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무차입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마련 TF 킥오프 미팅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무차입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마련 TF 킥오프 미팅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금융당국이 불법공매도를 사전 방지하기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그동안 기술적 한계와 비용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보였던 금융당국이 입장을 바꾼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지난 23일 금융투자협회 및 투자업계와 함께 ‘무차입 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구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16일 민당정협의회에서 발표된 ‘공매도 제도개선 방향’의 후속조치로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 방지할 수 있는 실시간 차단시스템의 실현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은 그동안 공매도에 비판적인 개인투자자들이 꾸준히 요구해온 핵심 대책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공매도가 전산화되지 않은 상태라, 거래 기록을 수기(手記)로 관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관 간 대차거래에서 실수가 발생할 위험도 큰 데다, 자칫 트레이더가 불법공매도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공매도를 전산화해 수기로 인한 오류와 위험을 방지하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문제는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20년 무차입 공매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계획을 밝혔으나, 이듬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데다,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게 되면 주식거래 체결이 늦어지고 시스템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인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또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실시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공매도 거래시스템과 증권거래소 시스템을 연결해야 하고, 대차거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주식을 빌리는 거래 목적이 여러 가지이고 전화나 이메일 등 이용하는 플랫폼이 다 달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파악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공매도 전산화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온 금융당국이 입장을 바꾼 것은 글로벌 IB의 불법공매도 정황이 드러나면서 누적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다다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달 16일 HSBC·BNP파리바 등 글로벌 IB 두 곳에서 56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글로벌 IB의 무차입 공매도 사실이 드러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도 더욱 격화됐다. 실제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한 청원인은 “수기를 공매 전산화로 바꾸면 불법 공매가 실시간으로 검색되어 업무도 줄고 불법 공매가 근절될 텐데 인터넷 최강국 한국에서 아직도 수기를 고집한다는 건 불법 세력들과 유착된 것 아닌가”라며 금융당국에 대한 청문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도 공매도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일 “그동안의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됨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내년 6월 말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하반기부터 공매도를 재개하려면, 실질적인 전산시스템 구축 대책이 마련돼야만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공매도 전산화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반대 근거로 거론해온 비용 부담과 기술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공매도 전산화가 아예 실현 불가능한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핀테크 업체에서는 수기 거래로 이루어지는 공매도의 전 과정을 전산화하는 솔루션을 서비스하고 있다. 실제 한국증권대차(구 트루테크놀로지스)는 무차입 공매도를 방지하기 위한 증권대차거래 트레이딩 플랫폼을 개발해 국내외 증권사들과 협업에 나서고 있다. 

실시간 감시 시스템 구축과 함께 처벌 강화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불법공매도에 대한 기준만 엄격할 뿐 처벌은 다른 국가에 비해 약해 무차입 공매도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 지난 2021년 처벌이 강화되면서 불법공매도에 최대 30년의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됐지만, 이 같은 형사처벌이 이뤄진 적은 아직 없다. 

규정 강화로 무차입 공매도 주문금액의 최대 100%까지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이런 수준의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21년 ESK자산운용이 251억4000만원의 무차입 공매도를 한 사실이 적발돼, 올해 금융당국으로부터 38억7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미국·프랑스 등은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부당 이득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며 영국은 아예 벌금 상한선을 두지 않고 있다. 

한편, 금감원은 ‘무차입 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구축 T/F’ 실무반을 구성하고 격주로 회의를 열어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뒤늦게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에 나선 금융당국과 금투업계가 개인투자자들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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