, 오바마 정부의 경우 다양한 모형을 통해 도출된 값의 평균을 SCC로 정하고 할인율도 2.5%, 3%, 5% 등 세 가지로 나눠 적용했다. 3% 할인율을 적용한 경우 미국의 SCC는 2020년 42달러에서 2050년 69달러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가 터무니 없이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다며 SCC 추정 방식을 변경하고 할인율도 7%로 높였다. 오바마 정부 방식보다 미래세대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산출한 SCC는 탄소 1톤당 8달러로 오바마 정부 때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편차는 있더라도 이미 10년 이상 SCC 추정에 공을 들여온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SCC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50 탄소중립 선언 후 정부가 관련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지만, 공식적인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정확한 SCC 측정이 기후정책 수립과 기업의 환경오염 규제에 필수적인 요소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 실정에 맞는 SCC 논의는 매우 시급하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그에 관한 논의와 활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며 “체계적인 탄소중립 실현방안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추정하고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사업의 경제성 분석 과정에서 SCC를 통해 환경 비용을 정확하기 반영할 필요가 있다. 실제 미국 뉴욕·일리노이주 정부는 에너지 전환 사업 지원 여부를 결정할 때 SCC를 반영하고 있으며, 콜로라도·미네소타·캘리포니아 등도 인프라 건설 등에 SCC를 활용해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공공사업이 진행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는 공공투자사업의 경제성 분석시 환경비용에 주로 소음, 악취, 대기오염, 조망권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대기오염은 해당 공공투자사업 추진에 따른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증가로 인해 인근 주민에게 발생하는 피해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탄소의 사회적 비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라며 “공공투자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할 때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도 스스로 탄소배출량에 대해 적정 가격을 적용해 투자 결정 시 참고하도록 하는 ‘내부 탄소가격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엑손모빌, JP모건 등 글로벌 기업들은 내부 탄소가격제를 도입해 투자 포트폴리오 결정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내부 탄소가격제는 기업이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환경측면에서의 편익도 동시에 고려하게끔 유도하는 통합적인 의사결정체계”라며 “기업이 내부 탄소가격제를 도입하게 되면 탄소배출이 많은 고탄소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저탄소 부문으로의 사업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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