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산망 마비 관련 국회 보고하는 고기동 차관 = 뉴시스
정부 전산망 마비 관련 국회 보고하는 고기동 차관 = 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17일 발생한 행정 전산망 마비의 원인과 재발방지책을 발표했지만, 유사한 국가 행정망 마비 사태가 잇따르며 비판이 나온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 송상효 숭실대 교수를 포함해 민, 관 전문가가 다수 참여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브리핑’을 진행해 이번 장애의 원인이 네트워크 영역에서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TF는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에서 패킷을 전송할 때 용량이 큰 패킷이 유실되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특히 1천500바이트 이상의 패킷은 약 90%가 유실됐다. 이는 라우터 장비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모듈의 포트 중 일부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패킷 유실로 인해 통합검증서버가 라우터로부터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패킷을 정상적으로 수신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지연이 중첩돼 작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TF는 이에 따라 17일에 첫 장애가 발생한 후 네트워크 장비의 일종인 L4 스위치를 고성능 장비로 교체했으며, 교체 후에도 일부 기능에 지연 현상이 발견돼 광주센터와 대전센터를 연결하는 라우터를 상세 분석해 추가적인 포트 불량을 발견했다. 또 불량 외 다른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서버 로그를 분석하고 다양한 네트워크 구간에서 장비의 이상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킹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도 덧붙혔다.

한편 17일에 발생한 행정 전산망 마비 이후 다른 정부 전산망에도 먹통사태가 잇따라 발생하며 국민들의 불편은 이어졌다. 17일 정부 행정 전산망 마비 당시 외교부의 업무시스템 역시 접속 오류·지연으로 애를 먹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22일에는 주민등록시스템이 20분간 일시 과부화되어 장애를 일으켜 민원 발급 서비스가 지연되었으며, 23일에는 조달청의 나라장터 전산망이 1시간 가량 접속이 지연되었다. 

24일에는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에서 서비스하는 정부 전자증명서 발급이 일시 중단되어 17일에 발생한 행정 전산망 장애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나 행안부는 한국전자인증 장애로 서비스가 일시 중단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같은 날 정부 모바일신분증 웹사이트와 앱이 모두 마비되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김용판 의원 = 뉴시스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김용판 의원 = 뉴시스

정부 전산망 장애가 잇따르자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23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행안부를 질타했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은 이번 사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디지털 정부라는 자부심이 손상되었다고 지적하며, 왜 행안부가 장애 발생 당시 국민에게 재난 문자를 보내지 않았냐고 비판했다. 또 정부 전산망 구축 관련 업체에 대기업 참가를 제한해 기술력을 떨어뜨린 문제 역시 지적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2004년부터 20년 가량 전자정부가 추진되어 왔는데,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는 윤 정부의 잘못만이 아니라 20년 간 누적된 결과라고도 덧붙혔다. 그러면서 권 의원은 문 정부 당시 발생한 온라인 수업 시스템 마비와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접속 장애 등의 사례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지난해 카카오 먹통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카카오를 질타하고 공격했던 점을 지적하며 이번 국가 전산망 마비는 카카오 먹통보다 더 중대한 사태인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사과는 하지 않고 평가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중소업체의 역량 문제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행안부가 피해 접수창구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일 터진 다음에 나 몰라라 한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행안부는 25일 브리핑에서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설명했다. 행안부는 이번 사태와 같은 포트 불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오래된 장비들을 전수 점검하고 장애 발생 시 처리 매뉴얼을 보완할 것이며, 장애 발생 시 처리 매뉴얼 역시 보완해 장애 발생 시 국민에게 신속히 안내하고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시 신속한 복구조치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디지털정부 서비스가 중단되더라도 행정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디지털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범정부 디지털정부 위기대응체계를 확립하며 공공정보화사업 추진방식을 개선하는 등 중장기적인 제도 개선방안 역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유사 문제로 국민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단 없는 안정적인 디지털 정부를 만들어 나가겠다.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정부의 명성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의 입찰을 허용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중소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해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의 공공 서비스 사업 참여를 제한해 왔으며, 지난 2016년에는 기준을 10조 원 이상으로 상향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중소기업에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쪼개기 발주와 아웃소싱, 재하청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으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기술 격차가 줄어들지 않아 서비스 장애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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